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도 보는 남한 드라마, 영화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2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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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한 상점에 영화 DVD·VCD 디스크가 진열돼 있다.
평양의 한 상점에 영화 DVD·VCD 디스크가 진열돼 있다.
ASSOCIATED PRESS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세계적인 영화 축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거머쥔 한국영화 기생충이 세계적인 영화 판도를 흔들고 북미 대륙을 장악하고 있는데요, 탈북민들은 북한에서도 이영화를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고 얘기하는군요

: 최근 온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지금 저희가 여기서 제목도 모르는 영화나 드라마를 다 보는거에요 북한에서도 이미 기생충 영화를 본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여성시대, 북한 여성들은 어느종류의 영화 드라마를 선호하는지 자유와 인권을 위한 탈북연대 김태희 대표와 함께합니다.

북한의 예술영화는 주제는 1980년대 이전까지는 김일성의 항일혁명투쟁과 관련된 영화가 가장 많았고 2000년 이후에는 경제문제를 다룬 영화가 2010 이후에는 인민생활 문제를 다루는 영화의 비중이 좀 높아졌다는군요

: 주민들이 살아가는데 문제들을 다룬 것이 있는데 가정의 문제라든가 이런 것도 당시에는 재미 있게 보기는 했어요 그것도 다 혁명적으로 김일성의 조직생활과 연관지어서 사람과 사람의 살아가면서 얽혀 있는 인간관계를 풀어가는데 우리가 지금 여기 한국에서 보면 아침 드라마 연속드라마 같은 것 들을 상당히 즐겨 보았어요

그러다 장마당이 자본주의 경제로변하면서 주민들의 영화와 드라마를 선택할 수있는 폭이 넓어 집니다.

: USB, SB 카드 등이 사정없이 북한으로 갔잖아요 DVD 도 넘어가면서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는거에요

그렇다면 북한이 이런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뀐 것은 아닌지요.

: 안 괜찮죠, 그래서 이것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고, 감방생활을 몇년씩 몇개월씩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이 드라마나 영화 같은 문화에 한번 맛을 드리면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숨어서 돌려보기 하면서 영화나 드라마를 봅니다.

김태희대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스카 상을 4개 부분에서 받은 영화 기생충을 이 자유의 땅 한국에서 아직 다보지는 못했다는군요

: 저도 기생충 영화를 이메일을 통해 링크를 걸어 보내 주시는 분드로 계시거든요 북한에서는 영화를 자기의 실생활에 많이 주입을 하다 보니까 그 영화에서 희노애락을 찾는 거죠. 아 우리도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언제 우리는 저렇게 살아보나 이런 동경으로 한국의 영화 드라마를 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한국드라마지만 북한 남성과 한국의 여성의 사랑을 그리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는 이미 보았다는군요

: 이드라마를 보았어요 우리가 보기에는 약간좀 웃기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북한의 사투리를 적용을 해서 코로나 폐렴 남한 우리는 바이러스라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비루스라고 한다면서 북한의 사투리를 적용을 하다보니까 여기분들이 비르스를 바이러스라고 쓰는구나 그것을 보면서 북한말을 알아가는 것 같았어요

김대표는 이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한국사람이 다 된것은 아닌가 하고 오히려 북한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북한에서도 해외 영화 즉 중국이나 러시아등의 공산권 영화나 드라마 볼 때면 많은 주민들이 모여 함께 볼 기회가 있었다고 전합니다.

: 러시아 , 중국영화 는 북한과의 동맹국이기 때문에 많아 받아 보았어요 그래서 북한 영화만 보는드라마 시간이면 사람들이 그 시간을 기다리거든요 문화 생활이 그것 밖에 없거든요, 북한에서는 드라마라고 하지않고 연속극 이라고 하거든요 그 연속극을 하는 시간이 되면 특히 외국영화들이 나오면 텔레비젼이 있는 집은 문전 성시를 이루거든요. 농장의 작업반의 선전실의 텔레비젼이 있으면 그 선전실이 꽉차는 거에요

김대표는 북한에서 지금도 잊을 수 없었던 사춘기때 처음본 키스장면이었다는군요

: 제가 며칠전에 북한에 있을때 외국의 드라마를 보았던 소감을 쓰면서 아 나도 이런때가 있었구나 저희가 어렸을때 사춘기 정도가 되면 남녀의 키스 장면이나 그리고 여성들이 어깨 라인이 나오는 옷을 입는 것은 그때 당시로는 있을 수 없는 일 이었고 우리는 상상도 못했던 건데 외국 영화가 들어오면서 키스 씬이 나오고 무도 춤을 추는데 어깨 라인이 다 나오는 옷을 입었더라고요 그런데 그 장면이 너무 아슬아슬하게 보이는데 그것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침이 꿀꺽넘어가는거에요  나는  너무 급해서 침을 딱 멈추었는데 그 선전실에서 영화를 보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다른때는 벅적 벅적대더니 그 순간에는 모두 아 조용한거에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수많은 사람들이 아찔한 장면을 모두 숨을 죽이고 보았다는 거에요.그것을 이제 와서 꺠달았아요

북한에서는 주민들의 사상을 얼마나 얽매어 놓았는지 알수 있는데 그때 고위층들은 너무 달랐다고 강조합니다.

: 그때당 시는 기쁨조가 미니스커트에 거의 반나체가 되다시피한 옷을 입고 보천보 전자 악단과 함께 해외 순방공연을 했다는 거죠. 저의 아버님이 중국에 친척이 있어 중국에 사사여행을 다녔는데 그때 중국에서 그것을 보시고 녹음 테이프를 얻어가지고 오셨더라고요. 그러면서 사실은 노래를 이렇게 하는데 기쁨조들은 거의 반 나체를 하고있다, 김정일이 정말 나쁜 놈이다, 아가씨들을 거의 반나체로 노래부르며 춤추게 하면서 인민들에게는 절대로 보지 못하게 한 것이 김정일이다 그때 아버지가 이런 얘기를 하시면서 이런 문화로 해서 북한이 퇴폐될까봐 이런 것을 막아놓은 것이 김정일이다 라고 하셨어요

지금 한국에서 살면서 북한 생활을 돌아보면 사상적인 것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너무 억압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 문화에는 노래도 있고 춤 그리고 영화도 다 포함이 되었던 거죠 북한에서는 이런면에 상당히 제약을 많이했고 지금도 하고있죠. 지금도 북한에서 한국의 드라마 영화를 보다 들키면 감방에 가고 집안의 재산도 몰수 당하고 또 뇌물도 상당히 고여야만 풀려날 수 있는 그런 상황이니까 지금 상황에서 이런 제재에 대해 북한당국이 고민을 하고 있다고 봐야죠

최근에 온 탈북민들은 북한 당국이 반대하는 외국영화, 특히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는 있다는데요.

: 이제는 한국에서 새로나온 드라마나 영화를 바로 바로 구입한다는 거죠 그래서 거의 한국과 비슷하게 하루 이틀정도 차이날 정도로 받아서 보고 자기네들 끼리 돌려보고 친구들과 바꿔치기 하면서도 보거든요 문화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은 한국의 영화 드라마를 바로 구입 한다는 겁니다. 당에서 보지 말라고 하면 할 수록 이런 사람들은 더하는 거죠

북한의 여성들이 즐겨보는 드라마나 영화를 선택하는 취향이 어떤지 궁금한데요

: 여성들이 멜로물, 달달한 것도 좋아하지만 또 액션쪽으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액션 영화를 상당히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북한에서는 유명하고 어른들 까지도 좋아하는 것이 만화영화에요 만화영화 소년장수는 지금도 이어져 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 소년장수는 성인들 까지도 좋아하는 국민적인 만화영화로 등장을 했어요

김정일은 영화 음악등 예술 문화를 좋아했는데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는 다른 면이 있다고 하는군요

: 김정은은 아버지 보다 할아버지를 많이 닮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죠, 그리고 아버지 처럼 문화 예술에 즉흥적으로 빠질 시간적인 여유가 없지 않나 현실적으로 김정은은 전군 무장으로 군을 먼저 보강하고 발전시키는 것 만으로도 아버지가 갑자기 비어놓은 자리를 보강하는데 급급하잖아요 고모부를 처형하고 당 서열을 바로 잡는 일만 해도 대외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대내적으로 볼때는 상당히 문화적인 생활같은 것에 눈을 돌리기에 김정은에게 시간적인 여유가 아직 없다고 할수 있어요 그래서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 지병인 심장병으로 수술을 받았다 치료를 받았다는 등의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아버지 김정일과 김정은은 정치를 물려 받았을때 그 환경이 너무 달랐다고 지적합니다.

: 아버지 김정일은 할어버지 김일성이 이루어 놓었던 바탕을 그대로 인계 받아서 문화적인 것을 즐길  여유가 있었지만, 김정은은 여유가 없는거죠 김정일이 물려준 정권도 많은 사람들이 굶어가는 것을 보기는 것도 숨이차서 헉헉거리는데 김정은이 마냥 문화 예술을 전 인민적으로 펼치라는 구호를 낼 상황은 아닌것 같고, 하지만 본인은도 문화 예술을 즐기기 때문에 현성월이나 부인 이설주를 옆에 두고 취미는 있지만, 지금 즐길만한 여유는 아니라고 볼 수 있어요

지금 상황으로는 핵무기 유지하고 발전 시키랴 또 주민들의 굶주림도 해결하려면 문화 예술쪽으로 신경을 쓸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 김정일때는 저희 학생들에게 한사람이 한가지 이상의 악기를 다 다루라 고 지시를 했어요 김일성 김정일때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합창단을 꾸려서 정말 유치원때 부터 다니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그러면서 충성의 노래 모임이요 이런 활동이 엄청 많았고 악기도 무조건 배우라고 해서 손풍금도 배우고 그래서 탈북자들이 보면 악기를 많이 다루고 있어요 그것도 예술 소조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었거든요 그런데 김정일 정권 말미에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가지 않은 거에요 학교에서 내라는 것이 많아서 안갔다고 하면 큰일 나는줄 았았거든요 그런데 김정일 시대 말미에 들어와서는 먹고 사는것이 힘들고 학교에서 내라는 것도 내지 못하고 선생님들도 굶어 죽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해당 학생들의 생활총화를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학교를 안나오는데 예술 소조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된다는 것은 어려운거죠

김정은 시대는 더욱더 자력갱생을 내세우면서 핵무기시험은 물론 지속적인 개발을 위해서 주민들의 민생은 완전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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