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군절 행사 보며 탈북 과정이 떠올라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8-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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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8일 오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한 '건군절' 기념 열병식.
북한이 8일 오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한 '건군절' 기념 열병식.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이 올해 2월8일로 건군절로 바꾸어 평창 올림픽 전날인 8일 대대적인 열병식을 위해 그동안 대규모 군 열병식을 준비해 왔습니다. 북한에서 이런 행사를 할 때 마다평양은 들썩들썩 했지만 정작 평양만을 위한 잔치였지 지방 주민들은 제한적인 북한 언론을 통해서만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하는군요

: 항상 평양에서 했기 때문에 열병식 같은 것은 직접 보지 못했고 그냥 텔레비젼에서만 나오는 것을 보았어요

여성시대 북한 보안서에서 근무 했던 김시연 씨와 함께 합니다.

지방에서 사는 주민들은 이런 행사에는 일부 주민들만 선정되어 참여하기 때문에 관심조차 갖을 수 없다고 전합니다.

: 지방에서 뽑혀 올라가는 사람들만 참여하는데 군대 열병식 같은 것은 군대 내에서 뽑고 그리고 노동적위대가 있어요 마지막 대열중에 거기에는 대학생 들과 고등학교 학생들이 참가하는데 대학생들도 집은 지방이지만 평양에서 대학다니는 학생들도 선발되기도 해요

어번에 군대 열병식 훈련 연습등 겨울 날씨가 워낙 추웠기 때문에 참여하는 인민들이 큰 고생을 했을 것이라고 염려합니다.

: 그 추운데서 겨울에 옷 장비 같은 것도 시원치 않잖하요 북한은, 그러다 보니 거기에 참가한 사람들은 고생이 말도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몸을녹일만한 데가 없어요 그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들어가 몸을 녹일 수 있겠어요 정말 고통스러운거죠.

더구나 올해는 갑자기 바뀐 군 열병식으로 주민들의 개인적인 생활은 전혀 고려하지도 않고 당국의 강제적인 명령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불만을 내색 할 수도 없는 상황은 당연한 일 이라고 김시연 씨는 전합니다. 이와 함께 얼마전 탈북자들이 미 백안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북한의 인권 상황을 얘기하면서 특히 중국이 탈북자들의 북송을 막아달라는 의견을 내 탈북 문제를 이제는 전세계가 알아야 한다는 탈북민들의 한결같은 견해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중국의 탈북민들이 북송되고 있다고 김시연 씨는 강조하는데요.

: 지난번에 우리 사촌 언니가 오면서 먼저 언니네 팀이오고 다음 팀에 조카가 오기로 되어있는데  그 조카도 북송되어어 나갔어요 중국에 들어오자마자 잡혀 나간거죠

물론 브로커, 거액을 받고 탈북자들을 중국으로 인도하는 중개인이 있었을 텐데 이런 일은 지금도 이루어 지는데 이에대한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요,

: 브로커라고 해도 그 중에 북한 보위부 성원들도 많고 중국 사람들이 신고만 하면 돈을 주니까 그리고 탈북자들과 중국 사람들과 관계가 계속 탈북자들이 들어 오면서 더러 도둑질도 하고 배가 고프니까, 이런 상황으로 탈북자들을 좋지 않게보는 조선족들도 많고 중국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특히 조선족들이 중국 한족 보다 신고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면 중국 정부에서 신고한 사람들에게 돈을 얼마씩 주어요 이런 돈을 바라고 신고하고 이런 일들 때문에 그 조카도 다음 조에서 따라 오기로 했는데 누군가 신고를 해서 잡혀 갔다고 해요, 저기 탈북자들 비슷한 사람들이 여러명 칩거하고 있다. 이렇게 신고를 해서 잡혀 나간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탈북자들은 금방 눈에 띄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을 해야 한다는데요, 여러번 북송당했다 탈북한 사람들도 두려움으로 긴장하기 때문에 표적이 된다고 말합니다.

: 금방 온 사람들은 더 티가 나요 좀 숨어서 한동안 있으면서 중국에서 그래도 잘 먹잖아요 한달만 잘 먹어도 얼굴이 확 좋아지거든요 그리고 옷도 중국 스타일로 입으면 잘 못 알아보는데 그러니까 표적이 되는 수가 있죠

김시연 씨도 북송을 두번 겪었다는데요 처음에 북송된 것은 민족 시인인 윤동주 시인의 고모가 김시연 씨의 친척도 되는데 그 고모님을 만나기 위해 딸과 함께 중국으로 탈북한 셈입니다.

:  고모님이 호주에서 윤동주 시문학상 시상식을 봐 왔어요 그래서 제가 고모님이 호주에서 온다는 소리를 듣고 탈북해 중국에 들어와서 친척들이 저를 산속에 숨겨 놓았어요 고모 만나면 제가 한국이나 외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숨어 지냈거든요 그런데 거기 조선족이 구리, 동 전기선 뽑는 구리를 북한 사람들과 밀수를 했어요. 그런데 파출소에서 잡히게 되니까 파출소에서는 다른 사람 죄인이 있으면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하면 너의 죄가 삭감된다, 다른 숨어있는 죄인들을 잡기 위해서 그렇게 한데요 그래서 그 조선족이 제가 산속에 있는 것을알고 북한 여자가 산에 들어와서 숨어 있다는 얘기를 한거에요 그래서 제가 중국에 들어와서 5달 정도 산에 있다가 잡혀서 나갔어요

산이라고 해도 깊은 산이 아니라 동리에서 좀 떨어진 산에 있는 집에서 숨어 지냈다고 하는데 그 집은 강을 건널때 도움을 준 사람의 숙소였다고 하는군요.

: 저를 강건너게 해 준 경비대 중대장의 부인이 중국에 들어와서 몇달씩 머물면서 중국물건들을 장사하기 위해서 북한에서 물건을 가지고 와서 중국에서 팔아 그 돈으로 중국물건을 사가지고  북한에 나가고 그랬어요. 그런데 산에 집이 있어요 그 여자가 있는 숙소에 제가 같이 있었고 딸은 제가 중국에 같이 데리고 들어갔지만 산속에 애도 같이 있을 수는 없다고 해서 애를 교회에서 데리고 갔어요 그래서 저하고 중대장 부인인 그 여자와 같이 산에 있었는데 그 여자가 물건들을 북한에 가지고 나간 사이에 제가 잡혔어요.

함께 탈북한 딸은 다행히 탈북자들을 돕는 교회에 맡기고 중대장 부인이라는 사람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좀 덜 했지만 혼자 있다 갑자기 공안에 잡혔기 때문에 너무놀랐다며 당시 상황을 들려줍니다.

: 그때 막 죽고 싶었는데 죽을 수도 없고 속이 타니까 먹지도 못하고 물고 안넘어 가더라고요 딸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나는 잡혀 나가 죽으면 다시는 애를 보지 못하고 딸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팔려 다닐지 그런 걱정으로 밤새 날 밝히고 그때 너무 힘들었어었어요.

떨어져 있던 딸에게 아무런 소식도 전할 수 없이 북송되기 때문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는데요,이렇게 울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러가지 였다고 전합니다.

: 제가 북한에서 안전부에서 일했으니까 나가면 같이 일하던 안전부 동료들 다보게 되니까 그러면 내가 죄인이 되어서 그 사람들을 봐야 되는것이고, 집안 망신을 다 시키는 그런 걱정도 되고 그래서 말 못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탈북자들이 중국에 인신매매 강제북송을 막아 달라는 청원 까지 했는데요 북송당했던 탈북자들이 모두 겪었던 일 이였기에 이런 청원을 할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동안에도 북송당한 온갖 증언들이 많이 나왔지만 중국은 굶주림에 시달리며 인권 탄압까지 당하는 탈북민들을 경제 이주자라며 중국 국경을 넘었어도 공안에 잡히면 바로 북송 시키고 있습니다. 김시연 씨는 북송되어 잡혀 나간뒤 증언 들어보죠.

: 제가 나갔는데 거짓말을 했어요. 중국에 5달 있었다고 하지 않고 나는 중국에 살려고 간 것이 아니라 중국들어간지 8일 밖에 안됐다, 중국에 있는 친척이 먹을 것을 많이 만들었는데 북한이 어려우니까 가지고 가라고 해서 내가 남편 없이 혼자 살다 보니까 도움을 받으러 갔었다, 그런데 운이 나빠서 잡혔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김시연 씨는 보안소에서 근무를 했었기 때문에 거짓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군요

: 왜냐하면 북한의 안전부나 보위부에서는 내가 없어진 것을 그때 까지는 몰랐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잡히니까 중국에 머문지 8일 밖에 안되었다고 하니까 보위지도원이 그러더라고요. 너의 남편이 안전원 있었다지, 너도 안전부에 있었다는데, 그렇다고 하니까 그분은 나이가 지긋한 분이었어요 오죽 힘들었으면 갔겠느냐 딸 같은데 너의 그마음을  안다고 하면서 지금 한 말을 모두 곧이 듣지는 않지만 자술서는 그런 내용으로 써 주겠다 하더라고요 더러 착한 보위부원들도 있거든요

북송된 탈북자로서는 정말 운이 좋았고 또 집안 형제들이 간부등의 직위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군요.

: 제가 나가니까 오빠가 바로 그날 저녁에 왔더라고요. 보위부에서 동생이 잡혔다고 얘기를 했데요. 그소리를 듣고 동생이 언제 오느냐고 계속 와 보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날도 집결소 책임자 소장을 만나서 내 동생이라고, 오빠도 간부 급이거든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얘기를 하라고 하니까 그 소장이 제가 안전부에 있다가 보니 간접적으로 저를 알더라고요 얘기를 하다보니까

보위부에서는 기회는 왔다고 생각하고 도 집결소에서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 오빠와도 인연이 있어 모래 10차를 좀 실어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는군요. 도 집결소가 허름하게 낡아서 다시 보수를 해야 되는데 도 집결소에는 차가 없거든요 모래 실어 나를 차가, 그런 기관에는 거의 없어요. 모래를 어디서 파다가 공사를 해야 되는데 안되니까 그것을 해달고, 그래서 오빠가 모래를 실어다 주어서 나왔어요. 저는 도집결소에서 열흘도 안되어서 나왔어요. 그전에 온성보위부에서 한달 있었고 이관하면서 온성 경찰서에 보름정도 있다가 청진에 있는 도 집결소에 나와서는 오빠가 빼내주어서 금방 나왔어요

북한에서의 권력과 자금력으로 인해 북송 되었어도 그 위기를 잘 넘겼다는 김시연 씨는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탈북자들이 거치는 온성 보위부의 조사 현장에서는 인권이라는 말 조차도 모르는 탈북민들을 너무 혹독하게 다루고 있어 이런 상황이야 말로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재차 강조 합니다.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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