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베란다농사 일년농사

김태희-탈북자 xallsl@rfa.org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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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 베란다농사 일년농사 북한 남포시 강서구역 청산리에서 지난 9일부터 모내기가 시작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밖에는 매미가 요란스레 울어대고 푹푹 쪄가는 열기에 사람 잡는다고 하는 요즘입니다.

태풍이 아래위로 오르락 거리다가 어딘가로 빠지고 대신 날씨는 얼마나 무덥고 습기가 가득한지 특히 한국에서 제일 더운 지역인 대구는 아프리카의 날씨를 방불케 한다고 “대프리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맘때쯤 북한도 농작물은 푸른 기운을 한껏 뽐내겠죠, 특히나 이런 무더위에 허리를 치는 강냉이며 담배 밭을 살갗이 찢겨지며 기음매던 생각이 납니다. 한 잎 한 잎 따내던 담배는 독이 오르고 찐득찐득한 진은 사람의 온 몸과 손에 달라붙어서 괴롭히던 때도 어쩌면 그립기도 하군요.

 

그래서 그때의 그 추억을 느끼고자 사무실 베란다에 농사를 지어봤습니다. 농사라고 해야 고작 오이며, 토마토와 가지, 고추가 전부이지만 도심에서 흙을 어디서 파올 데가 없어서 전부 사서 화분을 만들어야 하고 또 흐르는 개울물이 아니고 또 자연수도 아닌 수돗물을 받아서 주어야 합니다. 몇 년째 농사를 지어보느라고 애써봤지만 신통치 않게 되던 농사가 올 해는 조그마한 열매를 맺어주었습니다.

 

작은 베란다에서 가뭄을 이겨내고 오이며 가지,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린 것을 보니 기특하고 어쩌면 탈북민 우리처럼 역경을 잘 이겨내는 것 같아서 반갑기까지 했답니다.

 

지난 주에는 그 베란다에서 열린 오이를 탈북민 어머니들하고 함께 뚝뚝 잘라서 나눠먹었습니다. 베란다텃밭도 텃밭이라고 오이향내가 물씬 풍기는 오이를 먹으면서 북한에서의 이야기는 늘 빠지지 않습니다.

건물 앞에 100미터도 안되게 나가면 시장이고 여러 가지 신선한 야채들을 사먹을 수 있지만 직접 농사를 지어서 먹는 맛은 보는 즐거움과 함께 또 다른 선물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면서 어머니들이 하시는 말씀이 북한이라면 이런 베란다가 있으면 돼지 치는 건 큰 문제가 되지도 않겠다고 하셔서 웃었지만 어쩌면 웃어넘길 말이 아닌 북한주민들의 또 하나의 고통스러운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도심의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은 베란다나 부엌에 돼지를 치고 냄새가 날까 봐 매일 매일 청소를 해야만 했고, 시골이라고 그나마 안심을 하려고 움처럼 만들어놓고 주먹만한 열쇠까지 걸었던 돼지우리에는 인민군이 와서 열쇠를 까고 돼지를 도둑질해가던 그 시절을 이야기 하려니 눈 굽에는 이슬이 맺히고 목소리들은 떨려납니다.

 

한국에서는 흔하디 흔한 토마토와 오이, 고추, 가지 같은 야채는 귀한 남새종류에 들어가서 일반주민들이 먹어보기에는 쉽지 않은 것들이기에 장마당에서 사먹기는 힘들었죠, 그래서 야밤이면 배낭을 메고 남새밭에 갑니다.

 

야밤중에 경비원에게 걸리지 않고 남새서리에 성공을 하면 장마당에도 내다 팔 수도 있지만 발각되면 도둑질을 했다고 처벌을 받았지요. 오이 하나 사먹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먹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탈북민 어머니들은 그 박한 북한에서 어찌 살았을 까 하고 뇌이십니다.

 

물론 베란다에 텃밭을 만들고 야채농사를 짓는 것은 북한처럼 사먹을 돈이 없어서가 아니랍니다. 커다란 화분 통을 사고, 흙과 모종, 그리고 약과 비료 등을 사는 것이 오히려 야채를 사먹는 가격보다 더 비쌉니다. 거기에 물 값과 정성까지 합치면 가격이 더 올라가겠죠.

그럼에도 이런 농사를 짓는 것은 어머니들에게 푸른 식물들이 줄을 뻗으면서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생의 활력소를 만들어드리기 위함입니다.

 

이런 베란다농사는 비단 저 뿐만이 아닌 많은 한국 사람들이 즐기는 취향중의 하나인데요, 사무실 맞은편 아파트를 바라보면 식물들이 줄을 지어 올라가는가 하면 화분들이 주렁주렁 바깥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베란다농사가 아닌 텃밭농사도 합니다.

 

자기 땅이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10여 평 땅이라도 임대를 해서 자그마하게 재미로 농사를 짓는 분들도 있지요.

 

저도 몇 년 전까지 어머니들을 모시고 도외지로 농사지으러 다녀본 경험도 있는데요, 내 손으로 땅을 가꿔서 농사를 지으려는 목적은 푸른 모종을 심고 가꾸어서 열매가 익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또 한국은 비료나 약을 안친 유기농 야채들을 많이 선호하기에 여름 한철에 야채만이라도 직접 농사를 지어먹으려는 소박한 꿈이 있지요. 거기에 더 해서 심고 가꾸면서 얻어지는 수확을 바라보는 성취감도 더해집니다.

 

무엇이든지 풍요로운 삶 속에서 누리고 즐기려는 목적도 각이합니다. 그리고 취미도 제각각이죠, 하지만 그 누구라도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자라나는 식물을 보면서 느껴지는 감동과 재미입니다.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저의 사무실 베란다에 오면 감탄부터 합니다.

시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일과 열매임에도 식물에 붙어있는 열매는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게 하고 그 열매를 딸 수 있는 자격은 땀 흘려 일한 사람에게 한정된 권한인 것입니다.

그런 권한을 우리는 이 땅에 와서 자유롭게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작은 텃밭-베란다농사는 가물어 메마른 시기에도 넘쳐나는 물을 생명수로 공급받고 우리들에게 하늘하늘 초록색 빛을 선물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들에게는 젊음과 생동력을 선사합니다.

 

북한에서 그리도 가지고 싶었던 내 땅과 풍요로운 삶을 우리는 이 땅에서 자그마한 노력으로 가질 수 있고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 삶의 여유로움과 삶의 질 향상을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모든 분들이 함께 누리시기 바라면서 오늘의 방송 여기에서 마칩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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