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삼매경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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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무지개청소년센터의 한식조리기능사 양성 프로그램 '꿈을 잡(Job)아라' 2기 훈련생들이 요리 실습 하는 모습.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무지개청소년센터의 한식조리기능사 양성 프로그램 '꿈을 잡(Job)아라' 2기 훈련생들이 요리 실습 하는 모습.
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는 가슴이 설레입니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는 그 성취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인데요. 예전에는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최근 요리를 정식으로 배우고는 음식세계에 빠져버린 탈북여성이 있어 소개합니다. 오늘은 함경북도 출신으로 남한생활이 10년차인 이순희 (가명)씨의 이야기 입니다.

이순희: 제가 지금 수술을 하고 재활 단계입니다. 내가 요리 좀 배워볼까 하니까 요리를 배우고 싶으면 요리학원을 신청하세요 이러는 거예요.

지난해 다리 무릅관절 수술을 받은 이 씨는 아직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쉬면서 재활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그냥 놀고만 있을 수 없어 직업훈련 담당자에게 무료함을 호소하니 정부가 지원을 해준다는 대답을 듣고는 집근처 요리학원을 찾습니다.

이순희: 가서 등록하니까 내일부터 나오시면 됩니다 해서 준비물이 뭡니까? 하니까 자기가 요리한 것은 자기가 가져가라면서 요리를 담을 수 있는 그릇 두개 앞치마 등을 준비하라고 해서 준비해 갔죠.

이젠 남한사람이 다됐는지 북한 억양도 많이 사라졌지만 고향은 함경북도 입니다.

이순희: 2009년 저는 남한 영화를 즐겨 보다가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 것이 발각돼서 탄압을 받게 되니까 두만강을 건너게 됐어요.

수술을 받기 전 직업은 간호조무사. 지금 요리를 배워 식당에 취업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었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겁니다.

이순희: 일반 생활요리를 했어요. 많은 가정에서 다접하는 것을 해보자 왜냐하면 내가 집에서 해먹어 보자 해서 배우게 된 거예요.

남한에 정착해 처음 뭔가 배우기 위해 학원을 찾은 것은 첫번째 직업인 간호조무사 일 때문이었습니다. 그후 노인요양원에서 일하면서 대학을 졸업했고 매일 열심히 살았는데요. 젊을 때 북한에서 너무 고생을 해서인지 무릎관절이 다 닳아서 걸을 때마다 아픔이 심했고 결국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회복이 잘 안된 겁니다. 그래서 완치가 될 때까지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고 이번에 요리의 세계를 접한 겁니다.

이순희: 제가 요리학원 가게 된 것은 솔직히 이때까지 남한땅에 와서 살면서도 마트에 가면 여러 가지 부식재료 특히나 양념들이 많아요. 말하자면 굴소스 등 음식에 들어가는 양념이 많은데 솔직히 저는 그 숱한 요리 재료들이 어디에 쓰는줄 몰랐어요. 우리 이북 요리는 단순하잖아요. 고추가루, 마늘, 파 이게 다예요. 여기는 얼마나 재료가 많은지 몰라요. 소스만 해도 토마토 캐찹도 있고 이북에서 들어보지 못한 그런 양념재료가 많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런 재료들을 써보질 못했어요.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 건지 몰랐으니까요.

매일 하루 세끼를 챙겨먹고 여성이 집안에서 하는 일이 가족의 식사를 챙겨주는 것인데 새삼스럽게  무슨 학원까지 다니는가 싶을 겁니다. 물론 이 씨도 학원에 다니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이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행복해 합니다.

이순희: 요리도 재료를 넣고 볶는 순서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더라고요. 돼지고기 볶을 때도 참기름 넣고 볶기 전에 먼저 초벌 양념을 하더라고요. 참기름 넣고 후추넣고 마늘 넣고 이렇게 해서 양념을 해서 볶으니까 더 맛있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것을 모르고 그냥 집에서 그냥 볶으니까 맛이 없었던 거죠.

요리 삼매경에 빠진 이 씨. 이전에는 군것질을 많이 하고 제대로 된 식사는 하루 한끼 정도였는데 요리학원을 다닌 후에는 식습관도 달라졌습니다.

이순희: 내가 한 음식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맛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한 요리에 대해 자신감이 있고 신기한 거예요. 내가 한 음식도 이렇게 맛있나 하면서 더 배우고 싶은 거예요.

요리학원은 2개월 과정이었는데 그간 정말 많은 것을 알게됐습니다.

이순희: 생각나는 것이 해파리 냉채, 콩나물 해장국밥, 불고기 냉채, 오삼불고기, 땅콩죽, 바지락 죽 이것은 바지락을 가지고 죽을 쑤는데 죽도 이렇게 맛있을줄이야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돼지 불고기 스파게티, 삼계탕, 짱뽐찌게도 만들고 북어찜, 일본식 야키우동, 소고기 미역국은 시험까지 쳤거든요.

생전 처음 느껴보는 맛의 세계를 알았으니 그 기쁨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친구들 앞에서 그동안 배운 요리를 선보일 때가 왔습니다.

이순희: 우리 봉사단체에서 계곡으로 놀러 갔는데 다 북한 친구들이니까 제일 잘하는 음식을 한가지씩 해오자고 내가 제안을 했거든요. 요리학원에서 배운 것을 멋지게 뽐내려고 제가 비싼 재료를 샀어요. 소고기도 불고기감으로 사고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열심히 했는데 차를 타고 갔는데 여름 8월달이 얼마나 덥습니까? 가자마자 식사시간에 풀어놓으니까 냉채가 아니고 온채가 된거예요.

설레는 마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면서 요리를 정성스럽게 준비했고 자기가 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친구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얼굴에 웃음이 흘렀는데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순희: 저는 잘하려고 했는데 제가 맘 먹은 것과 달리 찬 음식이 아니고 더운 음식이 돼서 너무 실망했어요. 냉기를 그대로 보존해 갔더라면 맛있게 먹었겠는데 그걸 보존 못하다보니 얼마나 아쉬웠는줄 몰라요. 그래도 우리 친구들이 뭐라했는줄 알아요. 소고기 들어갔고 영양가 높은 거니 먹자 하고 웃으면서 먹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값이 내가 가지고 간 재료값의 절반으로 싸가지고 간 배추 겉저리 김치를 더 좋아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친구는 차게 해서 갔거든요. 더운데 앉아서 먹다 보니까 그 침치가 더 잘 팔리는 거예요. 난 돈을 5만원을 썼는데 그 친구는 1만원 써서 만든 것이 더 잘팔리는 거예요.

먹을 것이 넘쳐나는 남한생활. 북한에서는 남한영화를 보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줬다는 것이 발각돼 고향까지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할 정도입니다. 매일 텔레비젼을 통해 뉴스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또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의 정보를 검색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올 가을초 한반도를 강타한 자연재해 소식도 알게 됐습니다.

이순희: 이번에 태풍 링링이 지나갔어요. 여기도 좀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그 링링 태풍이 황해도 지방으로 갔다고 해요. 벼들이 싹다 누워있는 것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예요. 보니까 너무 가슴아픈 거예요. 가뜩이나 식량이 부족한 북한인데 추석전이면 여기보다는 좀 추우니까 아직 가을걷이가 안됐는데 물에 잠긴 벼를 보니까 너무 가슴아팠어요. 생산에 영향을 주지 않겠는가 하고 친구들과 보면서 걱정을 했어요.

올해로 남한생활이 10년이 됩니다. 50대에 맞이했던 제 2의 인생.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이순희: 지나고 보면 그래도 직업을 가지고 일할 때 그리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고 이럴때가 남한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게 사는 재미고요. 그때는 못 느꼈는데 제가 일하다가 다리수술을 하고 집에서 노는데 어느 정도는 편안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해야할 일이 없으니까 무료하니까 잡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멍하고 있는 것이 힘들더라고요.

요즘은 아픈 다리 때문에 잠시 쉬고 있지만 완전히 회복만 되면 또 다른 무언가를 위해 도전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답니다.

이순희: 사람은 일을 해야 사는 맛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내년 3월까지는 재활기간입니다. 국가에서 인정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내가 다시 고용지원센터에 전화를 했어요. 공부가 끝났는데 재확기간이 남아서 뭘 좀 더 배워도 됩니까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는 이렇게 자기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직업훈련을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는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함경북도 출신의 이순희(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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