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다도해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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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바다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경남 통영의 앞바다.
산과 바다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경남 통영의 앞바다.
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에서 지방공장 초급당비서로 오랫동안 근무했던 사람이 남한에 가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거의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다른 세상을 경험했는데요. 그가 말하는 자유와 행복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탈북자 최청하 씨 입니다.

최청하: 제가 2002년에 한국에 와서 지금까지 생활하고 있는데 현재는 이북 5도청에 출근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사는 탈북자 사이에서는 친목단체인 숭의동지회 사무국장으로 더 익숙한 최 씨는 실향민 조직인 이북 5도청으로 일자리를 옮겼습니다.

최청하: 대체로 탈북자 단체에서 일했고 한 11년 일하다가 그만두고 이북5도청 함경북도 새마을 회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북 5도청은 남한의 행정구역이 아닌 북한 황해도,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사무를 보는 행정기구 입니다. 남북은 분단 상황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행정 조직이라기 보다는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또 통일 이후를 대비한 조직으로서의 역할을 맡는 단체입니다. 보통 북한이 고향인 실향민이 명예직을 맡고 있는데요. 탈북자로는 유일하게 고향의 새마을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최청하: 제가 원래 출생지는 함경북도 청진입니다. 군복무를 오래했고 1980 중반 제대돼서 함경북도 온성 남양이란 곳에 배치 받아 생활하다가 거기서 복잡한 사건이 제기 돼서 탈북하게 됐습니다. 탈북과정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에 와서 현재는 자유를 만끽하고 자유란 어떤 것인가를 완전히 느끼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기자: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자유란 어떤 것입니까?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자유다 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최청하: 짧은 시간에 다 얘기를 못하겠는데 북한에서 우리는 군영생활을 했습니다. 북한전체 주민이 다 그렇지만 군대와 같은 생활을 하는데 여기 한국에 온 이후에 우리는 제 마음껏 자기 능력껏 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그리고 자기를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자유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북한한에서 살 때 군대에서 그리고 제대해서는 사회에서 늘 총화요, 투쟁이요, 조직에 얽매인 생활을 하다가 새로운 자유를 발견합니다. 남한에선 국민의 자유권들을 헌법으로 보장하는데요.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안는다는 신체의 자유부터 시작해 거주 이전의 자유, 통신의 비밀과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을 법으로 명문화 하고 있습니다.

최청하: 모든 것이 제한되지 않고 구속을 받지 않고 생활한다는 것이 자유겠습니다. 물론 법 테두리 안에서의 자유지만 그래도 구속 받지 않고 천대받지 않고 이렇게 생활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겠는가.

남한생활에 완전히 적응하면서 이제는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 더 나은 삶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최청하: 여기 시간을 이용해서 취미겸 생활을 노래하고 싶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이제는 생활에서 빠지면 안될 과제로 되고 있습니다.

최 씨의 작품은 다른 남한사람들과 달리 특별한 아픔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고향과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 그리고 탈북이 주제가 되기 때문인데요. 그런 특별한 사연이 선택을 받아 큰 상을 받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최청하: 글을 몇 년 동안 쓰면서 좋은 글 쓰지 못하다가 한 번 생각한 것이 내가 여기와서 생활하면서 앞으로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초심을 잃지 말자. 제가 탈북과정이란 것이 정말 생사를 가르는 과정이었는데 이런 과정을 생각하면서 글 써보자 하면서 쓴 것이 내 그곳에 찾아가리라 입니다. 이 작품이 이젠 1년 됐습니다만 난정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받아보는 큰 영광이었는데 난정 문학상을 받고 보니까 앞으로 이런 글을 좀더 많이 써보자 하고 지금도 정리하고 있습니다.

2017년 12월 난정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직접 최청하 씨가 들려드립니다.

내 그곳에 찾아가리- 최청하

자유를 찾아 떠나는 길 그리도 멀었다 그리도 험난했다. /내 몽고 키얼친 초원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따라 지친 발길을 옮긴다 길도 없이 목표도 없이 어둠 속에 동쪽만을 향해 /삶과 죽음의 길목에서 가야 한다는 일념 날아든 모래 한 입 뿜어내며 별빛 없는 밤하늘에 천운을 빌며/ 쓰러질 듯 가는 앞길에 불쑥 하늘에 치닫는 철조망과 망루 입벌린 기관총구 탐조등 불빛에 숨죽이고 순찰차 소리에 가슴 쥐어뜯으며/ 가자 기어이 살아서 찾아가자 죽음과 맞서며 그래서 넘었다 세 겹 철조망 자유를 찾는 길 생사의 길이었다/ 나 이제 이 땅에서 안도의 숨 몰아쉬는 자유를 찾은 몸 빛 밝은 창가에 앉아 생각한다 내 삶에 지쳐 쓰러졌다 일어날 용기 없을 때 다시 그곳을 찾으리라

기자: 그곳을 찾으리라 그곳은 어딥니까?

최청하: 초심을 잃지 말고 내가 탈북하던 그 과정, 생사의 길을 다시 생각한다면 쓰러지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기자: 남한생활 20년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최청하: 물론 후회가 없습니다. 초기에 여기 왔을 때 우리들 남북한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없지않아 복잡한 사람도 있고 하니까 갈등도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한국에 왔다는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고 북한의 친척들이 또 친지들이 저로인해 정말 힘든 과정을 거치겠구나 하는 것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면서 이제까지 후회없이 잘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겁니다.

최근에는 남쪽 지방으로 여행가서 바다를 보고 왔습니다. 3면이 바다인 반도에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기회였는데요. 그때 쓴 시가 다도해 입니다.

기자: 다도해는 어떻게 해서 나온 시입니까?

최청하: 다도해를 한 번 가보게 됐습니다. 일전에 한 번 가보고 쓴지 얼마 안된 겁니다. 다도해 가보니까  정말 생각되는 것이 많았습니다. 북한 2천만 주민은 다도해를 듣기는 했지만 보지는 못했고 다도해를 보자면 꼭 통일이 되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통일 되기 전까지는 북한주민들이 다도해를 볼수 없겠구나 그래서 내가 먼저온 사람으로서 다도해를 본 다는 것이 영광 스럽기도 하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래서 짧은 시를 쓴 것이 있습니다.

최청하 씨가 느낀 4월의 다도해 입니다.

최청하: 남해바다 모래사장 한눈에 바라본다 그림같이 펼쳐진 천지창조물을 /잔잔한 파도 수평선에 이어지고 기암괴석 하늘을 찌르는데 수수만년 파도와 싸운 섬의 절경 /점점이 널린 다도해를 바라보며 가슴 아린 생각에 눈시울 적신다 /이젠 바위로 굳어진 철책선 그 넘어 동토의 땅에 이천만 내 형제 그들 모두와 이 모래 언덕에 설날은 과연 언제일까

기자: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 한데요. 선생님이 본 다도해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최청하: 정말 생로웠고 기암괴석이 하늘을 찌르는 정말 금강산에 못지 않은 절경이 남해바다에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많은 사람이 우리가 금강산을 그리워 하는 것처럼 북한주민들도 다도해에 와 봤으면 이 잔잔한 파도소리를 들었으면 하는 생각에 모래사장에 앉아 눈시울을 젖셨습니다.

열심히 정신없이 일하다 자신이 살던 곳을 잠시 벗어나 새로운 곳에 가서 휴식을 하고 옵니다. 보통 이런 것을 휴가를 떠난다. 또는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고 하는데요. 이번에 최청하 씨도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최청하: 물론 만감이 교차됐습니다. 저는 전국을 시간나는데로 많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정말 이젠 20년이 다 되고 있는데 정말 아직도 새록새록 새로운 것들이 눈에 많이 띠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과외 시간에 생각나는데로 시도 쓰고 해서 좋은 시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최청하 씨의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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