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태어났어요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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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태어났어요 서울 시내 한 전통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태어나서 한번도 내 의지대로 뭔가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모이라고 하면 모이고 하라고 하면 그 일을 해야 했습니다. 북한에 살 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는데요. 탈북해 남한에 가서는 그 누구도 나에게 뭘 하라고 하는 이가 없어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자신이 알아서 무엇이든 해야 하니까요. 오늘은 남한생활이 3개월밖에 안 되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최미나(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최미나: 1년도 안되죠. 이제 한국에서 산지는 3개월밖에 안됐어요.

남한에 먼저 정착한 어머니의 연락을 받고 자신이 어딜 향해 가는지도 모른 채 도착한 한국. 최 씨는 도착해서도 한국이 북한에서 말한 남조선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남한생활을 시작했는데요.

최미나: 저는 북한에서 살 때도 제 땅을 잘 걸어가지 못했는데 여기 오니까 우선 길부터 무서운 거예요. 어디 갔다가 돌아올 때 내 집을 못 찾지 않겠는가? 제일 걱정스러운 게 길 찾는 거예요. 너무 똑 같은 집이 많고 넓으니까 헛갈려요.

북한을 떠난 것은 지난해 11월 하지만 브로커의 안내를 받으며 제3국을 경유해 남한 땅을 밟기 까지는 반년이 걸렸습니다. 남한에 도착해서도 사회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3개월 적응기간을 마치고 집을 받은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이제 스스로 알아 해야 하는데요.

최미나: 장을 보러 갈 때는 도우미와 같이 가는데 집에 있다가 답답해서 나가자면 무서운 거예요. 혼자 나가자면 두려워요.

기자: 처음에는 하나센터나 탈북자에게 도움을 주는 봉사자들이 장도 같이 봐주고 동행을 하는 것으로 아는데요?

최미나: 우리가 사서 쓰는 것하고 여기 한국에서 물건 하고 말이 다르거든요. 도우미가 없으면 뭘 하나 사자고 해도 힘들어요. 예를 들어 오이를 사자고 해도 말은 같지만 여기서 쓰는 말은 다른 게 많거든요. 그게 두려운 거죠.

기자: 갑자기 환경이 달라져서 어리둥절 했겠어요?

최미나: 희한하죠. 진짜 내가 이렇게까지 사는 능력이 되는가? 내가 진짜 한국 땅에 왔는가? 아직 믿음이 안가요. 너무 희한한 것이 많아서요. 우선 버스 탈 때와 지하철 탈 때 느끼는 게 많았어요.

북한에서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고 탈북 전까지 고아들이 사는 곳에서 생활했다는 최 씨. 남한에 도착한 처음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미나: 저는 여기 오자마자 차에 놀랐어요. 북한에서는 차를 많이 못 봤는데 여긴 사람보다 차가 더 많은 거예요. 우린 시집갈 때나 승용차를 탔는데 차가 너무 많아 희한하고 그 다음에 우리는 버스 탈 때 줄을 서서 돈을 내고 탔는데 여기는 돈도 안내고 카드를 대면 소리가 나고 버스가 너무 많은 거예요. 지하철도 무서워서 못 탔는데 진짜 한국이 이렇게까지 발전했나 놀랐어요.

어딜 가나 먹는 문제를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하는데요. 먹을 것이 넘쳐 나는 남한이지만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습니다.

최미나: 여기서 먹는 것은 북한 식으로 먹죠. 저는 아직 한국 음식을 먹는 것이 힘들어요. 우리 북한 음식 하고 한국 음식의 맛이 좀 다르거든요. 처음에 와서 입맛이 맞지 않아서 하나도 못 먹었어요. 그런데 지금 집을 받고 혼자 사니까 제가 북한에서 먹던 음식 맛을 찾아서 먹거든요. 주로 우리는 설탕을 안 넣어요. 그런데 한국은 설탕을 많이 넣어요. 북한에서는 대체로 보면 70페센트는 설탕을 안 넣었던 것 같아요. 저는 단것은 안 좋아하는데 한국은 단것이 엄청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햄버거나 피자 이런 것을 아직 못 먹어요. 입에 맞지 안으니까요.

기자: 밥은 매일 한다고 해도 반찬은 뭘 해 드세요?

최미나: 저는 주로 고추를 장에 찍어 먹어요. 저는 시골에 살았었으니까요. 그리고 계란도 많이 먹고요. 또 감자 반찬하고요. 그 다음에 돼지 고기도 많이 못 먹었는데 돼지 고기도 먹고요.

기자: 물론 세끼 밥을 해 드시겠죠?

최미나: 쌀밥도 진짜 북한에서는 먹기 힘들었는데 지금 쌀밥을 매일 먹는데 진짜 희한해요.

아직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입니다. 물론 하면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우선은 남한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같은 말인 듯 하면서 전혀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을 땐 그 자리를 어색하게 피하곤 합니다.

최미나: 제가 뭘 몰라서 물어봐야 하는데 길가에서 사람에게 물어보면 말투가 먼저 다른 거예요. 한국 사람이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는데 제가 질문을 하자면 좀 두려워요. 내가 물어보면 말투가 틀려서 잘 알려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최대한 내가 노력하다가 안되면 질문을 하거든요. 질문을 하면 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두 번 세 번 반복 하면 친절하게 알려줘요.

기자: 지금 일을 하십니까?

최미나: 저는 지금 컴퓨터 학원 다녀요.

기자: 빈손으로 와서 시작한 생활이라 모든 것을 사야 했을 텐데 어떤 것을 장만하셨나요?

최미나: 냉장고, 세탁기, 그릇 이런 것 먼저 사거든요.

기자: 텔레비전은 안 사셨나요?

최미나: 텔레비전, 밥솥, 전자레인지는 다 줬고요

기자: 컴퓨터 학원에 다닌다고 했는데 안 사셨어요?

최미나: 노트북은 샀어요. 한글 좀 치고… 처음에는 노트북을 사면 어떻게 갖고 놀지 했는지 지금은 좀 알아요.

학원에서 태어나 처음 접하는 컴퓨터 사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컴퓨터를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전자우편도 보내고 손전화로 사진을 찍어서는 예쁘게 원하는 모양으로 편집도 하는데요. 뭐든 하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데 그게 생각처럼 잘 되질 않아서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최미나: 우리가 나오면 제일 힘든 것이 먼저 공부를 해야 하거든요. 왜냐하면 북한에서 공부한 것과 여기서 공부한 것이 달라요. 우선 말이 달라요. 예를 들어서 여기서 “괜찮습니다” 이 말을 우리는 “일 없습니다” 이러거든요 우리는 늘 익숙해서 뭐라고 물어보면 일 없습니다 이러는데 사람들은 일 없습니다가 뭐지? 이러는 거죠. 우리는 좋은 말인데 상대방은 좋은 말로 안 들리는 거죠. 그 다음에 우리는 “공부를 배워줄 수 있습니까?” 이러는데 여기는 “공부를 가르쳐줄 수 있습니까?” 이러는 거죠. 말이 달라요. 진짜 제일 힘든 것이 언어가 다른 거예요. 이거 내가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하거든요.

기자: 탈북자분들이 남한에 가면 제일 먼저 취득하는 것이 운전면허라고 하던데 따셨나요?

최미나: 운전면허를 배울 때도 우리는 녹색을 보고 풀색이라고 하거든요. 북한 책은 이해가 되는데 한국 책을 놓고 읽어보자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보통 남한 여성이 20대 중반이라고 하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직장 생활을 준비할 때입니다. 최 씨도 남들처럼 우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까 기자는 짐작을 해봤는데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최미나: 네, 하고픈데 우리는 여기서 대학을 가면 무료거든요. 한국에서는 탈북민들 진짜 많이 도와줘요. 그런데 우리가 못 따라 가는 거에요. 본인이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닐 것 같아요. 저는 처음에 하나원 나올 때 나도 대학을 가자고 했는데 대학을 가자면 내 나이도 있고 한데 대학을 가면 언제 배워서 언제 취직해서 살겠어요. 그래서 저는 대학을 포기 하고 컴퓨터를 배워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기자: 북한에서는 생각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이제 남한에서 새 인생을 시작했으니 하고 싶은 것도 많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최미나: 지금 현재까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중심을 못 잡겠어요.

기자: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데요?

최미나: 진짜 직업이 엄청 많으니까… 북한에서는 못 살았으니까 내일 아침 밥이 없으면 그거 벌기 바빴는데 여기서는 자유로우니까 막상 뭘 해야 할지 진짜 떠오르지 않아요.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생활이 3개월 됐다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최미나(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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