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현금이 가득 들어 있는 누런 월급봉투 보기 힘듭니다. 한 달 동안 땀 흘려 일하고 받아든 월급봉투 안에는 월급명세서 달랑 한 장이 들어있을 뿐입니다. 언젠가 부터 월급이 은행 통장으로 바로 입금되기 때문입니다.
tv광고: 은행에서도 쇼핑에서도 공부할 때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남 한 텔레비전 광고에서 늘씬한 몸매를 한 여성이 은행 앞에서 한쪽 다리를 머리위로 올리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유연함을 과시합니다. 월급이 일터에서 바로 자신의 은행으로 들어가게 하면 편리하다는 광고입니다. 월급으로 받은 돈을 가지고 은행을 가야하는 수고스러움은 덜어졌지만 인간의 온기는 사라진 느낌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김정숙: 봉투로 받았을 때는 굉장히 설레는 마음이 있었는데 통장에 들어오면 당연히 들어오는 거구나...
김서규: 천원짜리 지폐로 받으면 세는 재미가 있었지 그런데 그런게 없어요. 처음에는 통장에 얼마 들어왔나 했는데 무감각하게 지나가버리죠.
소 고기가 비쌌던 시절에도 어머니는 이날만큼은 커다란 냄비 가득 쇠고기 국을 끓이셨습니다. 아버지가 한 달 동안 고생해서 받아온 월급봉투를 어머니는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고 아이들은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행복하기만 했던 날이 월급날입니다.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월급날 노정진 주부는 이런 아버지의 월급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노 정진: 빈손으로 들어오시지 않으시고 그 때 귀한 바나나라든지 우리가 소풍 갈때나 먹는 미제 초콜렛 그런 것을 손에 들고 들어오셔서 다른 때와 다르게 목소리도 좋으시고 명랑하게 잘 있었냐 하고 들어오시면 그런 날이 월급날인가 하고 옷도 받아드리고 애교도 떨고 신발도 가지런히 놓고 아침엔 구두도 빤짝빤짝 닫아 드리고 그런 기억이 나네요.
월 급날은 또 아이들에게는 학교 앞 짜장면 집에서 포식을 하고 아버지께 용돈을 넉넉하게 받을 수 있는 날이기도 하지만 직장인들에게는 밀린 외상값을 갚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정년퇴직을 한 박승후씨는 월급날하면 아직도 떠오르는 기억이 생생합니다.
박 승후: 돈을 나중에 갚는 것으로 점심도 먹고 차도 한잔씩 다방에서 차도 한반씩 먹고 하니까 그런 돈들을 월급날이면 받으러도 오고 서무과에서 그 돈을 제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면 월급봉투가 얇아지지 돈을 제하니까 어떤 때는 서글플 정도로 얇아져 그러면 가다가 대포 한잔을 먹고 가는 경우도 있어 그러면 더 얇아지겠지 그런데 그 돈을 가지고 한 달을 꾸려 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아내고 어머니였다고도 볼 수 있지 ...
남한 가수 최희준씨는 한때 월급봉투라는 제목으로 회사원의 얇아지는 월급봉투에 대한 허탈함을 노래해 남한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최희준씨의 월급봉투 한소절 들어보실까요
(노래) 가불하는 재미로 출근 하다가 월급날은 남몰래 쓸쓸해진다 이것저것 제하면 남는 건 남는 건 빈 봉투 한숨으로 봉투속을 채워나 볼까 외상 술 마시면서 큰소리 치고 월급날은 나혼자 가슴을 친다...
남한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은 남한사람들처럼 월급날에 대한 기다림과 설레임을 북한에서는 느낄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북한에서 받았던 월급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쥐꼬리만한 소액의 월급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철도 부속품 수리공장에 근무했던 탈북자 박무관씨는 회사에 출근했던 것은 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중국으로 달아나지나 않았는지 혹 굶어죽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회사를 나가야 했습니다.
박 무관: 출근하면 출근부에 도장 찍으면 이 사람이 오늘 하루도 이 고장에 붙어 있구나 살아있구나... 출근했다가는 점심에는 뭘 먹어야 하나 저녁에는 또 뭘 먹어야 하나 오직 먹을 걱정 풀죽이라도 먹어야 하는데 풀은 어디가 뜯어야 하나 오직 그런 걱정으로 사는 거죠. 월급은 나와봐야 68원 가지고 쌀 1kg도 못사는데요.
맛있다고 소문난 평양 옥류관 냉면을 사먹을 수도 없고 가족이 배불리 먹을 식량을 살수도 없는 월급날 북한에서 월급날은 기억하고 싶지 않는 날인지도 모릅니다. 탈북자 이순경씨입니다.
이 순경: 로임 타는 날은 아무의미도 없고 배급 타는 날은 강냉이를 60퍼센트 주면 강냉이 가루 10퍼센트, 국수 10퍼센트 또 수수 같은 것 10퍼센트 또 쌀을 10퍼센트 주거든요. 그러면 배급 타는 날은 누구나 가정이 그날을 기다려요 왜 낼은 어떻게 됐든 간에 배급 타는 날은 먹자해서 쌀을 섞어서 먹지 여기는 로임날이 아니라도 맨날 명절 우리 자식들에게 말합니다. 여긴 맨날 고기 먹고, 떡 먹고, 과일 같은 것은 싫어서 안먹고 정말 좋은 세상...
북한에서는 나라에 돈이 없어 사람들에게 로임을 주지 못하고 설령 로임을 받는다고 해도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식, 의, 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액수는 아니라고 탈북자들은 말합니다.
남한도 실제로 물가가 예전보다 많이 올라서 월급만 모아서는 집 한 채 장만하기도 힘들다고들 말합니다. 서울에 집값은 몇 억에 이르고, 아파트 가격도 미국 돈으로 10만 달러가 넘는 집이 부지기수입니다.
하 지만 서울 수도권만 그렇지 아직 지방으로 내려가면 그래도 알뜰살뜰 저축을 하면 먹고 사는 문제는 월급으로도 견딜만 합니다. 남한의 주부가 남편의 월급날 가계부를 정리하면서 아이들 헤어진 신발도 바꿔주고, 다 떨어진 화장품도 새로 구입을 하고 한 달 반찬꺼리도 미리 생각하면서 보냈다면 북한에서는 일한 대가를 받아서 미래를 설계하는 소박한 꿈조차 사치로만 들립니다. 남한주부 김은희씨와 탈북자 이명옥씨의 얘기를 차례로 들어봅니다.
김정숙: 한 달 계획을 세워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가계부를 계속 쓰면서 월급 탔다고 들뜬 마음에 막 쓰는 것이 아니라 공과금이 일단 나가고 아파트에 살았으니까 관리비가 많이 차지했죠...
이 명옥: 월급이라는 것이 쌀 한키로 사먹으면 됩니다. 그저 우리 아이 아버지가 월급타는 것이 군복무를 37년 했어요. 북한에서는 공로자입니다. 그럼 북한에서는 최고 대우인데 1,200원 타요. 그런데 쌀 한키로 사먹기 힘들어요. 그 돈 가지고 음식해 먹을 수나 있어요. 어림도 없죠. 타나 마나지만 그래도 타면 우리 아바이는 그 돈 가지고 술이나 한잔 먹자 하면 그것이 다예요.
남한에서 조선소 용접공으로 일하는 박무관씨는 북한에서는 의미가 없던 월급날이 이제는 어떤 것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박무관: 월급은 통장으로 들어가는데 통장은 또 집사람이 관리하니까 월급을 받았다는 기분보다도 내가 일함으로서 우리 가족이 안정되게 살 수 있구나 하는 만족감에 사는 겁니다.
남북한 사람들이 월급날을 기억하는 것은 다르지만 모두가 행복해야하는 날임은 틀림없습니다.
남한 가수 김장훈이 부르는 “사노라며” 들으면서 물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