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한 언론은 지난 75년 동해상에서 조업 중 납북됐던 천왕호 선언 최욱일(67세)씨가 북한을 탈출해 31년 만에 남한에 살고 있던 부인을 만난 기막힌 사연을 전했습니다.

남북한은 1945년 분단과 1950년 전쟁으로 인해서 수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1953년 휴전 이후에도 납북과 탈북 등으로 가족이 서로 만날 수 없는 상황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반세기가 넘게 서로 생사확인 조차 하지 못하고 미국에서 애타게 북에 살고 있는 형님과 누님을 찾고 있는 올해 51살의 조익환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조익환씨는 1955년생으로 부모님이 이남으로 피난을 간 다음 남한 경기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형님과 누님을 한 번도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부모님이 늘 말씀하시던 두 분의 기억은 또렷했습니다.
조익환: 제가 찾고자 하는 사람은 형님 조진환 1945년 1월10생입니다. 어머님이 피난을 오실 때 형님의 나이가 8세였다고 합니다. 황해도 연백군 호남면 읍항리 개현동이란 곳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형님이 그 당시 호남 초등학교 1학년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 찾는 사람은 누님으로 조봉자입니다. 1947년 11월19일생입니다. 당시 어려서 학교는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이는 6세였고요.
조익환씨의 형제는 총 8명입니다. 조익환씨의 부모님은 1.4후퇴 때 이남으로 피난을 갔고 남한에서 익환씨와 밑에 여동생이 태어났으며 나머지 6명은 이북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조진환씨와 조봉자씨가 북에서 함께 나오질 못했던 겁니다.
조익환: 어머님이 갓 난 아이였던 저 위의 바로 위 누님이 계시는데 그 누님을 업고 또 큰누님하고 진환이 형님, 봉자 누님과 같이 배를 타고 이남으로 오는 그 배를 타러 오는 도중에 인민군의 습격을 당해서 당시 뿔뿔이 흩어진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업고 있었던 저 위의 누님과 큰 누님만 배를 타고 어린 형님과 봉자 누님은 총소리가 나고 하는 와중에 길을 잃었다고 합니다.
조익환씨는 피난 당시 부모님의 친척들은 북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진환씨와 조봉자씨를 데려오지 못하고 이남으로 피난을 했던 가족들은 지금은 모두 미국으로 건너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조익환: 이북에는 저의 아버님이신 조범순, 아버님의 가족인 고모님들이 살아계시고, 어머님의 친정도 있는데 어머님의 성함은 김금섬이십니다. 부모님의 고향은 황해도 연백군 호남면 흡항리 개재라는 동네라고 합니다. 시골이었고 농사를 지었다고 제가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의 형제 6명이 1960년대와 70년대를 통해서 전부 미국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조익환씨의 부모님은 난리통에 북에서 데려오지 못한 아들, 딸을 생각하면서 이산의 한을 품은 채 이미 생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형님과 누님들조차 더 이상 만남을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는 없는 나이가 됐습니다.
조익환: 저희 아버님은 1973년 한국 서울에서 돌아 가셨고 어머님은 1979년 미국 시카고에서 돌아 가셨습니다. 부모님께서 늘 형님과 누님을 이북에 두고 오셨다는 안타까움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 하셨습니다. 저의 큰 형님의 성함은 조장환 입니다. 1934년생이고 형님께서는 이북의 형님이나 누님을 보시면 알아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둘째 형님은 조영환입니다. 1938년생이고 당시 엄마를 따라서 10살 정도 됐을 때 넘어온 누님은 조미자입니다. 1943년생입니다. 이 세분은 이북에 있는 형님이나 누님을 만나면 기억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조익환씨는 이산가족의 문제는 인륜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념과 정치, 그 어떤 것도 가족을 갈라놓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익환: 부모님이 살아 계셨을 때 늘 형님과 누님의 생일날, 추석이나 새해가 됐을 때 부모님이 자녀들을 모아놓고 하신 말씀이 늘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제가 그 당시에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기만 했지, 가슴으로 느끼지는 못했었거든요. 이제 제가 부모가 되고 자녀가 있다 보니까 어머니 아버님의 마음을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한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도 기대를 해봤고, 개인적으로 중국에 가서 조선족 등을 만나 수소문도 해봤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만을 확인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꼭 북에서 살아 있다고 믿고 있는 형님 조진환씨 그리고 누님 조봉자씨를 만나 부모님의 유언을 전해주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조익환: 형님, 누님. 저는 두 분을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부모님이 살아 계셨을 때 두 분을 정말 많이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이 방송이 꼭 두 분께 전달이 돼서 그동안 서로 연락을 하지 못하고 지냈던 세월을 소식을 전하면서 앞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요. 부모님이 살아 계셨을 때 형님하고 누님한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계셨습니다.
어머님 하고 아버님이 누님과 형님을 많이 사랑한다, 부모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어지게 된 상황을 얘기를 해주셨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라도 건강하시고, 언젠가는 남북통일이 돼서 만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을 하면서, 희망을 가지시고 어려우실 때 마음속으로 기댈 수 있는 마음도 가져 보시고, 꼭 다시 한 번 어머님 아버님이 형님과 누님에게 너무 죄송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는 것을 얼굴도 못 본 동생이 전해드립니다.
한편 남한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들 중 70세 이상 고령자가 68퍼센트로 이들의 사망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남한의 전문가들은 남한의 이산가족 1세대들이 연간 3000-4000명 선, 하루 10여 명 꼴로 북쪽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채 이산의 한을 품고 숨지고 있다며 그 심각성에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이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