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원희
인권이야기, 사람 사는 길, 오늘은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인사들로 부터 평양의 변화에 대해 알아봅니다.
지금은 북한이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영어를 해야 한다고 해서 좋은 시설을 갖추어 놓고 영어교육을 집중적으로 시키고 있어요.
최근 북한을 방문하는 남한 인들이 늘어나면서 북한 평양의 여러 가지 변화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지난 5월에 북한을 방문했던 통일연구원 임순희 선임연구원은 평양의 학교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며 영어 교육현장을 소개했습니다.
선생님이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오가는 대화를 영어로 다해 분위기가 아주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선생님이 북한여성이었는데 발음이 좋아요. 또 한방에서는 미국 영화를 아이들이 헤드폰을 끼고 청취하는 것을 보았는데 시설도 좋았습니다.
임 연구위원은 지금 북한은 특수학교에서 특수 시설을 통해 영어교육을 집중 적으로 시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김일성이 한 70년대부터 우리가 미 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영어를 배운다 전쟁이 나도 영어로 말이 오가면 못 알아들으면 안 되지 않느냐 그래서 영어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북한이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영어를 해야 한다고 좋은 시설을 갖추어 놓고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임 연구위원은 이어 평양 거리에 여성들의 모습이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2002년도 평양거리 여성들의 모습이 2006년도 2007년도 에 많이 달라졌어요. 한마디로 여성들의 옷차림이 너무 환해 졌어요. 그리고 패션이 2002년도에 본 여성들과 너무 달랐어요. 머리모양 차림새 그때는 모자 쓰는 여성이 없었어요. 사실 북한 여성 들이 운동모자안 써요 조선여성의 옷차림이 아니라며 못쓰게 하는 편이었죠. 바지고 잘 못 입게 했고 그런데 운동모를 쓴 여성도 보았고 바지 정장 차림도 보았고 그리고 원색의 옷을 입었는데 상당히 색깔이 다양하고 화려해요.
이와 함께 아이들의 차림새, 들고 다니는 소품까지 달라진데다 영어가 인쇄된 옷을 입은 사람들도 만났다고 전했습니다.
아이들 옷차림도 예쁘고 깔끔하게 입히고 조그만 어린이들도 배낭도 메고 손잡고 가는 것도 보고 작년 5월, 금년 5월에 본 것은 거리가 환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12:10 영어글씨가 들어간 옷을 못 입게 한다고 그랬는데 작년에 가서 영어 글씨 써 있는 옷을 입은 여성을 보았어요. 평양시내를 벗어난 곳이긴 하지만 금년에도 저하고 같이 간 분이 영어 글씨가 써진 옷을 입은 사람을 보았다고 합니다.
역시 최근에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남한의 민간단체 기아대책의 정정섭 회장도 그 동안 여러차례 방문을 통해 평양거리가 활기차고 여성들의 고급스러운 옷차림도 쉽게 눈에 띄어 변화를 겪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나와서 다니는 사람들도 목표 없이 걷는 사람들같이 어깨가 축 쳐지고 휘청휘청하고 색깔 있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가보면 사람들도 많이 다니고 걸음이 활기차고 또 색깔 있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눈에 뜨이고 심지어는 명품 옷이나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어 엄청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임 순희 연구위원은 평양에서는 장애인들을 모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먼 곳에 격리 수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평양거리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장애인들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모두 일반 장애인 이라는 안내원 설명을 듣고 뜻밖이었다고 하는데....
2002년도에 장애인 하나를 보았고 작년에는 5명을 보았어요. 보고나서 안내하는 분께 물었어요. 안내지만 감시하는 분들이죠. 영예군인이냐 군대에서 다쳐 재대한 사람을 영예군인 이라고 하는데 아니라고 일반인이라고... 5명을 보았다고 했더니 보았느냐고 .... 소아마비도 보았고 반신불수 환자 같은 분도 보았고 이번에도 한 서너 명 보았는데 저하고 같이 간 분도 몇 사람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런 것도 북한의 변화를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특히 남한 통일연구원은 해마다 북한의 인권 백서를 출간하기 때문에 북한 방문이나 활동에 대한 제약이 심하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처음방북 때는 신분을 위장했지만 올해는 명찰까지 달고 다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쪽 관련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인권백서를 누가 쓰는지 다 알고 있고 작년 까지는 저희가 신분을 위장하고 갔어요. 하지만 다 알더라구요. 여기오기 전날에 아는 척을 해요. 올해는 신분을 다 노출하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 명찰을 달고 다녔어요. 항상 옆에서 2-3명이 따라다니긴 해요 저희가 메모를 하면 다 보고 있어요.
임 연구위원은 유치원을 비롯해 가는 곳곳마다 걸려있는 정치 선전 구호를 카메라에 담았는데 예전처럼 필름을 뺏지는 않았지만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우리 간 사람들이 사진을 막 찍으면 카메라를 뺏어 가지고 지우는 경우가 있어요 . 옛날에는 필림을 다 빼버렸죠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니까 하나씩 지우니까 이번에도 디카, 디지털 카메라를 빼앗겨 다 지우는 것을 보았어요. 제 경우도 복도의 계단의 구호가 달려있어 찍었더니 어느새 옆에 와서 왜 관심을 갖느냐고... 구호가 김 정일 위대성을 얘기하는 것 아니냐 이것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찍고 있다고 했더니 안내원이 그냥 웃고 말더라구요 .
한편 아세아인권센터 소장인 경북대학교 허 만호 교수는 언론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변화 소식을 접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는 북한 주민들의 권리나 의식 수준이 아닌 단지 외형적인 변화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인터뷰나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서 그 사람들이 실제로 삶의 내용이나 또 의식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한 조사 결과를 전혀 접한 바가 없습니다. 인권과 관련해서 얼마나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는지는 별개 문제이기는 한데 우선 당장 인권의 각 국면을 볼 때 실제로 최근에 변화가 있었다는 자료를 접하지 못했습니다.
허 교수는 그러나 북한당국이 취한 조치 가운데 긍정적면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형사 소송법이 2004년에 바뀌고 여니 때와는 다르게 2006년도에 또 한 번 바뀌었어요. 그래서 그런 것도 나름대로는 긍정적인 변화로 볼 수 있고 또 하나는 일반국민 들이 자기의 권리를 알 수 있도록 한 것이 중요한데 과거에는 법을 구체적으로 형법, 형사 소송법에 대해 일반 주민들이 알기가 쉽지 않았는데 2005년에 대중용 법전을 출간해서 그런 면에서 나름대로 서방세계가 원하는 제스추어 (모양새) 취하는데 실질적으로 일반 주민들의 권리의식 향상에 어느 정도 기여 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죠.
허만호 교수는 북한주민들의 권리나 인권문제에 대해 객관적으로 향상이 되었는지 아니면 더 나빠 졌는지는 어느 누구도 얘기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