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여성시대에서는 격주로 탈북자들이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생활,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의 마음 졸이며 살았던 얘기 그리고 다시 중국을 탈출해서 한국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사연을 눈물과 한숨 그리고 웃음으로 풀어놓습니다. 최근 한국으로 들어간 탈북여성 가명의 김선 씨의 사연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김선 씨는 월남자의 가족으로 북한당국이 제외시킨 적대적 계급이었지만 김선 씨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여러 가지 장사를 하면서 돈을 벌었지만 번 돈은 모두 빼앗기고 가족을 위해서 써보지를 못했다는 북한에서의 어려운 실상을 전했습니다.
질문)
김선 씨 안녕하세요? 광산으로 쫓겨 갔다가 결혼하고 나서 남편을 따라 광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결혼은 어떻게 하셨어요.
----북한에서 결혼에서 중요한 것은 계급을 많이 따져요. 아무리 남녀가 사랑해도 계급이 다르면 결혼 못해요. 북한에서 인정하는 계급이라면 공산 계급이죠. 즉 빨갱이 계급을 가진 사람은 계급이 좋은 사람과 결혼해야 되고 아무리 둘이 사랑해도 한쪽 계급이 나쁘면 결혼을 못해요. 그래서 대부분 계급이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끼리 결혼하고 계급이 좋은 사람끼리 결혼하는 것이 북한 사회에서 전통같이 쭉 내려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질문)
아 그래요? 어떻게 변했나요?
-----북한도 어떤 면에서는 자본주의화가 되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자본주의를 겪어 보니까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잘되어있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윤리 도덕을 떠나면 안 되는데 북한에서는 자본화는 되어 있지만 윤리 도덕이 안 되어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계급이 나빠도 계급이 좋은 사람과 많이 결혼하는 추세입니다. 여자 측이나 남자 쪽이 돈이 많으면 계급이 나빠도 결혼할 수 있어요.
질문)
돈이 많으면 북한에서 말하는 소위 좋은 자리로 결혼할 수 있다는 얘기군요.
----네, 계급이 달라도 ...예를 들어서 남자 쪽이 계급이 좋고 여자 쪽이 계급이 나쁘지만 돈이 많으면 계급이 좋은 남자와 결혼을 하거든요. 이제는 북한사회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어요. 이제는 북한에서 계급에 대해 많이 의논하지 않아요.
질문)
그러면 북한 주민들도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많이 모으겠다는 인식들이 많겠네요.
-----그런 인식을 가진 지는 오래되었어요. 그리고 어떤 일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식이 꽉 차있어요. 그러기에 다 돈을 벌려고 하고 ‘뱃속에서 애가 태어나자마자 장사를 하고 돈을 부른다’는 그런 말까지 하고 있어요.
질문)
그런데요 사람들이 장사해도 국가에 다 빼앗기고 장사도 못하게 한다는 얘기를 하셨는데요, 이런 억압을 오랫동안 당하면 당국에 대한 불만이나 분노가 있을 텐데요,
-----있죠. 그런데 이제는 분노보다도 이 사회는 안 된다 희망이 없다, 그리고 속아서 살고 있다는 것, 정치적으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다 인식하고 있어요. 그러나 함부로 반항을 못하는 거에요.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귀신도 모르게 잡혀가 어디로 가서 죽는지도 모르고 온 가족이 피해를 보니까 함부로 반항을 못해요. 그리고 다 정보화 체제로 옆집과 옆집이 서로 감시하고 친구와 친구끼리 감시하는 체계를 만들어 한 동리 사람 세 명이 모여 수다를 떨면 그중 두 사람은 스파이, 간첩이라고 라고 얘기해요. 그러기 때문에 웬만하게 가까운 친구나 한 가족이 아니고는 정치적인 불만, 사회적인 불만, 김정일 장군님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불만을 했다가는 귀신도 모르게 잡혀가서 소식도 모르고 시체도 안남을 정도니까 반항을 못하죠. 그러나 다 불만이 있고 이제는 이것이 아니다 우리가 속아서 산다.... 정치적으로 어떻다 하더라도 믿는 사람이 없어요. 사람들이 뒤로 돌아 콧방귀도 안 뀌어요.
질문)
하지만 국경연선 지역에서 살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소식을 들으셨지만 평양이나 내부지방에 사는 주민들은 어때요?
-----이제는 거의 다 알고 있어요. 북한도 옛날에는 배급을 주고 장사를 못하게 했는데 이제는 장사하기 때문에 다 왕래를 하잖아요. 전화도 연결하고 그러기 때문에 평양사람이 연선 지대 주민들이 어떻게 살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평양에서는 무슨 일이 있고 장사하는 가격은 얼마인지 다 알기 때문에 주민들이 거의 알게 되어 있습니다.
질문)
탈출할 임시, 그러니까 2088년도 그때도 식량난이 굉장히 심했죠?
----네, 식량난이 극심했어요. 식량난은 여전히 풀릴 때가 없었어요.
질문)
국경연선에 사실 때 그리고 탈출해서 중국에서 서너 달 체류할 때 해외 방송을 들으셨나요?
-----중국에 와서는 한국으로 오는 길이라 한국방송 텔레비전을 많이 봤어요. 나는 북한에서 살다 나이 50대에야 세상이 이런 것인가 하고 깨달았어요. 중국에서 텔레비전 뉴스를 보니 북한에 있는 사람들은 김정일 부인이 누구며 자식들이 몇인지도 몰라요. 중국에 나와서 뉴스 보고 알았어요. 그리고 중국에 와서야 세상이 이렇구나, 북한 사람들이 이렇게 속고 사는구나. 하는 것을 알았어요.
질문)
중국에 와서야 계속 속아서 살았구나 하는 것을 느꼈군요. 중국으로 탈출할 때 잡힐 뻔 했다든지 하는 위험하고 어려운 일은 없었는지요?
---- 탈출하다 잡혀서 6달 동안 감옥살이를 했어요.
질문)
감옥에서 고문도 받으셨겠네요.
-----물론이죠. 제가 감옥에서 나올 때 일가친척과 자녀가 중국에 있었기 때문에 항상 감시를 받았죠. 그러기 때문에 다시 탈출할 때는 정말 힘들게 탈출했어요. 옷을 화려하게 차려입고 일부러 친척집으로 간다며 큰 소리로 소문을 내고 산을 넘고 강을 지나서 야밤에 두만강을 넘어 탈출했어요. 그래도 다행히 탈출해 성공해서 중국에 와서 다섯 달 동안 감금되어 있었어요. 브로커, 중계인들 속에서 중국브로커들 속이 잡혀 있다가 배타고 바로 한국으로 들어갔어요.
질문)
그런데 왜 다섯 달 동안 브로커에 감금당했었나요?
----중국 단둥에서 배를 탔는데 단동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뱃길, 브로커들이 돈을 주고 탈북자들을 태우고 가짜 여권도 만들고 그런데 앞서 나가던 탈북자들이 발각돼서 당분가 중지해야 한다고 해서 다섯 달 동안 중단했어요. 그러는 바람에 다섯 달 후에 뱃길이 열려 그때 한국으로 가다 보니 중국브로커들 속에서 체류하고 있었어요.
질문)
그러면 그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겠어요.
----네, 중국 브로커에게 천만 원 (미화 8,600달러) 주었어요.
질문)
돈이 있으면 중국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빨리 한국으로 갈 수 있네요.
---- 그럼요, 제가 북한에서 탈출해서 온 다음 날로 바로 배를 타고 한국으로 입국하려고 했어요.
질문)
돈 있으면 그런 빠른 길이 있네요.
---솔직히 돈만 있으면 북한에서 남한으로 들어가는 것을 하나도 어려움 없이 들어올 수 있어요. 지금은 돈 있으면 북한에서 많이 빠져나와요.
질문)
돈이 없으니까 나가고 싶어도 탈출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겠어요. 그러면 지금도 계속해서 탈출하는 사람들이 많은가요?
----네, 많이 탈출해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앞으로 북한 탈출이 늘어나면 늘지 줄어들 것 같지 않아요. 물론 그만큼 탄압이 심하고 경비는 강화되겠지만, 그래도 탈출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 잡히는 사람도 많고 북송하는 사람도 많겠죠. 그래도 하나같이 탈출해야 살아 갈 수 있다는 개념이 들어서 거의 중간층 이상 직위를 가진 사람 중 머리가 깨인 사람들은 빨리 탈출하려고 시도하고 있죠. 그러나 지금 소식을 들으면 경비를 많이 강화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북한에서는 더 조이거든요 통치를 더 강압적으로 하죠.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 틈을 노려서라도 탈출해 올 겁니다. 보면 한국에 온 사람들이 자기 가족을 많이 탈출시켜서 데려오거든요.
질문)
한국에서 탈출비용만 마련하면 된다고 그래요.
----그렇죠. 비용만 마련되면 다 데려오려고 합니다.
질문)
이제 한국에서 정착하시면서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세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언어가 다르고 전혀 다른 사회잖아요 제가 북한에서 인간이 겪어야 하는 온갖 어려움을 다 겪으면서 항상 의지를 버리지 않았어요. 언젠가는 어떻게 해서라도 인간답게 살 것이라는 신념이 확고했기 때문에 북한에서 별의별 어려움이 처했을 때도 죽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이겨냈고 그렇게 살았기에 한국에 와서도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두렵지 않아요. 어떻게 내가 열심히 살면 빨리 정착해서 잘 살 수 있겠다는 신심이 생겨요 너무나 다른 사회에 와서 힘들다, 어렵다, 내가 괜히 왔다, 이런 후회는 전혀 하지 않아요. 세상에 이런 좋은 곳도 있었나, 이런 세상을 모르고 북한에서 속고 짓밟히고 탄압받는 우리 동포들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오고 형제들을 생각하면 밥이 넘어가지 않고 눈물이 나요.
질문)
그러시겠어요. 지금 일을 하시나요?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서 일 하고 싶어요. 질문) 네,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시는 탈북자들이 많아요. 이제 열심히 노력하셔서 원하시는 자격증 따서 하고 싶은 꿈을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음악:
여성기대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 탈북여성 김선 씨의 사연이었습니다. RFA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