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문화기행] 막걸리-북에선 70년대에 사라져

영국에 위스키가 있고 프랑스에 포도주가 있다면 한국에는 막걸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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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는 서양의 고급스러운 술과는 달리 배고픈 서민들이 부담 없이 마셨던 술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의 음료라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아버지는 유난히 서민의 음료인 막걸리를 좋아하셨고 동네 친구들이 볼까 부끄러워 술심부름을 요리 조리 피하지만 언제나 철철 넘치는 막걸리가 가득한 노오란 주전자를 들고 있었던 것은 집안에서 제일 막내인 내차지였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예부터 즐기던 민속주 막걸리 남북의 문화기행 오늘은 컬컬하고 시원한 막걸리를 찾아갑니다.

진행에 이진서 기잡니다.

막걸리는 농사짓는 것이 거의 유일하다시피 하던 가난했던 시절에 주로 농촌 사람들이 즐겨 마셔서 농주라고도 불립니다. 하지만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70년대 막걸리는 남한에서 도시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으며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합니다.

음악: 막걸리 한사발 굵은 사발로 한사발 우리들의 인생사도 한사발 막걸리 한사발 지난 세월이 한사발….

80년대 초반까지 어딜 가나 막걸리는 꼭 있어야 하는 음식으로 오죽하면 잘 알지 못하는 손님이 찾아와도 내놓던 것이 막걸리 한 사발에 짠지 한 종지였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인심도 후해 사람 사는 냄새가 막걸리 향만큼이나 짠했습니다.

이때는 일부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더 빨리 숙성시켜 내다 팔기 위해 밤에 불을 밝히는데 사용하는 카바이드를 넣어 막걸리를 만들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카바이드 막걸리를 먹고 나면 다음날 얼마나 머리가 아팠던지 고생하는 사람도 부지기 수였습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들어 농업이 기계화되면서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 모내기나 김매기를 할 필요도 없게 됐고 농촌에서 새참과 함께 마시던 막걸리도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도시에서도 알콜이 6도짜리인 막걸리보다는 도수가 4배 정도 강한 독한 소주를 찾기 시작하면서 막걸리 양조장에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남한 경기도에서 5대째 막걸리를 만들고 있는 배다리 양조장 박상빈 사장은 막걸리가 돈이 되던 시절은 옛말이 됐다고 말합니다.

박상빈: 저희는 한정 판매를 하기 때문에 하루에 200말 한자로 보면 250상자 정도 매일 생산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나갔을 때는 하루 천상자 까지 나갔어요. 한 900말에서 950말 되는 분량이죠…

남한에서 초가집을 걷어내고 흙탕물이 튀던 길을 아스팔트로 바꾸면서 농촌의 모습을 변화 시킨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연히 맛본 막걸리에 반해 14년동안, 1979년 불의의 사고로 숨을 거두기까지 배다리 양조장에서 만든 막걸리를 마셨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고양탁주라는 상표가 붙은 이 배다리 양조장 막걸리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99년소떼를 몰고 북한을 갔던 현대건설 고 정주영회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마셨던 막걸리를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해서 고양 탁주는 통일 막걸리가 돼서 몇 차례에 걸쳐 북으로 배달되기까지 합니다.

박상빈: 정주영 회장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 약속을 김대중 대통령이 대신 약속을 지켰고 그 후에 김정일 위원장이 박정희 대통령이 먹던 막걸리 시음을 하고 나서 따로 현대 아산에서 소떼 말고 중장비라든가 협력 때문에 서너번 갔는데 그때 저희가 비공식으로 3번 더 갔어요. 그러니까 총 4번이 간 거죠.

음악: 막걸리 막걸리 막걸리 한사발에 취한듯 깨인듯 둥실하네….

유난히 막걸리를 즐겨 마셨던 남한의 박정희 전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는 혁명 권력자였지만 모내기철이면 밀짚모자를 쓰고 농촌으로 가서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는 농부들과 함께 모내기를 하면서 서민들의 술인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막걸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음식이었고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는 음료였습니다.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일성 수령도 생전에 인민들에게 서민과 같이 호흡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기를 낮추는 음식으로 막걸리를 마셨다고 탈북자 이순경씨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농촌에 현지 지도를 수령이 나간단 말입니다. 노인들이 대접을 하면 받아 마시고 그런 것이 있어요. 김일성은 그랬어요.

하지만 남한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막걸리는 70년대 이후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렸다며 이제 젊은 사람들은 막걸리를 알지 못할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탈북자 1:북한에 막걸리 없어요. 술은 만드는데 막걸리하는 것은 없어요. 어떤 것이 막걸리인줄은 아는데 …

탈북자 2 :북한에는 쌀 사정이 안 좋으니까 쌀 막걸리보다 옥수수 그런 막걸리가 많고 일반 식당에서 쌀 씻은 물 받아서 막걸리 하는데도 있고 그래요.

탈북자 3 :그럼 술을 만들면 막걸리는 값이 없지 근데 술은 뽑으면 10배 이상 돈을 뺄 수 있지 그러니 누구든 없는 알곡으로 만드는데 누가 막걸리로 탕진을 하겠어요.

남한은 80년대 이후 경제가 일어서며 배고픔을 상징하던 보릿고개를 끊고 식량자급자족에 성공하지만 북한은 오히려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순한 곡주는 없어지고 독한 소주가 주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탈북자 이순경씨는 북한에서는 개인집에서 민주를 만들어도 장마당에 나가 돈을 받고 팔기 보다는 곡식과 바꿔 먹는 식이라면서 옛날 보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졌다고 탈북자 이순경씨는 말합니다.

이순경: …어쩔 수 없어요. 친구끼리도 내가 강냉이밥 안먹어 쌀밥만 먹어 하면 와서 보면 빨래도 빨아줘 석탄도 드려줘 나무도 패줘 그리고 강냉이 주거든 내가 머슴을 쓴다 안쓴다 그런게 아니고 사회 흐름이 그렇단 말입니다.

50대 중년 이후의 남한 사람들에게 아직도 막걸린 배고픈 시절에 먹었던 음식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주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의 한식당 일을 마치고 식당을 찾은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막걸리에 대한 추억을 물어봤습니다.

미국시민 : 막걸리 하면 뭐 생각 나냐면 춥고 배고픈 시절에 없었으니까 소주 먹으면 오징어 막걸리에는 깍두기 그렇게 생활했다고 여러 가지로 비싼 시절이었으니까 … 막걸리에는 깍두기

음악: 군대 잘 다녀와 잊지 마 우리가 함께 했던 막걸리와 순대…..

남한 경기도는 서서히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민속주 막걸리를 되살리자며 해마다 막걸리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작은 모임을 조직하고 새로운 막걸리를 개발해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막걸리를 지켜려는 사람들 때문인지 요즘 남한에서는 다시 막걸리가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습니다. 시민1: 도심 생활을 하다보면 소주, 맥주, 위스키 보다는 가끔은 막걸리 집에서 친구들과 선배들과 먹다보면 마음도 포근하고 시골에 온 듯한 느낌도 나고 술도 역시 시골스럽다 보니까 부담 없이 가는 것 같습니다. 시민 2: 글쎄요 대학 다닐 때 마시던 추억 같은 것 그런 것을 떠올리면서 비 오는 날 마시는 것이 막걸리 아닌가요. 네 비 오면 다 그거 마시러가죠. 맥주와 위스키 그리고 일본의 사케까지 남한에서는 범람하다시피 많은 이들이 마시지만 막걸리는 이런 여러 종류 각양각색의 술을 포용할 수 있는 우리의 멋이요 버릴 수 없는 우리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한이 요즘처럼 차갑게 갈라져 있을 때면 막걸리 한사발이 더 생각납니다. 남북문화 기행 이 시간에는 한국 전통술 막걸리입니다. 진행에 이진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