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탈북민 2024년 송년의 밤
2024.12.09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이시영입니다. 올해도 저물어 갑니다. 행복한 일상이 가득한 2024년도 저에게는 참 감사한 한해인 듯합니다. 먹을 것도 풍요롭고, 서로의 정도 풍요로운 이곳에서 남은 주말마다 행사가 예약되어있습니다.
지난주에도 탈북 여성들이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단체의 송년의 밤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에 정착하는 탈북민의 70퍼센트는 여성입니다. 탈북민의 사회정착도 중요하지만 정착에 성공한 탈북 여성들은 이곳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의 의무도 성실히 챙기고 있답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이나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친구들 필리핀 베트남 등에서 이민와 사는 다문화 주민들에게 사랑의 도시락과 김치를 나누어 주는 행사를 자주 하시는 탈북 여성들의 모임이라 꽤 의미가 있습니다.
행사에 도착하니 단체 성원들은 물론 송년의 밤을 즐기려고 오신 북한이 고향인 여성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1년 동안 진행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돌고 봉사에서 앞장선 회원들에게 상도 나누어 주고요.
이곳에선 북한과 달리 표창장 한장 덜렁 주는 게 아니라 상품은 물론 상장에 상금도 따라 나옵니다. 오늘 상을 받으신 어르신은 고향이 함경북도 무산이라고 합니다. 탈북하신 지 20년도 넘으셨지만 지금도 무산 사투리를 빵빵 쓰십니다.
사투리에 행사에 모인 사람들이 고향의 정감을 느낍니다. 송년의 밤 행사에는 1인 5만 원이 지나는 뷔페 음식이 준비돼있습니다. 북한 청취자님들이 이해가기 쉽게 설명해 드리자면 1인 50달러가 넘는 식사이며 최소한 20가지 이상의 먹거리가 있고 마음대로 가지고 테이블에 앉아 1시간 동안 먹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는다는 것은 그다지 기쁜 일은 아닙니다. 늘 다이어트로 날씬한 허리선을 유지하는 우리로선 풍요로운 먹거리가 많은 오늘 저녁이 조금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괜히 많이 먹으면 오늘 저녁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동네 놀이터에서 혹은 아파트 주변을 한시간 정도는 걷고 들어가야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먹을 것이 부족한 고향에 사는 친구들에게 또 청취자님들에게는 한없이 미안한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곳에서 행복하게 100세까지 살려면 건강을 챙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풍요로운 이곳에서 마음 놓고 허리띠 풀고 먹다 보면 금방 살이 찌고 배가 둥둥 나온답니다.
즐거운 먹거리와 축하 모임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노래와 춤이지요. 탈북민 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기타 연주자가 오늘 공연을 하러 오셨습니다. 정착초기에 행사장에서 만났던 기억이 있고 그날 행사에서 봤는데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실력이 느셨지만 알아보지 못할 만큼 살이 찌셔서 날씬한 아가씨에서 복이 넘쳐나는 아줌마가 되어있었습니다. 물론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변할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하지만 날씬하던 옛날 모습이 눈에 얼른거렸습니다.
기타 연주자 언니는 함경북도 무산광산에서 광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광산에서 아침마다 듣던 기동선전대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예술인의 꿈을 꾸었지만, 신분이 낮은 탓에 예술학교는 고사하고 학교 예술 소조에도 탈락이 되었다고 합니다.
동네에서 오빠들과 예술을 하는 언니들의 어깨너머로 기타를 배웠고 그렇게 탈북을 하고 중국에서 기타를 처음 접했고 손톱이 빠져라 기타를 독학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서야 기타 연주자의 꿈에 도전하게 되었고 하나원에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여 학원도 다니고 공부도 하고 배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기타를 타기 위해 탈북한 것 같다는 기타 연주자 언니의 말에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연주를 하기 전에 언니는 마이크를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 광산마을 광부의 딸이 오늘같이 이러한 무대에 번쩍거리는 무대복을 입고 기타연주를 할줄을 누가 알았겠나요? 저의 부모님이 이런 무대를 보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오늘도 고향에서 고생할 마을 주민들을 생각하면서 이 무대를 즐겨보겠습니다.” 정말 마음이 먹먹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노력하여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일고 있는 이러한 현상을 북한이 고향인 청취자님들은 모르시겠죠?
기타 연주자 언니의 독주가 끝나고 다음 무대는 부채춤을 추는 탈북 여성들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20대 여성은 하나도 없고 평균 40대 이상인 북한이 고향인 여성들은 북한 텔레비젼서 본듯한 부채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전문 무용가처럼 날렵한 돌기와 잦은 발걸음은 서툴더라도 인간의 평등함과 노력하며 즐기는 일상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얼굴에는 진실한 웃음꽃이 활짝 피웠습니다.
그들은 북한에서 늘 배우고 싶었던 무용을 또 북한에서 오르고 싶었던 무대를 이곳에서 40이 지난 나이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취미생활로 모여 무용도 배우고 노래도 배우고 서로 재간을 공유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은 오늘도 탈북하기 잘했다는 이야기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무용이 끝나고 북한에서 성악을 전공하신 고향 언니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홀로 아리랑’을 불렀는데 행사장에 모인 북한이 고향인 여성들 남한에서 태어난 여성들 모두 따라 불렀고 오늘도 고향에 계실 청취자님들의 얼굴을 하나씩 그려보았습니다.
아리랑 노래를 마치고 가수 언니는 가라앉은 행사장의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태진아 가수님의 ‘동반자’를 신나게 불렀습니다. 북한에서 너무나 많이 불렀던 노래였고 우리 모두 인생을 살아가는 동반자라는 의미에서 분위기는 즐겁게 변했습니다.
여성들이 어울려 무대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함께 부르며 봉사단체의 빛나는 2025년을 약속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고 속이고, 타인의 슬픔도 온전히 위쪽으로 할 줄 몰랐던 북한이 고향인 여성들은 이곳 대한민국의 자유 속에서 이제는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줄 아는 서로의 양보와 배려를 키워가는 문화시민이 되었답니다.
언젠가 우리 고향에서 사는 또 자라나는 북한의 어린 친구들도 양보가 무엇인지, 배려와 나눔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 알면서 행복하고 풍요로운 송년의 밤을 보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시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