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미래를 향해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0-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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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미래를 향해 허정희 씨가 2019년 부산광역시장배 피부미용 기능경진대회에서 수상을 한 후 동료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허정희 씨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부산에서 피부미용실을 운영하는 탈북여성이 있습니다. 이 분은 북한에서는 발족심 즉 발 마사지로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는 꽤 이름을 날리던 분이었는데요. 새로운 인생을 펼친 부산에서는 발 관리뿐만 아니라 전신 피부미용으로 협회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좀 더 나은 기술연마를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하는 허정희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허정희: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믿거든요. 내가 여기서 자격증을 따고 알아야만 하더라고요.

최근 허 씨는 국제피부미용학과 과정을 마쳤습니다. 50대 중반이 넘어 무슨 공부냐 하겠지만 일하면서 공부를 하는 이유는 매일 새로운 제품과 기술이 나오기 때문에 남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현재 자신이 아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허정희: 경남정보 대학은 4년제인데 2년제로 졸업하면 전문 종합 면허증을 주거든요. 미용 계열에 관한 자격증 예를 들어 피부미용, 헤어, 네일 자격증을 받으니까 그쪽 계열에서 일할 수 있는데 저는 국가자격증도 있지만 내가 북한에서 하던 일과는 너무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까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것을 알아야 하거든요. 북한에서는 화장품에 대해서 몰랐어요. 그런데 여기서 발족심으로 처음 시작했는데 발 하나만 가지고는 내 사업을 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바디 관리를 하자니까 내가 우선 화장품에 대해서 모르고 이 미용 분야에 대해 너무 몰라서 처음에는 난감했어요.

대학에서 화장하는 법을 배운다고 하면 북한 청취자 여러분은 무슨 공부를 한다는 말인가 하실 텐데요.

허정희: 화장도 배우고 속눈썹에 대해서도 배우고 그 다음 피부미용에 대해 배우거든요. 사람의 인체 해부학적 근육 등에 대해 모두 배우니까 저는 이 학교에 들어간 것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고객한테 당신의 몸은 어떻게 됐다. 그래서 내가 이 제품을 쓴다고 설명을 해줘요. 그러니까 고객도 좋아한단 말이에요.

기자: 보통 여성들이 매일 하는 것이 화장인데 굳이 학교까지 다니면서 배운다고 하면 뭐가 얼마나 틀리겠어 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허정희: 많이 틀리죠. 저는 얼굴 관리는 자신 없어서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당당하게 하거든요. 고객의 피부가 건성인지 지성인지 고객에 맞게 해주거든요. 제가 혼자 공부를 했으면 아마 이런 기술을 얻지 못했을 거예요. 학교에서 배우고 또 지금도 대학에서 배운 것을 기초로 해서 계속 배우고 있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씩 시간을 내서 2년 과정을 끝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그냥 머릿속 지식으로만 두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실습을 통해 몸에 익히려고 부단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허정희: 우리 신랑도 해주고 저도 하지만 고객에 맞춰서 피부 분석을 하고 해준단 말이에요. 고객층이 다양한데 원장님 마음이 따뜻하고 잘해준다고 하니까 거기서 제가 느낀 것이 탈북민이라고 차별 두지 않고 이분들이 남한 사람과 똑같이 대해준단 말입니다.

허 씨가 탈북한 것은 지난2013년 입니다. 다른 여느 탈북자들과는 좀 다르게 허 씨는 아들의 앞날을 위해 중국 방문길에 올랐다가 결국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길을 선택했던 겁니다.

허정희: 내가 못다한 공부를 자식 잘 키워서 나라에 받친다는 생각이었는데 아들이 외할아버지 때문에 대학을 못 갔거든요. 아들 앞길을 생각해서 중국에 가서 문건을 찾아 해명을 하자고 나왔거든요. 나는 이것을 해명하기 전까지는 안 돌아간다고 했지만 솔직히 안 간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북한의 자식들에게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을 했는데 장성택이 북한에서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 나만 없으면 아이들한테 외갓집 때문에 고생하는 것은 없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안 갔거든요.

허 씨는 남한에 가서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빠르게 적응 했습니다. 처음에는 생산공장에서 일을 했지만 당장 손에 쥐어지는 월급에 만족하기에는 뭔가 콕 찍어서 말하기 힘든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다 안정적으로 자신의 기술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 피부미용 입니다.

허정희: 직장에서도 제가 20일 만에 조장을 했거든요. 그런데 나이가 있으니까 내가 계속 일을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나이 먹어도 할 수 있는 일은 북한에서부터 하던 발족심을 해야겠다고 맘 먹고 자격증을 따자고 학원에 9시까지 도착해야 하니까 집에서 6시에 나와서 버스 타고 지하철 갈아 타고 가다가 어떤 때는 지하철에서 졸다가 내릴 곳을 지나쳐서 다시 돌아오고 하는 일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발관리 자격증을 땄는데 민간 자격증이라고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국가 자격증 시험을 치는데 60점이면 합격인데 11번 떨어지고 12번째 합격을 했단 말입니다.

열 번도 넘게 떨어지고 어렵게 손에 쥔 국가자격증. 이 자격증을 가지고 자신이 운영하는 피부미용실을 개업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허정희: 탈북민 최초로 사단법인 한국 피부미용사 부산지회 사하구 지부장이 됐거든요.

힘든 한 고비를 넘기고 나니 좋은 일이 겹겹이 터집니다.

허정희: 여기 와서 제일 기뻤던 것은 피부 미용인이라면 한번쯤 참가하고 싶어하는 경진대회에 참가를 해서 금메달을 받았어요. 북한에서는 그 흔하다는 공로 메달도 못 받아 봤는데 여기 와서 금메달을 받았을 때 심장이 멎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연속으로 부산 시장배 대회 나가서 메달 받고 했거든요.

남한생활은 이제 누가 보더라고 안정권에 들어섰는데 마음 한구석은 무거운 돌덩이가 누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북한에 있는 딸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요.

허정희: 북한에 있을 때는 오직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는데 한국에 오니까 이렇게 돈도 벌고 공부도 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환경에 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거든요. 지금도 신랑하고 얘기 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도 여기 와서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어요. 북한에 내가 전화를 할 때 우리 딸이 “어머니 배고파 죽겠습니다. 춥습니다” 이런단 말입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우리는 먹기 싫어서 안 먹는다고 하면 그 말을 이해를 못한단 말이에요. 새벽 5시부터 몇 십리 길을 걸어 와서 엄마 전화를 기다렸는데 저녁에 통화가 됐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어요. 하루 종일 굶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어요? 우리는 하루 종일 굶어도 끄떡없는데 북한에서 이렇게 살던 내가 여기 와서 바다 낚시를 하고 또 차를 끌고 가고 싶은 곳은 아무데나 가잖아요. 서울까지 당일치기로 다녀 오거든요.

문제가 생기면 걱정만 하지 말고 해결을 해라. 내가 감당하지 못할 일은 내게 벌어지지도 않는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데요.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좋은 곳만 바라보며 허 씨는 내일을 설계 중입니다.

허정희: 저는 돈을 열심히 벌어서 없는 사람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입니다. 처음 정착해서 생활이 넉넉지 않았을 때도 제가 100만원씩 후원을 했고 여러 분야에 봉사를 했거든요. 저는 돈을 벌어서 봉사하는 것이 제 계획입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부산 사하구에 사는 피부미용실 원장 허정희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 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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