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언제나 설레는 방송출연
2024.11.11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이시영입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추워 양털 니트에 롱코트를 입고 출근 했습니다. 장갑을 주머니에 넣기는 했는데 주차장에 세워진 차에 시동을 켜고 버튼 하나를 누르니 핸들이 뜨거워져 장갑을 낄틈이 없습니다. 이런 소소한 일상도 북한이 고향인 시영이에게는 대한민국의 풍요로움과 섬세함 그리고 발전하는 시대에 사는 감사함이 되지만 마음 한편엔 선택할 수 없는 국적이 굳이 한반도 이북지역인 그들이 생각이 납니다.
이 추운 날씨에 고향에서 고생하는 친구 얼굴은 물론 집떠나 군복무하는 배고픈 군인들, 외화를 조금 벌어본다고 해외에서 고생하는 노동자들 그럼에도 오늘 시영이는 대한민국의 방송 중 대표방송인 KBS에 출연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출근길이 분주하답니다.
하나밖에 없는 조선중앙방송에 습관이 되어있던 시영이는요. 이곳에서 수없이 많은 방송국과 날마다 우후죽순 늘어나는 개인 유튜버 방송까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을 만큼 언론의 자유를 온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북한에서 시대에 발맞추어, 당의 목소리에 보폭을 맞추고, 한목소리로 일심단결을 다져가자는 말을 많이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즐기기 위해 배우고 느끼고 정보를 공유하고 새것을 받아들이면서 본인의 삶을 온전히 살아갑니다.
지금도 북한의 추억이 더 많은 시영이가 오늘 KBS에 가는 이유는 북한의 현실과 생활을 남한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랍니다. 요즘 북한에서 러시아 전쟁에 군인을 파견했다는 보도가 나와 남한에서는 북한 정세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것이 배경이기도 합니다.
북한에서 31년을 살면서 시영이도 초보적인 인간의 권리인 이동의 자유,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정치참여의 자유가 무엇인지 또 알아서도 안되는 순종하는 삶을 살았으니까요. 제가 북한에서 조선중앙방송국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해보았을까요? 실제로 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북한의 기자, 작가 아나운서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당이 요구하는 지시만을 전달하는데 이곳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재벌도 일반인도 기자들을 조금 두려워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기자의 의무는 사실과 진실을 알리는 시대의 목소리 역할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 기자나 아나운서는 정말 공부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고 정의감도 강한 엘리트랍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하면 아나운서를 떠올리는 경우도 많은데요. 똑똑한 사람들만 모아놓은 방송국에 처음 갔을 때는 정말 황홀경이었답니다. 으리으리한 장비와 녹음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원고를 들고 다니는 관계자들, 뉴스 준비를 한다고 이어폰을 끼고 녹음실에서 살짝 긴장한 모습으로 서있는 아나운서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엄청 난 카메라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위치를 파악하시는 카메라 감독님들.
정확하고 신속하게 사실을 알리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더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온종일 열정을 바치고 그에 걸맞은 수입과 복지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멋진 삶을,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가는 기자, 아나운서, 감독, 등 엘리트들이 모여있는 방송국 건물에서 저는 북한의 방송국을 또 북한에서 선전·선동의 1선에 선 혁명가들이라는 말도 안되는 호칭하나에 일생을 무보수로 바치고 있는 그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답니다.
북한에서 모르고 살던 언론의 자유를 이곳 대한민국에서 누리며 북한에서 한번도 부러워 본 적 없던 기자나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이곳에서 태어났으면 시영이도 한번 꿈꿔볼 정의로운 일이라는 그래서 한 번쯤은 도전해보지 않았겠냐는 생각도 한답니다.
고향에 있을 때 중앙방송위원회에서 일하시던 삼촌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뉴스를 진행하는 방송실 출입문 안쪽과 바깥쪽에 기관총을 들고 있는 군인들이 있단다. 잘못 말하는 순간 총알이 날아가지’
그곳에서 들을 때는 혹시 모르는 일이니 당연한 거 아닌가는 생각도 해본적 있다고 하지만 언론의 자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된 현재는 너무도 억울한 삶을 살았던 제가 또 현재 그곳에서 모르고 사는 친구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던 중학교 친구 순희는 오늘도 글쓰기를 좋아하겠지만 늘 마지막엔 원수님이 등장하겠죠? 그녀도 이곳에서 태어났으면 청바지에 간단한 니트에 재킷을 걸치고 손에는 원고를 쥐고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바쁘지 않았을까요?
청년집회에서 목소리가 좋아 맨 앞장에서 구호를 외치던 철수는 이곳에서 태어났으면 명석한 두뇌로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했을 테고 잘생긴 얼굴을 텔레비전을 통해 맨날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가을의 낙엽이 더 쓸쓸하게 저를 위로하는 것 같습니다.
늘 긴장 속에 원고를 읽어가는 북한의 아나운서들, 현실과 전혀 맞지 않은 선전·선동의 붓으로 활동하고 있는 북한의 기자들, 그들의 급여는 한 달에 쌀 2㎏을 벗어나지 못하겠지요? 이곳 대한민국에 정착하는 시영이는 대한민국 서울에 있는 KBS 한국방송에서 한시간 출연하고 북한으로 표현하면 쌀 250킬로그램을 받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아나운서, 작가, 기자님들에게 비교하면 다소 저렴한 출연료라고 하지만 무보수로 거짓충성을 부르짖던 북한에서의 시영이에게 언론의 자유를 한껏 누리며 노력한 것만큼 당당한 보수를 받는 오늘도 웃으면서 출근할 수 있는 힘을 준답니다.
올해는 여름도 굉장히 더웠는데 겨울엔 또 엄청 추워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북한에 계신 청취자님들이 희망을 잃지 마시고 잘견디어 내시기를 특별히 추운 올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따뜻한 메시지가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시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