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에서는 격주로 탈북자들의 못다 한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북한에서의 생활, 중국으로 탈출과 숨어 사는 사연 목숨 걸고 제삼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얘기들을 눈물과 한숨 웃음으로 풀어놓습니다. 그동안 지난해 초 남한으로 입국해 정착한 정경화 씨의 얘기를 전해 드렸는데요, 오늘이 정경화 씨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정경화 씨 그동안 좋은 얘기 많이 들었고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이 아쉽게도 마지막 시간인데요, 요즘 어떤 생활을 하고 계신지 얘기해 주세요.
---네, 남한에서는 경찰서에서 우리 탈북자를 보호해 주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우리 지방 경찰서에서 쪽지가 날아왔어요. 북한 새터민들의 취업알선을 위해서 한국에서 살려면 운전면허가 초보적이잖아요, 면허증을 자동차 면허 학원에서 무상으로 받을 수 있게 해준다는 연락이 왔어요. 저는 그때 호텔 직원 식당에서 시간제 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운전면허도 하라고 할 때 해야지 곧 기간이 지나면 변동될 수 있어 제가 일하던 호텔 전무님에게 말씀드리고 25일간 운전학원에 다녀 면허증을 땄어요. 그래서 새 차는 못 사고 중고차를 마련해서 차를 타니까 지금 주유소에서 일하면서 차를 타면서 주유하던 경험이 지금 일하는 곳에서도 도움이 돼요.
질문) 잘하셨어요. 차가 있으면 시간제인 아르바이트 일이나 또 다른 일자리로 옮기더라고 참 편리하죠. 그동안 직접운전을 하면서 어려움은 없으세요?
----면허증을 작년 10월 초에 받아서 ...
질문) 돈 하나도 안들이고 면허증을 받으신 거죠.
----그렇죠. 얼마나 고마운지...
한국 사람들 운전 면허증 따기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죠?
---그럼요, 학원에 가는데도 무려 한국 돈 100여만 원을 바치고 따는데
질문) 그것도 한두 번에 붙는 것이 아니라 지난번 신문 보도를 보니 어떤 사람은 100여 차례 끝에 합격했다고 그래요. 그런데 한 번에 붙으셨으니..
----운전학원 가기 전에 고용지원센터에서 담당자가 저에게 나이가 있는데 어떻게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느냐고 그만두는 게 낫다는 식으로 얘기해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다며 일을 하려면 운전 면허증이 필요한데 왜 반대를 하느냐 그러면서 무조건 나는 하면 한다고 농담 삼아 얘기를 했는데요, 어떻게 면허증을 땄어요. 면허증을 따면 고용지원센터에 가서 얘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가서 면허증 땄다고 하니까 담당자가 대단하다고..
질문)고용지원센터에서도 놀랐겠어요.
---- 대단하다고 말했는데, 나는 속으로 대단할 것 없다고 생각했어요. 북한에서 운전하신 경험은 있었나요?
---- 없죠. 내가 지금 한국에서 꿈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130기에 들어온 탈북자 중 함흥에서 온 북한여자가 내가 함흥에서 왔다고 하니까 서로 반가워하고 또 동생뻘이 돼서 동생 삼아 지내는 아줌마가 있어요. 그래 그 아줌마와 같이 내가 운전하는 차를 함께 타고 가면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내가 이렇게 운전하고 있다는 것이 네가 보기에 내가 꿈같지 않니?' 그러면서 '북한에서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와서 차도 가지고 있고 집안에 갖출 것을 다 갖추고 있다면 믿지 않을 거야' 그랬더니 그는 중국에서 금방 왔기 때문에 그대로 북한말을 하거든요. "언니 그렇지 않고 누가 믿겠어,' 하면서 웃었어요. 지금도 나 자신을 북한의 생활과 비교 해 보면 정말 중앙당 급이죠. 솔직히 말해서 중앙당 급도 개개인이 차가 없어요. 중앙당 청사 안에 차 몇 대 있는 것 타고 다니지 중앙당 간부라고 해도 자전거를 타요. 내가 2천 년에 탈북할 때까지만 해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은 자전거였어요. 그런데 내가 힘들게 좋은 세상에 와서 정말 사람답게 사는 것 보면 중앙당 간부 못지않은 생활을 한다고 생각할 때 여기 온 것이 백번 잘했어요. 제가 일하는 주유소의 사장님이나 한국 분들이 얘기해요. "아줌마 정말 넘어오기를 잘했어요. 북한의 화폐를 100대 1로 교환해 준다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북한이 미치지 않았어?' 이렇게 노골적으로 얘기해요. 있는 돈을 교환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니까 상상도 할 수 없는 나라라는 거죠. 나도 북한에서 살았으니까 이런 일을 상상도 못 하는 사람들이게 '북한은 원래 저렇다 내가 있을 때도 화폐교환을 했는데 있는 돈을 제대로 다 바꾸어 주지 않다보니 사람들이 겉으로 표현은 못 하지만 속으로는 다 불만이 있어서 바꾸어주지 않는 돈을 태우면 태웠지 나라에 바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지금도 컴퓨터를 통해 뉴스를 보면 북한에 대한 것 다 나오지 않아요. 지금 화폐개혁으로 사람들이 격분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어요. 한국에 북한 동포들이 16,000 여 명이 왔잖아요?
질문)그럼요 곧 2만 명시대로 접어들 겁니다.
---- 여기에서 다른 탈북자들에게서 직접 들으니까 남한에서 탈북자들이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보내는 돈이 엄청나잖아요? 그러니까 돈을 북측 경찰 보안에서 단속한대요. 단속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뺏으려고 ... 나는 아직 북한에 돈을 보내지 않고 전화도 하지 않아서 우리 주변의 탈북자들에게 물어보았어요. "북한에 돈을 보냈는데 그 돈 이번에 화폐개혁으로 뺏기지 않을까?' 그랬더니 북한에서 살던 경험이 있으니까 다들 대책 있게 살더라고요. 중국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필요한 만큼만 바꾸고 나머지는 그냥 중국 돈으로 가지고 있데요. 그게 다행이죠. 그런데 북한에서는 인민들이 고위층 자기들처럼 생각하는 줄 알고 남한에서 부모형제 친지들이 보내는 그 돈을 뺏으려고 생각했지만 뺏길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잘 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격차가 너무 크니까 이런 것을 막으려고 한 것 같지만 너무 승냥이 같아요. 100대1로 교환해 준다는 것이...
질문) 그러니까 중국 돈을 북한 돈으로 조금씩 바꾸어 쓰고 나머지는 중국 돈으로 가지고 있는 거군요.
-----동생뻘 되는 애한테 내가 뉴스를 보고 걱정되어서 전화했어요. " 너는 얼마 전에 집에 돈을 보냈는데 다 빼앗기지 않을까" 하고 물었더니 아닌 게 아니라 북한에서 중국을 통해서 동생한테 전화했는데 인민폐, 중국 돈이죠 인민폐도 중국에서 돈을 바꾸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중국도 화페 개혁을 하느냐고 이것을 물으려고 중국을 통해서 거꾸로 북한에서 전화가 왔다는 거죠. 조선이 못 사니까 인민들의 돈을 뺏으려고 하지 중국에서 왜 화폐교환을 하겠느냐고 화폐 개혁하는 일 없으니 절대 중국 돈 내놓지 말고 떨지 말고 가지고 있으라고 전화로 얘기를 해 주었다고 말하더라고요. 이제는 북한 사람들도 다 자기 살 궁리하고 있어요.
질문)더 많은 탈북자가 오면 남한에서 돈을 벌어 직접 부모 형제 친척들에게 돈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떼이더라도 직접 보내는 것이 제일 안전할 것 같아요.
----그러면 북한 인민들이 사는데 너무 많이 도움이 되죠.
질문) 정경화 씨 얘기를 좀 바꾸어서 차를 직접 운전하면서 음악도 많이 듣죠?
----그럼요. 한국노래는 북한노래와 달라요. 북한 노래를 들으면 너무 뻣뻣하고 감정이 없어요. 그런데 한국 노래는 너무 듣기가 좋아요.
질문) 이렇게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들으면서 운전하면 기분이 좋으시죠.
----네,
질문) 정경화 씨 지금은 주유소에서 일하지만 앞으로는 더 큰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을 텐데요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나도 언젠가는 자립해서 사업하고 싶어요. 지금 계획이 우리 탈북자들에게 주는 정착금이 있잖아요. 5년 만기 되면 주는 정착금이 있고 그다음에 회사에 취직해 일하면 주는 정착금이 있잖아요, 그 정착금과 일해서 받은 월급을 저금해서 돈이 모이면 내가 중국에서 숨어 살 때 대학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 그것을 임대받아서 내 사업을 하겠다는 결의입니다. 한국에서는 한국 사람들도 사업하기 힘들고 또 내가 한국에서의 경험이 없어서 함부로 할 수 없지만 중국에서는 혼자서 땅을 임대 받아 해 본 경험도 있고 남이 운영하는 곳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어 중국에 가서 할 생각입니다.
질문) 네, 그러니까 이제는 한국 사람으로서 중국에서 사업할 계획이시네요. 중국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만두도 잘하시고 한국 음식도 중국 대학 식당에서 많이 해 보셨다니까 잘하실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각났는데요, 한국에 와서 주민등록증 받으시고 중국에 가셨잖아요? 중국에서 숨어 살다 떳떳하게 여행을 간 셈인데요...
----야 한국에서 외국에 가려면 여권을 내야 하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서도 그렇고 중국에서도 사람답게 외국으로 다닐 수가 없었는데 한국에 와서 외국에 가려고 여권을 받았을 때 내 손에 여권이라는 것도 쥐어보는 구나하는 생각에 너무 좋았어요. 여권 받고 북한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여권도 나왔다, 너도 여권 내서 남들이다가는 중국도 다시 가보고 비행기도 다시 타고 외국도 가' 하면서 나의 좋은 일을 남에게 얘기하고 싶어서... 처음에 탈북자들이 여권을 모두 신기하게 생각했어요.
질문)숨어 살던 중국에 가보니 어떠셨어요.
-----중국에 가서 보니 내가 중국에서 살 때는 중국이 멋있고 질 살고 또 사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중국에 지난해 11월에 갔는데요, 그동안 한국에 몇 달 있다 간 셈이에요. 그런데 중국이 까칠하고 중국 사람들이 불쌍해 보이더라고요. 10일 정도 날짜를 잡고 갔는데 닷새 정도 지나니 한국에 다시 가고 싶었어요. 여권을 가지고 외국이라고 중국을 갔는데 한국보다 못하니까 빨리 돌아가고 싶더라고요.
질문)이제 남한 사람이 다 되신 거죠.
-----네 맞아요. 이제는 북한 사람이 아니고 남한 사람이 다 된 것 같아요.
질문) 이제 1년 조금 지났는데 잘 적응을 하셔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어려운 일 힘든 일이 있을 겁니다. 이런 일은 비단 탈북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겪는 일이니까요. 그럴 때마다 북한에서 중국에서의 힘들었던 경험을 했기 때문에 정경화 씨는 꿋꿋하게 잘 이겨내실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정경화 씨 긴 시간 동안 못다 한 얘기를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 지난 2008년 초 한국에 입국했던 정경화 씨의 많은 사연 22번째를 끝으로 모두 마칩니다. 함께 들어주신 애청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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