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

김태희-탈북자 xallsl@rfa.org
2021.09.21
추석명절 추석인 21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에서 실향민 가족이 묵념하고 있다.
연합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매년 가을이면 찾아오는 먹을 것 풍성한 추석명절입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가족들조차 많이 모이는 것을 자제하라고 방송에서는 말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우리들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것이 그리 즐겁지는 않답니다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과 고향에서의 추석과 한국의 추석명절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추석을 민족고유의 명절이라고 부른답니다. 북한에서도 이맘때쯤이면 떡 방앗간에서 떡가루를 빻고 두부를 만들고 추석에 무엇을 해서 산소 음식으로 올릴까 생각을 하겠죠이때쯤은 콩도 모두 파란 청()대 만이어서 탈북 하기 전해에 엄마산소에 올릴 두부를 구워서 올리고 싶은데 가난한 살림이라 콩도 없고돈도 없어 뒷산에 있는 농장 콩밭에서 온 밤을 푸른 콩을 까서 집에 와서 맷돌에 돌려서 두부 한 모를 겨우 만들었는데 연녹색을 띤 두부가 나왔죠.

두부를 만들면서 얼마나 서럽던지, 우리가 북한의 국어시간에 배웠던 탈출기 생각이 났답니다그 탈출기에서는 북간도로 희망을 안고 갔다가 먹을 것이 없어서 두부 장사를 하는데 두부를 가는 도중에 다 쉬어빠져서 고생하던 이야기였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생활과 비교되면서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미공급이 진행되기 전에는 해마다 추석이면 송편이며 지짐을 구워서 접시에 구색 맞추어 소랭이에 이고 산소에 가면 이 집 저 집에서도 산을 찾아오고 없이 사는 살림들이었지만 주변에 묘소가 함께 있는 집들과 어울려 음식도 나눠먹고 내려오곤 했답니다.

한국은 추석이면 북한처럼 당일에 벌초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한 두 주전에 찾아서 산소를 정리하고 벌초를 한답니다. 벌초를 기회 삼아 자식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려는 우리 조상의 마음이 깃들지 않았나 싶습니다북한에서는 조상 덕에 이 밥 한술이라도 먹어볼 수 있다고도 이야기 했지요.

한국에서의 올해 추석은 토요일하고 일요일이 정기휴무라 주말과 추석이 합쳐서 닷새가 연휴가 됩니다. 명절이 주말이라고 부르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걸리면 대체연휴라고 그에 맞게 해당되는 날짜만큼 더 휴무를 주는 방법으로 연휴 날짜를 계산하기도 한답니다그래서 전 국민이 고향으로 귀향하기도 하고 부모님을 찾기도 하고 형제들끼리 만나기도 하는데 이때에는 전국 고속도로가 차로 꽉 막혀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5시간이면 가던 길도 10시간 이상 걸리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이제는 코로나로 인하여 한국의 시골들에서조차 자식들을 오지 말라고들 한답니다. 몇 년 전까지만도 시골입구에 “귀향 길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아들아딸아힘들게 오느라 애쓰지 말고 용돈이나 넉넉하게 보내주면 좋겠다. 라는 문구의 현수막으로 바뀌기도 했답니다.

그러면 고향을 북에 둔 우리 탈북민들은 찾아갈 곳도 없어서 어떻게 지낼까 많이들 궁금하시죠? 탈북민들은 보통 고향을 바라볼 수 있는 통일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많이 간답니다. 파주강원도 등에서 고향 땅을 바라보며 부모님께 큰 절을 올리는 분들도 있는가 하면 밥 한 숟가락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가셨을 부모님께 흰 밥을 올리는 탈북민도 있지요.

그리고 제가 이끄는 탈북민연대에서도 탈북민들과 함께 추석명절을 보내기 위해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는데 그 과정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답니다. 같은 탈북민인 사무국장은 일하면서 아이도 키우느라 바쁜 중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늘 함께 하는데요목소리 한 번 들어볼게요.

녹취애 데리고 와서 힘들긴 힘들어요사무실 나가서 명단 만들어 놔야 하는데… 몸살 약도 챙겨 드시고요. 

고등학생인 아들이 두통으로 입원해서 퇴원 시켜야 하는 중에도 단체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탈북민들을 위해 봉사를 하면서도 그 중에서도 또 대표인 저를 걱정해 주네요.

이렇게 일일이 탈북민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또 더 많은 탈북민에게 선물이 돌아가도록 물품을 알차게 준비해야 돼서 과일을 직접 구매해서 과일청도 만들고 또 탈북민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만든 건강식품인 양배추 환을 대량 구매도 하고요. 이런 물품들은 교회들에서 고향으로 갈 수 없어 마음이 외로운 탈북민들을 위로해주라고 보내주시는 후원금들로 마련이 된답니다.

그리고 경찰서들에서도 추석위로 선물을 탈북민들에게 나눠주는데 보통 경찰서는 죄를 짓고 가는 곳으로 생각을 할 것이지만 우리 탈북민들에게 경찰서는 죄가 아닌 친근하고 우리의 신변을 지켜주는 정이 많은 곳이기도 하답니다.

올해는 경찰서에서 커다란 상자에 기름도 있고 햄도 들어가 있고 또 참치 통조림도 있는 커다란 선물상자를 안겨주는데 가격보다 가치가 더 소중한 선물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저는 한 번씩 그런 선물을 받을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는데요.

1978 4 15김일성이 자기의 생일을 맞이하여 전국의 학생들에게 옷과 신발 그리고 당과류를 선물로 주었죠그것을 시작으로 매년 김일성의 생일인 4.15일이나 김정일의 생일인 2 16일에 선물을 주고 2년에 한번씩 옷을 주기도 했죠첫 선물을 줄 때 처음으로 보는 고급 과자며 사탕에 현혹되어서 옷장에 숨겨둔 과자박스에서 가만히 꺼내먹고는 욕을 먹고 정작 4 15일 기념사진 찍을 때에는 빈 박스를 다시 포장해서 들고 나갔던 추억도 떠오릅니다.

그때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던 온 가족이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한국에 온 딸은 부모님 묘소에 그리도 원하시던 흰밥 한 그릇 올려보지 못하였군요. 언제면 부모형제의 묘소에 가서 무성하게 자랐을 풀을 정리해볼까그것은 저 하나만이 아닌 탈북민 모두의 마음입니다.

그러기에 탈북민 우리는 하루빨리 통일되어서 고향으로 갈 수 있는 그날이 앞당겨지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날이 속히 다가오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였습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웹팀 최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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