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남한에서 일정기간 동안 탈북자들의 신변보호를 맡고 있는 일선 경찰들은 때로는 이들의 결혼식도 주선하기도 하고 직장을 알선하거나 남한 내 가족들 찾아 주기도 합니다. 또 바로 이웃에서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을 돕고 있는 도우미들의 활동도 활발합니다. 사람 사는 길, 오늘은 탈북자의 남한 가족을 찾아준 경찰과 탈북 여성을 돌보는 한 가정주부, 도우미의 얘기를 전해드립니다.
지난 달 서울의 한 경찰서 보안과의 김 상진 경위가 신변보호를 담당하고 있던 탈북자 윤경철 씨의 남한 가족을 찾아준 훈훈한 일이 있었습니다. 김상진 경위, 윤경철 씨 등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가명으로 씁니다.
탈북자 윤경철 씨는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 중 지난 2005년도에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갔다, 베이징주재 한국대사관을 거쳐 2006년 12월에 남한으로 입국했습니다. 일정기간 동안 윤 씨의 신변호보를 맡게 된 김 경위는 윤 씨가 남한의 가족, 혼자 월남하신 할아버지와 그 가족을 찾고 있는 것을 알게 되자 남의 일 같지 않아 적극 나섰습니다.
김상진: 할머니한테 할아버지가 6.25 당시에 월남했다는 것을 얘기해서 그런 내용을 들었기 때문에 본인이 입국해서 이북 5도청에 찾아보려고 이북 5도청에 가서 물어보니 없더래요 그래서 저한테 얘기를 한 거죠.
김 경위는 여러 가지 경로를 거쳐서 다행히 윤 경철 씨의 남한 가족을 찾아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할머니가 그리며 늘 들려주었던 친 할아버지는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할아버지가 남한에서 재혼하신 할머니와 그 후손들과의 만남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김상진: 주민조회를 해서 제적부 열람하고 그래서 할아버지는 찾았는데 그분은 돌아가셨어요. 2001년도 사망하시고 그래서 할머니 (남한에 와서 결혼 하신) 되는 분하고 자녀분들이 5분이 있고, 또 북한에서 6.25당시 작은 할머니가 남한으로 오신분이 있어요. 월남 하신 작은 할머니는 살아계셔요 서울에... 그래서 집으로 찾아가 그분도 만났어요.
이들 중 가족들 4명이 윤경철 씨를 찾아와 처음으로 남한의 가족의 집을 방문 한 것입니다. 김 상진 경위는 20대 초반의 윤 경철 씨가 가족도 없이 혼자와 늘 외로워 보였다며 하지만 젊은이답게 열심히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말합니다.
김상진: 그 사람은 가족은 없어요. 지금은 기술배우기 위해 학원 다니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정착하기가 남한사회와 북과 차이가 있어 조기 정착에 어려움을 겪어요. 하지만 활달해서 잘 적응할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가족들을 찾았으니 남한 생활이 많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김상진 경위는 탈북자, 이탈주민들을 돌보며 신변의 문제가 있지 않을까 또 몸이 아프지 않을까 신경을 많이 쓴다며 일부 탈북자들이 보호를 벗어나 마음대로 행동할 때가 있어 그 점이 제일 불안하고 어렵다고 말합니다.
김상진: 저희 관내에 이탈주민들이 많아서 많이 보호 하고 있어요.
기자: 요즘에도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나요?
김상진: 조금씩 들어오고 있어요.
지금까지 제일 힘든 점은 어떤 것이었어요?
김상진: 연락이 잘 안 된다든지 그런 경우가 혹시 있어요. 그리고 범법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어 그런 경우가 어려워요 성실한 사람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어요.
그분들의 건강은 일반적으로 어떻습니까?
김상진: 좀 아픈 사람들이 많아요. 주로 잔병이 많더라구요.
이와 함께 한 동리에서 탈북자들이 모든 남한 생활이 익숙해 질 때 까지 보살피며 돕는 도우미들의 활동도 있습니다. 지금 4년째 한 탈북여성을 돕고 있다는 남한 적십자사 회원인 최경애 씨도 탈북여성이 연락을 끊고 살던 곳을 이탈했을 때 많이 걱정을 했다고 전합니다.
최경애: 처음에는 이 사람이 아무연락도 없이 없어져서 참 고생 했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뭐라고 하고 어디 갈 때 신고를 하고 가라고 했죠. 그 다음부터는 얘기 하고 가더라구요. 얘기하기 어려우면 이메일에다 문자라도 보내고 그랬어요.
6년 동안 중국에 숨어 살았다는 이 탈북여성에게 좀 더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 처음에는 자주 연락도 하고 드려다 보고 했지만 너무 많은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다는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 당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최경애: 우리가 너무 가까이 가면 싫어해요 그냥 동리에서 아는 사람같이 대하고 있어요. 그러면 좋아해요. 자기 말로도 그래요 자기는 이북에서 나온 사람하고 어울리는 것도 싫다고 해요 왜냐하면 당당히 살고 싶다고 그래요.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이 탈북여성은 남한의 한 시민으로서 이웃들과도 잘 어울리며 명절이면 선물도 주고받는 등 이 정도면 남한 정착에 성공한 것으로 본다고 흐믓해 합니다.
최경애: 직장을 다니니까 아침 일찍 나갔다 저녁에 들어와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 옆집의 연세 많은 분 어머니 같이 잘 어울려요 그런데 제가 돌보는 사람 같은 경우는 좀 깨우쳤어요. 그래서 명절 때 되면 꼭 인사를 하고 그런 것을 해요. 하고 다니는 것도 남한 사람보다 더 잘 하고 다녀요 얼마나 깔끔하게 하고 다니는지 몰라요.
최경애 씨는 지금 이 탈북여성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고 가끔씩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정도라며 아무래도 탈북자들의 성격에 따라 정착 성공여부에 좌우 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최경애: 너무 잘 살아요. 이 사람은... 그래서 이 사람은 제가 걱정을 안 해요 많이 정도 들었어요. 요즘은 자기가 잘 알아서 하고 직장을 다니니까 또 워낙 싹싹해서 붙임성이 좋아서 언니 동생하고 남자 친구들도 만나는 것 같아요.아무래도 옷 같은 것은 우리가 많이 구입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옷 입을 것 같은 것이 있으면 전화를 해요 와서 가지고 가서 지가 입을 것은 입고 안 입는 것은 다른 사람 주고 그래요.
탈북자를 돕는 일에 보람을 가지고 있다는 최경애 씨는 처음 탈북자를 만났을 때의 난감 했던 일들이 이제는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봉사의 즐거움을 강조 합니다.
최경애: 보람이 있죠. 왜냐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직접 손잡고 다녔어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혼자 얼마나 걱정이 많아요. 중국에서도 6년씩 공포에 살았잖아요. 공포에 살다 그 공포를 못 잊어 계속 잠도 못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제는 남한 사람이 되어서 떳떳하게 다니고 생활 하는 것 보면 좋아요.
적십자사 회원인 최 경애 씨는 탈북자를 돕는 도우미 일은 통일부가 적십자사에 위임을 해 적십자사에서 회원들에게 지정을 해 주기 때문에 계속 탈북자의 도우미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최경애: 저희는 적십자사에서 교육을 받아서 1차로 했어요 그리고 이것이 각 동마다 지역마다 다 있어요. 그래서 집이 임대가 많은 곳으로 새로 입국하는 탈북자들이 가기 때문에 그 쪽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하죠.
최경애 씨는 또 새로운 이웃이 될 탈북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