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길: 북한동포 인권 참상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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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원희

오늘은 이달 초 미국 켈리포니아주에 있는 샌디에이고 에서는 북한동포들의 인권과 탈북자들의 참상을 알리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행사는 한인 1세대와 2세들이 함께해 큰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6월 초 University of California at Sandiego,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 의 한인 대학생들이 설립한 인권단체인, Justice for N. Korea, 약칭 JNK 가 주최한 북한동포 인권 참상의 밤 행사가 한인교회에서 열렸습니다. Justice for N.korea,는 한국말로는 “북한에게 정의를" 이란 뜻입니다.

죠셉 전 회장은 ‘북한에게 정의’를 이라는 단체가 창립 행사로 샌디에이고 지역에서는 잘 알려 지지 않은 북한인권 참상에 대해 경험자의 증언과 탈북자들이 탈출을 담은 기획영상물 서울기차 등이 상영되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6.25전쟁 전 사상범으로 몰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온갖 고문을 당했던 김 영철 목사님의 생생한 증언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영철 목사님이 북한의 인권실상이 자기 때 만 해도 어땠는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고....

김 영철 목사는 1947년 김일성 정부가 수립되던 시기에 조선민주당을 설립한 조만식 선생이 소련 케지비, 즉 비밀경찰 첩보기구 산하에 억류되어 있을 때 비밀 조직을 통해 조만식 선생을 남으로 모셔오는 운동을 하다 잡혔습니다. 김 목사는 사상범으로 수용소에서 북한이 얼마나 정치범들을 노예화하고 학대 했는지 학생들에게 바로 알리기 위해 증언한다고 자유아시아 방송에 전했습니다.

1947년에서 1950년까지 북한에서 감옥에 있었어요. 그때 감옥에 들어갔던 정치범들은 목사님들 기독교인들 학생들이 주로 많았고 평양에서 케지비, 소련특무대에 체포가 되어서 김 정일 정부가 서면서 재판을 김일성 정부에게 받고 함흥 형무소로 갔다가 함흥 흥남 수용소로 갔다가 흥남서 본궁이라는 수용소 비료공장을 수리해 정치범들을 수용하는 수용소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두만강 끝에 아오지 수용소에 가서 1년 있다 6.25전쟁 바로 전에 살아났어요.

김 목사는 당시 수용소에 있던 많은 정치범들은 다 죽었고 혼자만 살아서 나와 현실을 목격하고 체험한 사실이 그대로 알려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탈북자들이 와서 얘기하는 인권하고 소련 케지비 에서 당하고 북한 정치보위부에서 당했던 정치범 얘기는 전혀 달라요. 그 사람들은 북한에서 살다가 나오는 사람들이고 공산주의가 시작되는 북한 땅에서 처음에 어떤 정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일반 피란 나온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싫어서 나온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런 실정은 다 모르죠. 정치범이 6.25전까지 살아나온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는 이어 북한에서 인권유린을 당한 탈북자들도 정치범들이 당하는 인권탄압은 물론 비밀리에 진행되는 인권탄압은 모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산주의가 원래 그렇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집권자 몇 사람 이외에는 거기서 충성하다 감옥에 들어가고 죽게 되어 있는 거예요 8:43왜 죽느냐? 살려놓으면 비밀이 탄로가 나니까 그 사람들은 비밀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그렇게 처분을 하는 겁니다. 그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는 이어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인권문제는 들먹일 필요도 없이 인권은 아주 없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인권이라는 것이 우리가 점잖게 얘기 하는 것이지 사람으로 취급을 안 하는 거예요. 얼마나 고생을 하면 사람이 꼬부라져 강아지 같이 살아요. 죽도록 일을 시키고 거기서 죽으라는 거지 살아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살아나가면 비밀이 누설 될 것 같으니까 살아나가지를 못하게 하는 겁니다. 오늘 행사를 한 학생들이 북한의 비참한 인권 침해는 모릅니다. 한국에서 군사정부가 한 것은 북한의 인권침해에다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공산주의가 그렇게 비인간적이고 잔악하게 한다는 것을 잘 몰라요.

그는 자기가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다행히 나이가 어렸기 때문 이었다고 말합니다.

전쟁준비가 한창일 때 감옥에서 그렇게 고생하고 겨우 살아 나와서 쥐같이 땅속에 숨어살다가 6.25전쟁이 나는 바람에 살아났습니다. 6.25전쟁 때 남으로 나와서 나오는 길에 미국 24사단에 합세해서 6.25전쟁을 하고 미국으로 왔습니다.

김 목사는 미국에 온 후 신학을 공부하고 40여 년간 미국 교회에서 목회를 한 후 지금은 은퇴해 자신이 겪은 정치범들의 인권 실상에 대해 책으로 냈다며 이날 증언을 들은 2세 학생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내가 당한 일 이니까 영어로 설명을 하면서 얘기를 하니까 자기들이 생각하는 북한이 아니고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겁니다. 모든 것이 너무도 비밀로 되어있고 그에 해당해 감옥에 들어가 고생을 한 사람 그 사회에 살면서도 모릅니다. 그런 얘기를 하니까 학생들이 상당히 놀라더라구요.

죠셉 전 회장은 이번 행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증언을 듣고 또 우선 탈북자들의 참상을 알리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북한인권 참상을 널리 알리는 것에 주력을 해서 그것 차제에 의미가 있다고 보고 이번 행사가 1세들과 화합, 협력을 같이 했어요. 이런 행사가 주로 2세들 중심으로 열리기 때문에 1세들은 저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세요.

그는 이어 부모님들의 기성세대와 함께 준비하고 진행한 행사로 미래를 이끌어갈 2세들이 모여 북한의 인권문제를 함께 나눈 것이 또 다른 효과가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2세들이 1세들과의 다리역할을 하면 1세들은 우선 경제적인 여력이 있고 또 한인사회 영향력이 있는 만큼 이러한 행사를 하면 훨씬 효과적으로 우리의 행사를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따라서 이번에 모금한 전액을 역시 한인 2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북한인권단체인 LINK 가 중국에서 벌리고 있는 탈북자 돕기 사업에 전달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굉장히 많은 수학을 거두어 링크에서 운영하는 중국에 있는 탈북자 보호소와 고아원 2세들 몇 명이 가서 직접 일을 하고 있는 20여 곳 에 전액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한편 전 회장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도 몇 년간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북한의 인권 실상에 대해 알지 못하다 미국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접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단 한 번도 북한인권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어요. 미국에 와서 북한인권을 접 했을 때 그 충격이 굉장히 강했어요. 그때부터 1세와 2세를 이을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북한인권에 대해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JNK의 장기 계획의 하나로 북한의 탈북자들이 앞으로 미국에 입국할 때 샌디에이고로 들어올 것에 대비해 그들을 교육하고 미국생활에 정착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 이라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