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고향 까마구 만나다

김태희-탈북자 xallsl@rfa.org
2022.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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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 고향 까마구 만나다 지난 2020년 8월 북한 황해남도 태풍 피해 현장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간부들이 파견돼 일손을 돕는 모습.
/연합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장맛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요즘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늘 마음 한켠이 우울해집니다. 그 이유는 중국에서 살던 20년 전, 4살 된 아들이 보는 앞에서 중국 공안에 붙들려서 북한으로 끌려갔던 시기가 이때였기 때문이랍니다. 비가 오는 날 들이닥친 공안에 붙들려서 변방대로 끌려갔는데 뙤창너머로 바라보이는 비가 내리는 하늘은 너무나도 슬펐습니다.

 

창문을 드나들면서 날아 예는 파리가 부러웠고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이 서글펐습니다. 변방대 감방 벽에 사랑하는 아들 이름을 새기고 또 새기면서 살아서 아들 얼굴을 볼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울었고, 붙들려 간 고향에서 인간 이하의 인권유린을 당하면서 다시는 고향이라고 돌아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요. 그런 기억이 가득한 계절이라 내리는 장마비에 우울했는데 올해는 특별한 만남으로 그때 당시의 생각을 잊게 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고향의 친구들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시골동네라 하나밖에 없는 인민학교와 중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던 동창생도 만나고 선후배 사이로 학교에서 교사를 하던 아버지의 제자들을 찾을 줄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가끔씩 고향 친구들을 만나 우정을 지키며 회포를 나눕니다. 그러면서 누구네 집에는 숟가락이 몇 개던 것까지의 이야기도 나누지요.

 

지난 3년 간 만날 수 없었던 고향 선후배들이 이제는 코로나도 잠잠해졌으니 얼굴이나 보자고 한 달여 전부터 전화 통화를 주고받으면서 산 좋고, 물 맑고, 경치 좋은 곳을 선정해서 숙소 예약을 했습니다.

 

첫날은 학교를 마쳐야 하는 손녀의 수업시간을 기다려 오후에 출발해서 대구에 사는 친구를 만나 태우고나서 3시간여를 달려서 청주에 도착했지요. 도착한 첫날은 집에서 튀겨간 두부 밥 재료에 밥만 해서 넣고 또 서울에 사는 탈북민 언니가 해준 북한식 떡을 한 가득 보내주고 우리가 좋아하는 마른 명태를 해서 상을 차려놓으니 딱히 음식을 만들지 않았어도 보기 좋고 푸짐했습니다. 이만한 양과 숫자면 북한에서는 잔치도 치루겠다고 했는데 선배언니가 생선구이와 돼지고기 그리고 인천의 유명한 소래포구 어시장에 들려서 소라도 한 꾸러미 사 들고 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북한식 두부밥과 한국식의 유부초밥, 과일과 음료수를 싸가지고 청남대로 놀러갔지요. 대통령이 피로를 풀기 위해 들린다는 별장을 둘러보고 또 청와대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책상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이동거리가 좀 멀어서 자가용차를 여러 대 나눠 탔는데 저는 12살 손녀와 탈북민 자녀들을 저의 차에 태우게 되었답니다. 그 아이들이 뒷자석에서 재잘거리면서 이야기 나누고 노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저도 모르게 아이들 목소리를 담고 싶어졌습니다.

 

부산 특유의 저의 손녀 목소리와 경기도에서 사는 아이의 목소리, 대구에서 사는 아이의 목소리 이렇게 모두 다른 곳에 사는 아이들이지만 대화도 잘 되고 재미있게 노는 모습에 너무나도 귀여워서 아이들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렇게 재잘거리면서 숙소로 돌아가서는 수영장에서 온 오후를 기진맥진할 때까지 나오지 않고 놀았습니다. 물놀이 하는 아이들에게 수박을 잘라서 먹기 좋게 조각을 내고 반 자른 수박 통 안에 사이다를 부어서 먹기 좋게 해서 내다 주었더니 물 안에 들어갔다가는 나와서 먹고 들어가고를 반복합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신선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녁에는 배가 부르니 모두 소화시키러 노래방을 가자고 하네요. 한국은 노래를 부르는 곳도 여러 곳이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서 노래를 부르는 주점이라는 곳도 있지만 저희가 선호하는 곳은 노래연습장이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여기선 시간당 계산만 하고 목이 마르면 음료수를 주문해서 마신답니다.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늦은 밤, 숙소로 돌아와서 다 같이 북한에서의 여학생 실습시간처럼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맡아서 저녁밥을 지어서 먹었습니다. 소라도 삶고 냉면도 말아서 저녁을 먹고 또 지난밤에 못 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누가 먼저 잤는지도 모르고 하나 둘, 코를 골면서 꿈나라로 갔습니다.

 

마지막 날은 늦은 잠에 깨어서 부랴부랴 씻고는 아침을 해서 된장찌개와 함께 먹고 작별 인사를 했지요. 평택으로 가야 하는 사람, 서울로 가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제일 거리가 먼 저는 대구에 들러서 함께 동승을 한 친구까지 내려주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렇게 고향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부산-경남에서는 “고향 까마구”들이 만난다고 합니다.

 

유난히 장마가 긴 계절, 늘 쓸쓸한 추억만을 간직했던 저에게 고향이 가져다 준 또 다른 따뜻함입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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