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얼마 전 한국의 한양대학교 사회학과 이화진 씨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북한에서는 많은 여성이 거의 28살이 되어야 혼인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혼전임신의 경우 낙태가 엄격하게 금지돼 많은 여성들이 불법 낙태를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결혼하더라도 여성은 남성중심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가정폭력을 많이 당하지만, 이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여건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북송을 피해 인신매매 형태의 결혼을 하고 하게 된다며 탈북여성이 북한과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도 결혼 생활에서 겪는 인권침해 실상을 전했습니다.

2000년 이후 북한을 탈출한 30-40대 기혼여성 10여 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통해 논문을 쓴 내용 중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이 있는데요, 탈북여성들은 탈출과 저항을 통해 인간으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지적했는데요, 여성시대 오늘은 이제야 인간으로 여성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찾은 한 탈북여성 가정의 얘기를 전해 드립니다.
결혼을 앞두고 북한을 탈출한 가명의 이 성숙 씨는 중국에서 팔렸습니다. 중국에서 무려 10여 년의 세월에서 자신은 여자가 아니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이 성숙 : 북에서 중국에까지 팔려왔거든요. 그때 중국에서 10년 고생하면서 정말 인간이 인간답지 않게 살았어요. 북한여자라고 여기저기 식당에서 받아 주지도 않았고 하다 제가 애를 낳았어요. 북한 애인데 중국에서 낳았더니 애를 보호해 줄 사람이 없어 애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 애를 지키려고 별 고생을 다 했어요. 조선족 교포 한테 팔려 그 교포한데 갖은 모욕과 치욕을 다 당하면서 그곳에 있으려고 애를 썼어요.
이 씨는 중국에서 탈북 여성들이 일할 곳은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 그것도 아주 싼 값의 임금을 받으며 일했습니다. 오직 딸을 지키기 위해서... 북한에 두고 온 병든 어머니마저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이성숙: 그곳에서 수모를 당하면서 일했어요. 식당에서 일하면서 악착같이 벌어 오직 애만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그런데 그때 북한에 계신 엄마가 매우 아팠어요. 심장병으로 하지만 엄마를 생각할 처지가 못 되었죠.
이런 생활에 지치고 찌든 이 여인은 그동안 많은 탈북자가 제삼국을 통해 남한으로 입국한다는 사실을 중국 생활 10년 만에 알았다는데요,
이성숙: 그 중국 교포 집도 아주 곤란한 집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먹여 살리면서 살다 2008년 7월 한국에서 우리 북한 사람들을 받아 준다는 통보를 들었어요. 그때 제가 결심하고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브로커, 중개인에게 주면서 3국을 통해서 한국까지 왔어요.
중국에서 중개인을 통해 탈북자들이 가장 많이 경유하는 태국에서 이성숙 씨는 다시 한 번 놀랍니다. 당시 태국 이민국 수용소에는 한국인들이 제일 많을 때였죠.
태국에 와서 보니 우리 북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태국 난민수용소에 들어가니 북한 사람들이 몇이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것으로 알았는데 한 400명이 됐어요. 그때 제가 거기서 놀랐어요. 한국가기 위해 이렇게 몰려서 살 길을 찾아 떠나는 구나.
성격이 시원시원한 이성숙 씨는 태국의 수용소 안에서도 함께 남한행을 기다리는 탈북여성의 아픔을 같이 나누며 따뜻하게 돌보았습니다.
이성숙: 태국 감옥에서 부반장 질 하면서감옥 안에서 무참한 일도 많고 같은 동족끼리 뜯고 때리는 것도 많이 목격했고 그래서 나이 어린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을 많이 챙겨주고 위로도 해주면서 많이 챙겼어요.
이런 과정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간 이성숙 씨는 중국에서의 인신매매 형태의 가정생활을 생각하면 도저히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이성숙: 중국에서 하도 고생을 많이 해서 한국에서 시집을 갈 생각을 못했어요. 꿈에도 못했어요. 하나원 교육을 받고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나와 회사에 취직했어요.
사람의 운명은 정말 알 수 없다는 이성숙 씨, 남한에 들어간 지 1년 조금 지나 한국 남성과 결혼합니다. 그러나 남과 북이 갈라놓은 50여 년이 넘은 분단의 세월 속에서 너무 다른 남편과 꾸린 새 가정, 직장, 둘 다 감당하기도 어려운데 중국에 두고 온 어린 딸 때문에 더욱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성숙 씨의 이런 마음고생을 안 남편은 중국에 두고 온 아이를 데려오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성숙: 제가 적응을 하지 못했으니까 결혼생활 근 3년이 되는데 한 1년 반은 저 때문에 남편이 스트레스도 받고 고생하자 갈라지자고 결심도 했고 저도 그러다 서로 이해를 하면서 내가 이해하는 면보다 우리 남편이 이해 잘해주고 내가 이러면 안 되겠다 자존심을 버려야겠다...
이성숙 씨의 남편은 이런 아내를 이해하고 다독이지만 유난히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의심할 때는 어떤 말로도 이해를 시키지 못해 그때는 한발 물러나 기다렸다고 하는데요, 이것이 삶의 지혜인 것 같아요.
이성숙: 사실상 경계를 많이 해요. 이 사람뿐이 아니고 이 사람은 많이 나아졌는데 사람을 왜 그렇게 경계하는지 모르겠어요.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서는 탈북자들이 들어와 일했는데 탈북자들이 들어올 때마다 남편이 앞장서서 이들의 정착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다 보니 탈북자들의 사회정착을 돕는 하나원 교육에 바로 잡아야 할 점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불필요한 교육으로 오히려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거죠.
남편: 하나원 교육이 이 현실에 맞게 해주어야 하는데 이 사람을 깨기 위해 싸움도 많이 하면서 내가 부탁했어요. 두 달만 보험회사에서 교육을 받아 달라 그런데 보험회사 한 달 들어가더니 사람이 바뀌는 거예요.
딸을 중국에서 데려와 학교에 보내니 적응 못 하는 것은 물론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해서 어려웠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를 들어보니,
남편: 하나원에서의 교육이 한국 학교 가면 왕따 시키고 따돌림당한다 이런 쓸데없는 교육은 안 시켜도 된다는 거죠. 우리 딸 얘기도 하나원에서 그러는데 학교 가기가 무섭다는 거예요.
그 힘든 고비를 넘기고 나니 지금은 가정이 그렇게 편안할 수 없다는데요, 노래 가사 말처럼 아무리 즐거운 곳에서 나를 오라고 해도 내가 쉴 곳은 오직 가정이라는 울타리뿐인 것을 이제는 압니다.
남편: 지금은 마음을 많이 열고 받아드리니까 서로가 참 편해요. 부부란 것이 가장 가까운 친구인데 서로 못 믿고 의심하고 살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점이 없어지니까 서로 만족하고 삽니다. 딸도 학교생활 잘하고 이번에 학교회장에 당선되고 너무 똑똑하고 예뻐요.
이성숙 씨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남편에게 압박감을 많이 준 것에 대해 아직도 미안하고 또 한편으로 그 고마움을 다 말로 할 수 없다고 하네요.
자신의 행복이 이렇게 더 절실한 것은 탈북여성들이 새로운 각오와 꿈을 가지고 결혼하지만, 많은 사람이 몇 년을 못 넘기고 만다는 거죠.
이성숙: 결혼해서 3-4년 살던 사람 중에도 지금 이혼을 하고 있데요 한국 사람과 살던 탈북여성들이 서로 이해를 못 해 그 어려운 고비를 넘지 못해 갈라진다는 겁니다.
이 씨 부부도 최후 갈라질 상황까지 갔지만, 남편의 정성과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주 고마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며 다른 탈북자들도 부부가 의견이 엇갈려 싸우더라도 다시 화해 할 기회를 만들라고 권합니다.
남편: 이 사람은 정말 잘해주어요. 중국에서 10년 넘게 고생하며 부모도 찾지 못하고 형제들도 살아 있는 지 조차 모르고 제가 작년에 애를 데려오면서 남편이 브로커들을 통해서 북한 거주지를 알아냈습니다. 그래 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시고 오빠도 살아 계시다고 연락 주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단지 지금 이 가정의 걱정이 있다면 이성숙 씨가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북한 가족들과의 전화로 소식을 들을 수 있어 그나마 얼마나 다행이냐며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이들 부부 앞날의 계획은 일반 어느 가정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남편: 딸 하나 있는 것 잘 키우고 돈 열심히 벌어서 후원하고 열심히 적응을 잘해주어서 고맙고 앞으로 더 좋은 날 행복한 날 만들어가고 싶어요.
이성숙: 저는 이 사람을 항상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정말 고맙고 죽는 날까지 하늘나라에 가서도 두 사람 손을 꼭 잡고 항상 사랑하면서 살고 싶어요. 요즘에는 살아도 사는 보람이 나고...
이성숙 씨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특히 여성의 권리가 막연하기만 했는데 한국에서 살아보니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고 자신합니다. 특히 여성으로서 행복할 권리, 이런 권리를 찾은 만큼 가정의 주부로서 사회의 일원, 또 가족의 일원으로 통일이 될 때까지 북한의 가족까지 돌보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