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멋-보물찾기 산행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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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객들이 한라산 국립공원 성판악 코스를 오르고 있다.
등반객들이 한라산 국립공원 성판악 코스를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겨울은 해가 짧아서 일을 빨리 마치고는 초저녁부터 자리에 눕는 사람이 많습니다. 딱히 피곤해서 잠을 자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주위가 컴컴 하니까 활동을 꺼려하게 되는 건데요. 오늘 소개할 여성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계절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매일 즐기면서 생활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남한생활을 해서 올해로 13년차가 됩니다. 노우주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노우주: 정말 지옥불에 수도없이 들어갔다 나왔기 때문에… 제 목숨이 죽다 살기를 10번도 넘게 그런 고비를 겪었기 때문에…

청진이 고향인 노 씨는 추운 겨울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무 문제 없이 아주 잘 지낸다면서 북한에 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노우주: 엄청 비교가 되죠. 북한에서 살 때는 정말 겨울에는 땔나무를 하러 산에 가는 것이 일이었거든요. 낮에는 시장에서 돈을 벌고 시간을 내서 두시간씩 걸어서 산에 올라가서 땔나무를 해오고 하는 것이 일이었고 옥수수 그루터기까지도 다 흙을 털어서 불을 떼고 했는데 한국에는 다 전기가 들어오고 가스가 들어오니까 천국이 따로 없어요.

세상의 욕심을 모두 내려놓은 듯한 편안한 목소리에서 이렇게 고민없이 살아야 하는데 많은 사람이 아웅바둥 너무도 치열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습니다. 노 씨는 북한에서 너무 힘든 생활을 해서 이제 무서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다고 하니 한번 과거 북한에서는 어떤 생활을 했는지 들어보죠.

노우주: 그때는 장사한다고 길에서 시간을 다 보내고 열차 지붕 꼭대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장거리 장사를  했거든요. 청진에서 물고기를 사서 고향 쪽에서 쌀하고 바꿔서 벼는 방아를 찧어서 쌀을 50 kg씩 포장을 해서 1톤반 2톤씩 여객열차로 나르는 일을 했었고 소금을 평안남도 염전에서 한 3톤씩 나르는 일을 했었거든요. 열차가 제대로 다니지 않으니까 겨울 같은 경우 거의 밖에서 살다시피 했었거든요.

기자: 장사를 크게 하셨네요.

노우주: 네, 장사를 크게 했어요.

기자: 그러면 돈도 많이 벌었단 말이네요.

노우주: 돈도 많이 벌고 도중에 열차 안에서 도둑도 맞고 …

남한에는 어딜 가나 대형 상점 또는 소형 편의점이 있어서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지만 북한에선 ‘달리기’ 장사를 하는 사람이 없으면 불편함을 겪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런 사정은 최근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말을 들어봐도 예전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데요. 가을에는 쌀과 소금을 주로 하고 겨울에는 육고기를 팔았습니다.

노우주: 돼지, 강아지, 닭, 닭은 100kg 마대인데 싸리로 만든 바구니에 3칸까지 넣을 수 있는데 밑에 돼지 2마리 넣고 또 위에 2마리 넣고 해서 6마리를 넣는 거예요. 닭은 보통 바구니 하나에 7마리 정도 넣는 데 청진까지 가지고 오면  죽은 놈도 있고 난리 나죠.

기자: 몇시간이나 걸리는데요.

노우주: 열차로 원래 신의주에서 청진까지 준급행으로 정상적으로 운영되면 24시간이면 되는데 전기가 부족해서 멎으면 전기 올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보통 15일 빨라야 10일이 걸렸거든요.

북한에서부터 장사를 크게 했으니 남한에서는 마음껏 실력을 발휘해 벌써 부자가 됐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노 씨는 그런 욕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되면 봉사활동에 열심인데요.

노우주: 없다고 해서 산 입에 거미줄 치는 것은 아니잖아요. 나름대로 열심히 살면서 봉사도 하고 공헌도 하고 하다보니까 2018년에 대통령 표창도 받고 나름대로 열심히 사니까 지역사회에서 인정도 받고 하면서 사니까 즐겁게 삽니다. 내인생은 내가 바꾸고 내가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남이 살아주지 않기 때문에 남 눈치보지 말고 열심히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렇게 나는 얘기 하거든요.

북한에서 너무 고생을 해서인지 남한에 도착했을 때 큰병을 만나 고비를 넘겼습니다. 시한폭탄처럼 안고 있던 악성종양이 터졌던 건데요. 그렇게 죽음 직전까지 맛보고 나니 사는 게 별거 없구나. 너무 빨리빨리만 외치면서 돈버는 것에 혈안이 되면 안되겠다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후 노 씨의 인생이 바뀐 겁니다.

노우주: 남한에서는 친구들과 걷기도 하고 밤에 야경이 얼마나 잘돼있습니까? 밤하늘에 별이 도시에 다 내려앉은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고 운동삼아 걷고 들어와서는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온돌방에 앉아 텔레비전도 보고 책도 보고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내거든요. 또 밤이 기니까 단호박이나 고구마 옥수수를 쪄서 놓고 먹으면서 동네 언니들과 얘기도 나누고 하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남한에선 학교를 찾아 학생들이게 그리고 주민들에게 북한의 실정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고 한번쯤 통일에 대해 생각하게 일을 합니다. 그래서 강의 제의가 오면 그곳이 어디든 차를 몰고 달려갑니다. 북한에서 달리기를 하기 위해 기차를 탔던 것과는 또 다른 상황이죠.

노우주: 남한에서 장거리 뛰는 것은 차안에 먹을 수 있는 간식이 너무 많잖아요. 사탕이라든가 초콜렛, 빵, 과일을 차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운전하면서 조금씩 먹거나 잠시 세워서 먹으니까 북한에서 처럼 흙길을 가는 것도 아니고 속도가 빠르잖아요. 자동차는 100km 에서 120km로 달리고 하니까 정말 도로가 정말 잘돼있고 고속버스, 시외버스, 택시가 있고 하니까 제가 늘 말하는 것이 한국에 와서는 발바닥에 털이 날 지경이라고 걸어다닐 새가 없어요.

북한 현실에 대해 알려도 주고 지역에 나가 봉사활동도 하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은 건강을 위해 자신을 챙기는 일도 게으리 하지 않습니다.

노우주: 겨울에 산에 가는 이유는 제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도 가고 또 겨울 산행의 묘미는 저는 산길을 따라 걷지를 않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을 따라 걸으면서 버섯을 채취해서 그것을 짜서 먹고 주변분들도 주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 산에 가거든요. 북한에서 겨울에 산에 간다고 하면 땔감을 하려고 다녔다면 남한에서는 건강을 위해 또 자연이 주는 보물을 찾기 위해 산행을 하거든요.

추우면 다들 움츠려드는 것이 사실이고 따뜻한 곳만 찾게 되는데 이 겨울 노 씨는 이런 생각을 한답니다.

노우주: 요즘은 날이 추워지면 북한에 어머니 계시고 형제가 있으니까 어떻게 이 겨울을 날까 하는 걱정이 앞서고 또 아들도 있는데 그 아들은 소식을 못듣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걱정반입니다. 부모님 생각이 나면 복지관에 나가서 어르신들 급식 봉사활동을 많이 하거든요. 저는 겨울이라고 해서 여름보다 활동량이 줄어든다거나 하는 것은 없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노우주 씨의 남한생활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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