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여러분 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네, 물론 사랑하는 가족이죠. 온 가족이 오순도순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고 웃음꽃을 피우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입니다. 그런데 가족 중에 아버지나 아들 혹은 형제자매가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되어 60여 년 동안 소식이 없다면 그동안 하루인들 마음 편하게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었을까요?
cut: ...아버지 내 아버지, 매일 보고 싶은 내 아버지 ... 아버지 보고 싶어요. 오빠 살아 계세요?
이들은 6.25전쟁 때 북한이 납치해 북으로 끌고 간 어느 아들의 아버지고 어느 아내의 남편, 어느 자매의 오빠 언닙니다. 여성시대 오늘은 6.25 전쟁 때 2납북된 인사들의 남측 가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전해 드립니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가 바로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의 민간단체 6.25 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는 올해는 아주 의미 있고 중요한 해라며 올해 꼭 이루어가야 할 일을 다시 늦출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이미일 이사장입니다.
CUT : 전쟁납치가 어떻게 이루어졌고 피해자들은 누구인가 납치 자 명단을 작성을 하고 명단이 작성되면 그 명단을 가지고 문제 해결을 하게 됩니다.
북한은 전쟁 이전부터 계획했던 민간인 납치를 실행에 옮긴 사실은 역사적인 여러 가지 자료에서도 잘 드러났는데요, 북한은 당시 지식인이 부족했고 전쟁 후 복구사업에서 인력조달을 목적으로 김일성의 지령에 따라 남한의 정치지도자 각계각층의 지식인, 경찰, 공무원, 기술자 그리고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어린 학생들까지도 마구잡이로 납치했다고 이미일 이사장은 말합니다.
cut: 전국의 각계 유명인사, 국회의원 각계 언론계, 법조계 의료 부분들에서 두각을 나타내신 지도자적인 위치에 계셨던 분들도 많았고
한국전쟁이후 남한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 지금은 세계경제 규모 13번째라는 놀라운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잘살게 된 남한에서는 전쟁 때 북한에게 납치당한 가족들로 인한 남측 가족들의 절망과 슬픔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납치당한 자녀들이 이제는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반나절이면 갈 수 있는 북한 땅에서 살아 계신지 돌아가셨는지도 모른다는 전쟁 때 아버지를 납치당한 자녀, 이미일 전쟁가족납치 협의회 이 이사장과 황용균 이사는 말합니다.
CUT:아무도 생사를 모른 체 가시는 거예요. 자기 자식의 생사도 모르고 부모 아버지에 생사도 모르고 황 이사: 저희는 급하거든요 아직도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동안 한국 정부는 6.25때 납북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전혀 알 수 없어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고 밝혔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기 전 지난 52년 납북된 사람들이 명단이 작성돼서 정부의 공식자료로 보관되어왔던 일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난 당시 한국 언론은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cut: 전국에서 납북된 8만 2천595명의 명단이 모두 밝혀졌습니다. 성명과 직업, 납치 년 월일, 납치 장소 등 8가지 사항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전쟁 때 납북 당한 전쟁납북자 가족 협의회 회원들인 가족들의 구체적인 증언도 한국정부는 애써 외면해 왔다고 납북자 가족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cut: 민청위원장이라는 사람과 내무성원이 와서 그날 잡힌 겁니다. 소위 동리 빨갱이들이 총 들이대고 어제께 들어오는 것 보았는데 어디 있느냐? 아버지는 식사하시다 말고 나가시면서 내가 죄지은 것이 없고....울음
지금도 가족들은 그때 일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고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있습니다. 휴전 전후에 작성된 여러 가지 문건들, 가족들의 구출 노력에도 북한은 납치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이미일 이사장은 전합니다. 그리고 휴전 회담에서 북한 측과 유엔군 대표로 미국대표가 협상할 때 납치된 남한 민간인을 실향민간인으로 표현해 납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해 전쟁납북자 문제는 여기서부터 해결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cut: 자의적으로 헤어진 가족들까지도 다 포함되는 해결방안을 마련해 놓고 휴전협정문에 사인했어요. 북한에는 남한으로 돌아가기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돌려보낸다고 사인을 했지만 북측에서 한 사람도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북한이 저지른 납치범죄도 묵인해 주었고요.
또한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없었기에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고 그런 동안 납치당한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남한의 가족들은 감시를 당하면서 연좌 죄 등으로 몇 배의 고통을 안고 살았습니다.
cut:
취직할 생각 말아라, 그런 박해를 하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가족에게 간첩이나 되지 않나 감시하고
정부가 공식자료로 보관해왔던 구체적인 자료가 드러났고 가족들의 증언도 있었지만 한국 정부가 계속 발뺌으로 일관해 왔다고 납북인사 가족협의회는 강조합니다. 그동안 납치당한 가족들의 생사확인 이라도 알려 달라는 호소, 탄원을 정부에 끊임없이 했지만 이런 민간단체의 외로운 활동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데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납북인사 가족협의회는 올 60주년에 지금 국회에 상정중인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 할 것이라는 기대에 차있습니다.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국제 활동도 함께하게 된다는데요, 우선 휴전협정 당시 유엔군 대표로 서명한 미군이 북한에 의해 납치당한 민간인의 일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작업이라며 이 일을 위해 이미일 이사장은 회원들은 지난 2007년에도 워싱턴을 방문했었습니다.
cut: 2007에 제가 납북자 결의안을 미국의회에 올리고 싶다고 했는데 이루어 지지 않아 특별법이 통과되면 다시 워싱턴에 가서 이런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유엔 사무총장, 휴전회담이 모두 유엔의 이름으로 진행되어서 유엔 사무총장에게도 서한을 보내려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지난 52년과 54년에 나온 납북자 명단을 가지고 지금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 사는 납북자 후손들로부터 신고를 받아 명단에는 올라 있지만 가족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납북인사의 가족관계를 찾는 일도 추진합니다.
CUT: 한국 정부가 작성한 명부가 있는데 가족들과의 연결이 전혀 안 되고 있어요. 물론 연로하신 분들은 가족이 다 안 계시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납북자 가족들은 신고하라는 공고를 할 겁니다. 한인들이 있는 곳은 재외공관을 통해서 저희가 신고를 받으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납북인사 가족협의회가 할 일이 또 있습니다. 납북되신 분들의 진상 규명과 이에 따르는 명예회복,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후대에 알리는 작업인데요, 이런 일들은 앞으로 납치심의 위원회나 명예회복 위원회 등 위원회가 구성이 되어 각 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을 하게 될 것이라고 이미일 이사장은 밝혔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은 이런 자료들만 가지고 납치냐, 행방불명이냐, 월북이냐를 정확하게 가리는 일이라고 하는데요,
CUT: 지난 시절 두 정부,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 때 월북했던 사람들이 이산가족 상봉에서 다 만나고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월북, 납북 행불 등의 판단이 어려워 ....
그러나 국내외에 사는 가족들의 신고를 받은 후 그 명단을 기준으로 해당 분야의 위원회에서 납북, 월북 또는 단순행방불명인지를 가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갈 길은 먼데 납북당한 남한의 가족들은 마음이 급합니다. 살아생전에 납북인사의 생사확인 만이라도 알려주어 후손으로서의 도리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간절한 염원입니다.
CUT: 아버지 성함이라도 적혀 있는 위폐를 제대로 관리해 줄 수 있는 장소에다 모셔놓고 후손들이 예의를 갖출 수 있는 자리라도 만들어 놓고 죽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여성시대 오늘은 6.25전쟁 60주년을 맞이해 전쟁 통에 납치된 납북인사들의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는 남측 가족들의 마음을 전해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