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세탁기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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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한국에 살면서 북한에 있을 때는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내 자신이 참 한심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풍요속에 감사함을 모른다고 해야 하나 싶을 정도이군요. 일인즉, 어느날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작동을 시키는데 세탁기가 돌아가지 않네요. 고장이라고 부르는 에러-LE라는 글자가 세탁기 전광판에 뜹니다.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물이 세탁기에 공급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당황스러웠습니다. 몇십년만에 찾아왔다는 한파로 집안으로 늘어진 상수도가 얼었나 싶더군요. 하지만 그 정도로 집안이 춥지도 않았는데 이거 일이 생겼다 싶을 정도입니다.

회사에 출근을 한 남편한테 전화를 하니 수도관에 뜨거운 물을 끼얹으라고 합니다. 뜨거운 물을 끼얹는다는 게 말이 쉽지 정작 그리 하기에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지요.

그러니 남편이 휴대폰으로 여기저기 검색하고 원인을 찾아서 필요한 부속품을 구매를 했습니다. 우리집은 엔간한 것은 집에서 고칠 수 있을 정도로 남편 별명이 맥가이버입니다.

맥가이버라는 뜻은 수리공 비슷한 정도로 손에 무엇이든지 잡히면 척척 고쳐내고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남편이 있으니 집안일에 웬만해서는 당황하지 않는데 세탁기는 하루에 한번씩 벗어 놓고, 씻고 내놓는 세수수건을 빨아야 되니 급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틀만에 도착한 부속품으로 수리를 하려고 세탁기를 끄집어내서 뒷판을 열어보니 아뿔사, 부속품은 우리 세탁기 모델이 아니고 그 전의 구형입니다. 할 수 없이 세탁기를 산 전자회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이미 무료 수리 보상기간인 5년이 지나서 수리비를 내야했습니다.

녹취 : 네, 그거 결재해주시면 되구예, 보니깐 메인기판이 고장 나서 수리해가지고 테스트하니까 잘 되고 있습니다. 요 부품이 고장 나면 일년동안 무상으로 수리해 드리고예

다행이 이틀 만에 사람을 보내서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4인 가족이 빨래를 매일 내놓으면 하루에 한번 꼴로 꼭 빨래를 해야 하는데 그 많은 것을 손으로 빨수도 없고 그래서 며칠 묵은 빨래를 한짐 해들고 남편과 함께 동네에 있는 세탁소에 가서 빨래를 해올 수밖에 없었지요.

솔직히 일주일에 두번씩 소독을 한다고 하긴 해도 앞에 사람이 어떤 빨래감을 가져와서 세탁했는지 믿을 수도 없는 사정에 내 속옷을 남들이 옷을 빨았던 세탁기에 넣는다는 건 주부로서는 결코 탐탁한 일이 아니랍니다. 이런건 예민하다고 하기보다는 그만큼 이제는 자신들의 생활이 지극히 개인 중심적으로 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지요. 실제로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집이나 양탄자 같은 것을 가져와서 빠는 사람도 있긴 하구요.

우리가 빨래방에 간 날은 어느 할머니가 오셨는데 커다란 이불을 가득 가지고 오셨어요. 주말이라 손자손녀들이 가득 왔다 가면서 덮고 어질러 놓은 이불이며 옷가지들을 집에서 빨기엔 세탁기가 작아서 빨래방에 왔다고 하시면서 빨래방 세탁기는 커서 왠간한 큰 이불도 다 들어간다고 좋아하시더군요. 우리도 침대위에 까는 요도 집에서 빨기엔 커서 가끔씩 빨래방을 이용 합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북한에서 빨래를 하던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겨울에 집에서 우리가 입던 동내의를 삶아서 큰 다라이에 이고 강가에 나가서 바위 하나를 잡아 걸터앉아서 얼어붙은 얼음을 빨래방치로 툭툭 내려쳐서는 커다란 구멍을 내고 언손을 불어가면서 빨래를 하셨지요.

나는 늘 그런 어머니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는데 손을 불어가며 빨래를 하는 엄마와는 달리 철부지 나는 꽁꽁 얼어붙은 얼음 위를 미끄럼을 타느라 신났지요. 그러다가 얼음이 깨져서 웅덩이에 빠지면서 울고 울음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구하러 달려온 적도 있구요. 어렸을 때 빠져본 물이 엄청 차고 추웠는데 그렇게 찬물에 어떻게 손을 넣고 빨래를 빠셨을까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참 서글퍼집니다.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때의 그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두만강 저 너머로는 아직도 북한 아낙네들이 물을 이고 가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어려서 물을 길어서 식수로도 사용하고, 빨래도 하고, 목욕을 하고 살았어야 되었던 나에게는 그들의 모습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인 것에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한겨울에 물을 길어야 하는 그 힘듦을 너무나도 잘 알지요.

체통보다 더 큰 물동이를 이고 다니면 물이 중심을 못 맞추어 앞뒤로 철렁거려서 발뒤꿈치까지 다 젖고 물동이가 힘들어서 지게를 만들어서 양쪽에 바게쯔 하나씩 물을 담아서 들고 중심을 맞추면 물이 또 철렁거리면서 바짓가랑이가 다 젖어 납니다. 그런 옷을 입고 학교를 가면 꽛꽛한 바짓가랑이가 다리에 척척 걸치고 선뜩선뜩 찬 기운이 온몸에 전달을 합니다. 지금도 그때의 생각을 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전율이 돕니다.

그때의 서글픈 삶이 있었기에 세탁기 하나가 고장이 났다고 짜증이 났던 내가 후회스럽습니다. 고생스럽던 그때의 삶을 생각을 하면 절대로 불편하다고 투정을 부릴 수가 없는데 말이죠. 그렇게 오늘도 세탁기 하나에도 감사함을 느끼고 불만족을 되돌아보면서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는 그런 날이 되어가는 듯합니다. 어젯날의 내가 있었기에 오늘의 풍요로움을 알고 더더욱 느끼는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