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의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남한에 사는 분들은 가족 생각에 많이들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다시 만나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면 남한에서 다시 상봉이 이뤄지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평안도 출신의 혜인(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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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인: 내일이 제일 궁금해 지는 거죠. 견디고 견디니까 이뤄지지 않을 것같던 가족도 데려오고 지금 가족과 이렇게 지내고 있다는 것이 제일 행복하죠.
이제는 모두 옛말이 됐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지만 북한에 남겨두고 온 딸 생각에 처음엔 울기도 무척 울었답니다. 그리고 혼자 남한에 도착했을 때는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는데요. 그런 혜인 씨의 남한생활은 2006년 시작됩니다.
혜인: 직접 이렇게 와서 봤을 때는 놀랐죠. 가장 놀란 것은 쭉쭉 뻗은 도로인데 민첩하게 이어지는 도로가 많은 차를 처리하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요. 활기와 생기가 느껴지고 역동적인 걸음에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잘살아야지 그런데 여기서 대체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하나? 또 여기서 내가 과연 살수는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 그리고 희망 게다가 북한에 두고온 가족 생각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때였습니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서는 살길을 찾는데요.
혜인: 이제 학원을 갔죠. 컴퓨터를 배우고 회계를 배우는 직업학교를 1년 과정 등록했어요. 그리고 9개월 정도 돼서 자격증을 모두 따고 졸업 한달 앞두고 취업서류를 넣어서 취직이 됐어요. 애완용품을 다루는 회사에 회계로 취직했어요.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보다는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남한에 왔다 해서 원하는 것을 모두 다 하고 살수는 없었습니다. 당장 급한 것부터 하게 됩니다.
혜인: 가장 절실한 것은 사실 대학입학이었어요. 편입이 된다고 해서 서류를 제출했는데 35살까지 학자금 지원이 된다고 해서 저로서는 35세가 지났으니까 내 돈을 내고 학교를 가야했어요. 내 형편이 안되니까 학원에 가서 자격증을 따고 회사 들아가서 몸으로 때웠다고 봐야죠.
북한출신이 남한에 가서 학원공부를 몇 개월 하고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과연 직장생활이 가능할까?
혜인: 3개월 정도는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일을 시키는데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고 뭘하라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만큼 난감했죠. 같은 말을 하는데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는데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일을 해야하는지 몰랐어요. 무작정 일을 배우기 위해 밤을 센 것 같아요.
혜인 씨 말처럼 알려고 노력 했기에 적응은 어느정도 됐는데 그가 느낀 남한의 직장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곳이라 말할 수 있을까?
혜인: 전쟁이었죠. 전쟁터요. 여기서 살아 남아야 하는 전쟁터라고 표현하고 싶어요.저녁에 퇴근하면서 때론 혼잣말로 내일은 내가 이 회사에 다신 출근 안한다 그러면서 씻고 잠들었는데 다음날 6시면 눈이 떠지고 또 회사로 발길은 향하는 것이죠.
힘들다고만 생각을 했으면 견디지 못했을 겁니다. 혜인 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도 해야 했고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좀 더 빨리 남한사회를 알기 위해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심수봉이란 여가수의 인생사를 쓴 수기를 읽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가 부른 노래는 혜인 씨가 힘들 때마다 흥얼 거리는 애창곡이 됩니다.
혜인: 그 멜로디가 사랑밖엔 난 몰라…내일은 행복할꺼야…
노래 가삿말 처럼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내일은 행복할꺼야 라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어떻게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방법을 찾게 됩니다. 결국 직장생활이란 것이 상사가 시키는 것만 해선 안된다는 것도 터득하게 됩니다.
혜인: 남한회사에서는 다중적인 일을 다해야 해요. 한가지를 시키면 그 뒤에 일어날 일까지 대비해야 해요. 일하는 방법에 있어서 처음에는 정말 혼자 부딪치기에는 큰산처럼 느껴졌는데 3개월이 지나고 나니까 요령도 생기고 예를 들어 오늘 주문이 들어가면 일주일 뒤에 물건이 항만에 도착하고 그때 입고절차를 밟고 기사를 보내야겠구나 이렇게 일의 흐름을 파악하기까지는 3개월이 걸렸던 것 같아요.
사람은 많은데 내가 아는 사람이 없다 또는 친구가 없다는 말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사람들 무리안에 있지만 자신의 존재감이 없을 때 고독함을 느끼게 됩니다. 혜인 씨는 직장생활 5년만에 자신이 들러리가 아니고 주인공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혜인: 제일 만족했고 뿌듯했다고 느꼈을 땐 내가 없으면 일이 안된다면서 상사가 찾을 때였어요. 모든 일이 내 손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꼈고 내가 살았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 했어요.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말했을 때 정말 너가 쉬고 싶으면 쉬다가 언제든 복귀하라고 말해줬을 때 정말 고마웠어요.
주말이면 몸이 힘들어도 산과 바다를 찾아서 답답한 마음을 달래야 했던 혜인 씨. 처음에는 눈물도 참 많이 흘렸는데 남한생활 10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했을까요?
혜인: 요즘은 최근에 오는 탈북민이 가족을 데려와서는 자녀문제, 고부갈등, 부부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자 날 찾을 때도 행복하고 제가 부족하지만 나줘주는 것에 다시 웃음을 찾는 것을 봐도 행복하고요. 운전하고 오면서 딸이 대학을 다니는데 리포트를 작성한다며 내게 자문을 구하고 이렇게 여러가지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해요. 멀리서 행복을 찾으려면 너무 크고 하니까 가까운 곳에 있는 소중한 것을 아는 것이 행복한 것 같아요.
북한에서 남겨둔 딸을 남한에서 다시 만났고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해 주고 지켜주는 남한 남성을 만나서 가정도 꾸렸습니다. 앞으로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혜인: 그냥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면서 앞으로의 계획은 배우고 싶은 것은 머뭇거림없이 늘 배우면서 사는 것이 제 바람이예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평안도 출신의 혜인(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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