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내가 할 일도 많다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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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명동에서 긴소매를 입은 직장인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서울 중구 명동에서 긴소매를 입은 직장인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주민이 남한생활에 적응하는 데는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지만 보통 3년 정도 걸린다고 알려졌습니다. 주변에 아는 사람도 생기고 거리의 풍경도 낯설지 않게 느껴지면서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된다는 겁니다. 오늘은 북한에서 간호사로 있다가 장사를 하면서 탈북한 남한생활 4년차 최수향(가명) 씨의 남한생활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최수향: 지금 공부하는 것 마치고 나면 배려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양강도 혜산이 고향인 최 씨는 지난 2014년 탈북합니다. 현재 남한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회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주위의 어려운 사람도 도우며 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겁니다. 최 씨는 북한에서 군복무 6년을 끝내고 고향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장사를 하게 되면서 탈북했습니다.

최수향: 여러가지 였는데 기본은 북한에서 중국으로 가는 기본 물품이 약초였고 그 외에도 농산물 가축류가 있는데 저는 기본 약초를 했고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품은 식료품이 대부분이고  공산품, 전자제품들이 있었어요.

탈북 당시 장마당 쌀값이 한킬로에  4천원에서 5천월할 때인데 사회병원에서 받는 월급이  1,700원이었다고 하니 어떻게 그 월급으로 생활이 가능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그래서 시작한 장사는 돈이 될만한 물건을 중국에서 받아서 장마당에서 파는 것이었습니다.

최수향: 제가 중국 거래를 할 때 제일 먼저 받아 왔던 것이 전기공급이 안되니까 집에서 사용하는 베터리를 사다가 집에 전기공급이 1시간 정도 올 때 베터리를 충전 해서 저녁에 불을 볼수 있게 하는 것을 샀고 그다음 태양광 판을 사서 지붕에 놓고 녹화기 돌려서 봤거든요. 제가 나왔을 때도 전기 사정이 좋아진 것은 없었고 수돗물도 시내만 조금 공급이 됐고 양강도 시내라고 해도 겨울이면 추우니까 수돗물이 안나와서 압록강에 나가서 얼음구멍을 내서 물길어 먹고 했어요.

장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을 통해 남한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최 씨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것은 남한에 가면 자유롭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남한에 도착합니다.

최수향: 한국왔을 때 1개월은 국가정보원에서 지내는데 그 앞에도 나가면 밤에 불도 켜져있고 시내가 다보이는데 밤에 창밖을 보면 불도 다 켜져 있고 해서 가만히 문열고 손시린데도 밖을 보면서 내가 꿈꾸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꿈이 깨면 북한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고 한국에 있는 몸이었지만 처음엔 실감이 안났어요. 갑자기 너무도  확바뀐 환경이어서요.

24살에 시작한 남한생활. 북한에서는 간호사였고 당원이었던 최 씨. 일단 남한사회를 알아야 한다는 마음에 일부터 했습니다. 물론 일하기 전에 전산회계 학원에서 자격증을 땄고요. 높은 임금은 아니었지만 작은 회사 단순경리 일을 하면서 대학진학도 준비를 했는데요. 남한에 입국한 바로 다음해에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우선 사회생활도 좀 더 하고 돈을 모아야 한다는 마음에 휴학을 했고 올해 1학년으로 학교생활과 회사일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최수향: 지금도 회사일을 하고 있는데 필요한 모임 아니면 친구들 모임에 참석을 못해요. 1학년 친구들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어렵게 수능마치고 대학교 입학해서 즐겁게 노는 분위기라서 친구 모임에는 많이 못나가고 있지만 소모임에 한 번씩 참석을 하면 재밌어요. 어린 친구들이 말하는거랑 노는 것이 저하고는 차이가 있거든요. 그리고 나이가 있으니까 교수님들도 많이 도와주시고 해서 학교생활은 별로 어려움은 크게 없어요.

주경야독이란 말이 있죠.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글을 읽는다는 뜻으로 집이 가난해 학교 다닐 형편은 못되지만 일하면서 밤에 공부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최 씨는 상황이 비슷하면서도 조금 나아보입니다.

최수향: 주간대학인데 제가 다니는 회사가 외국회사여서 예전에 제가 다니던 한국 회사보다는 시간여유가 있더라고요. 저번 학기에는 제가 월화수로 수강신청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수목금으로 해서  월화토일은 회사일을 하고 있어요.

기자: 회사에서 하는 일은 경리입니까?

최수향: 예전에 경리를 했었고 지금은 외국회사인데 국내 매니저로 거래처 관리를 하고 있어요.

미국에 있는 식품회사인데 한국 거래처들과 미국 본사의 중간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매일 출근을 하지 않고 대학생활과 병행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보통 남한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대학교 입학하면 나이가 20살이니 나이만 놓고 보면 최 씨는 이들에게 언니나 누나쯤 됩니다.

최수향: 친구들이 나이가 있으니까 생각보다 좀 말할 때나 행동에 조심스러워 하는 것이 있거든요. 제가 친구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밥도 사고 해요. 그렇다고 아주 인기좋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기자: 한국의 대학은 직접 경험하니 어떠했는지 북한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세요.

최수향: 학교에 가보니까 일단 학교 친구들 보면 정말 열심히 하거든요. 시험기간에는 집에 안들어가고 학교에서 밤을 세워 공부하는 친구들도 많더라고요. 제가 북한에서 대학을 안 다녀서 북한대학과 비교를 하긴 어렵지만 재밌는 것은 화장품 가게도 있어서 바빠서 아침에 화장을 못하고 왔을 때는 거기 가서 화장도 하고 갈때도 있고 편의점도 학교내에 있고 복사를 할 수 있는 문구점도 있고 학교내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어서 편한 것 같아요.

이제 4년밖에 안되지만 최 씨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넓어졌습니다.

최수향: 솔직히 말씀드리면 예전에는 한국와서 제가 한국만 알았는데 살아보니까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내가 뭔가 준비를 하고 공부를 하면 한국 뿐만 아니라 선택의 범위도 넓고 좀더 이룰 수 있는 것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회가 되면 세상이 넓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싶은데요. 그래서 힘들게 번 돈이지만 아낌없이 자신을 위해 쓰고 있답니다.

최수향: 처음 해외를 가본 것은 미국이고 그리고 필리핀에 또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갔고 이번에는 캐나다도 갔고 중국이나 베트남 태국도 가봤죠.

기자: 외국을 가자면 경비도 많이 들텐데 4년동안 이렇게 많은 나라를 가봤다고요?

최수향: 네, 제가 한국에 처음 와서 회사일을 할 때 제가 북한에서 군생활 하고 당생활 경력이 있어서 강의를 할 수 있어서 회사일 하면서 군부대나 경찰, 사회단체 강의를 하면서 돈을 모아서 영어공부를 하자는 생각이 있어서 외국을 갔던 거예요.

20대 후반에 접어든 최 씨 앞으로 할 일이 많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오늘을 사는 것이고요.

최수향: 결혼은 지금 1학년이니까 학교 마치면 그때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북한에서 군생활 6년 하는 것도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 같아요.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았는데 그분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떠나왔는데 나중에라도 통일이 돼서 만나면 떳떳하게 봐야 하잖아요. 잘살아서 제가 북한에서 도움받은 분들 한국에서 정착에 도움 받은 분들에게 갚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회사생활을 하면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최수향(가명) 씨의 남한생활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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