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길: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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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도 엄연히 헌법이 있지만 주민들의 실생활에서 전혀 다르게 운영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정치범수용소 실태라고 남한 건국대학교 법과대학 김영철 교수가 지적했습니다.

북한의 형사 소송법은 지난 1954년에 처음 제정이 되어 2004년까지 9번에 걸쳐 개정 되면서 그 모양새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정하는 기준에 거의 가깝게 개선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형사 소송법을 실제로 적용하는 데 한계를 두고 있다고 건국대학교 법대 김영철 교수는 말합니다.

김영철: 형사소송법은 체포나 고소할 때 신중하게 해라, 또 수사를 할 때 고문하지 말라는 등... 이런 것들이 형사 소송법에서 주로 정해집니다. 그런데 아직도 북한은 근원적으로 주체사상에 터 잡고 북한체제 보위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 법을 적용하는 데는 법치가 아닌 인치, 즉 김정일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법이 좌우될 위험요소가 여전히 형법에 남아있습니다.

그는 특히 인간의 존엄성이 인정되려면 법치주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고 그런 원칙들이 실제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김영철: 형사 소송법에서도 법률의 어떠어떠한 절차로 해야 된다면 그 절차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북한에서는 법률로는 정해 놓고 실질적으로 그와 많이 동떨어지게 운영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 등입니다.

김 교수는 북한 당국이 정치범수용소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지만 많은 정치범수용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증거가 계속 알려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정치범수용소를 군부대로 위장하면서 외부의 노출을 극히 꺼리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김영철: 북한주민들은 정치범수용소를 통제구역이라든가 특별 독재 대상구역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북한 정부는 몇몇 호 관리소 이렇게 부르고 문서로 할 때는 요덕 정치범수용소 같으면 조선인민경비대 2915호 부대, 이런 식으로 군 부대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체제 위협을 느낄 때마다 정치범수용소를 계속 늘려오면서 주민들의 내부 통제를 강화하다 보니 수용 인원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김영철: 초창기에는 한국의 면 단위에 해당하는 1개 정도만 있었다고 하는데 1973년 김정일 후계 구축을 위해 3대 혁명소조 활동이 시작되면서 수용소 수와 수용인원이 아주 급증하게 되었고 특히 1980년대 말에 동구라파가 붕괴되어 사회주의 체제 위기감을 느낀 북한에서 체제보위를 위해 수용소 숫자와 인원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수용소 인원을 약 20만여 명으로 추정합니다.

김 영철 교수는 수용소 규모는 보통 수용소 하나가 50-250 평방킬로미터의 넓은 땅으로 각 수용소당 적게는 500 명에서 많으면 5만 명까지 수용되어 있고, 말 한마디로도 사상범 으로 몰리고 있다고 전합니다.

김영철: 반혁명분자로 분류되거나 불건전한 사상을 가진 자, 또 적대분자 등으로 분류된 사람들인데 이것 자체가 개념이 애매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이 세상 힘들어서 못 살겠다‘고 말한 사람, 심지어는 상점에 물건 사러 갔다가 ‘치약하나 비누하나 없는데 이것이 무슨 상점이냐,’ 이렇게 말한 사람들도 정치범으로 몰려서 수용된 예도 있습니다.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는 사람들은 북한 법이고 뭐고 재판 절차도 없이 친척이나 이웃 들도 전혀 모르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영철: 각 지역의 보위부 지도원이 색출을 합니다. 보통 그 지역 주민들에게서 뽑아 내요. 재판도 받은 적이 없고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심사만으로 이 사람을 집어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 그리고 한번 정치 사상범으로 낙인찍히게 되면 재산도 다 빼앗기도, 또 야간에 그냥 전 가족을 함께 싹 불러다 아무도 모르게 그곳에다 집어넣는 겁니다. 친척도 후환이 두려워 이 사람들이 어디에 갔느냐고 묻지도 못하고 짐작만 한다는 것입니다.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면 이들은 공민증을 압수당하고 선거권을 박탈당하며 정상적인 배급 은 물론 의료혜택도 없이 외부 세계와 완전 차단된 생활을 해야 된다고 김 교수는 말합니다.

김영철: 감시당하고 도망하다 잡히면 총살당하고... 실질적으로 이것은 무기징역형이라고 볼 수 있어요. 수용소 안에서 아파도 치료도 안 되고, 결혼이나 출산도 금지되고, 친지들 면회나 서신연락도 금지되고, 외부와의 접촉도 차단되고... 대부분 종신수용자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정치범들이 지형을 파악하고 있다 한밤중에 도주할까봐 어느 정도 지리에 익숙할 것 같으면 그 사람들은 몇 년 지나면 다른 곳으로 이동을 시킵니다.

정치범수용소라고 하지만 국가에서 어떤 건물을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니라 넓은 들판에 수용자들이 자신들의 거처를 스스로 마련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영철: 독신자들은 주로 막사에서 집단생활을 하고, 또 가족이 한꺼번에 오는 경우는 벽돌, 판자, 거적 등을 이용해서 자체적으로 집을 지어서 거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는 집도 아주 형편없고, 먹는 것도 영양실조고, 또 노동도 강하니까 결국 질병으로 시달리다 대개 제명에 못 죽고 일찍 죽게 됩니다. 수용소에서 탈출하다 또는 보위부원에게 반항하거나 때리거나 하면 수용자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형을 시키죠.

김 교수는 북한 당국은 과거 김일성이 파벌을 조성하는 종파분자, 친일 지주 출신, 부르조아 출신으로 분류된 계급의 사람들은 그가 누구이든 간에 3대에 걸쳐 씨를 없애야 한다는 지시를 내려 이를 철저히 따르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아울러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별의 별 인권침해 실상이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해 드러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영철: 종파분자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임신이나 출산 자체가 중죄입니다 그러니까 북한 법, 형법에 실제는 없지만 김일성 교시에 어긋나 임산부와 어린 아기가 현장에서 죽임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보위부 기분에 따라 수시로 구타당하고 처형을 당했거나 작업 중 사망 하거나 병으로 죽는 수가 수용소 당 해마다 수 백 명으로 알려진 것이 수용소의 실정인데... 이야 말로 하나하나가 인권침해로 가득 찬 종합창고가 아닐 수 없죠.

따라서 북한 당국이 스스로 형사 소송법을 개정해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 하지만 정치범 수용소 실태와는 전혀 별개라고 강조했습니다.

김영철: 형법, 형사소송법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는데 그것을 적용한 것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보위부원이 어떻게 한다고 규정된 것도 아닌데 보위부원이 마음대로 수용자를 결정해서 예고도 없이 비밀리에 체포해 수용소에 집어넣고, 아무런 절차 없이 한 것이 엄청난 인권침해입니다.

워싱턴-이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