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번개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보통 번개는 하늘에서 치는 천둥번개를 의미하죠. 그리고 우리 속담에 “번개 불에 콩 볶아 먹는다.”는 말도 있구요.
한국에서 번개라는 단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쓰여지기도 합니다. 가령 같은 뜻을 가지거나 같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긴급히 만나게 되는 것을 번개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오늘 나랑 번개 할 사람”, 오늘 “번개 모임할까?” 등으로 사용되지요. 이런 경우에는 일정이 잡힌 사람은 빠져도 이해하고 괜찮은 모임들입니다.
이렇게 번개 생각이 문뜩 난 것은 오늘 뜻하지 않게 고향친구들과의 번개모임이 잡혀서입니다. 일인 즉, 어제 저녁에 이것저것 구매할 것들이 있어서 가까이 있는 큰 상점으로 갔습니다. 보통 오후 늦은 시간이나 저녁에 상점에 가면 좋은 물품들을 가격을 낮춰서 판매하는 일이 많기에 그런 시간대를 정해서 물건 사러 나가지요.
한국은 보통 재래시장보다는 마트라고 부르는 상점들에 물건이 더 다양하기에 일반적으로 마트 이용을 많이 하고 또 늦은 시간까지 불이 환하고 좋은 환경에서 파는 물품들을 선호합니다. 특히 우리처럼 식구가 많은 집은 그런데서 다양한 식품을 사야 하기에 정가로 파는 물품보다는 가격을 낮춰주는 세일 때 사면 돈도 아껴서 좋은 식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엊저녁에 마트에 가서 물건을 모두 사서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고향 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녹취 : 아고 , 우리 언니 전화를 인츰 받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 맑아서 내 기분도 한층 좋아집니다.
녹취 : 언닌 한데 지금 놀러갈까 생각 중인데 , 다음주부터 일을 해야 돼…
이번에 일하던 데를 그만두고 새 일자리를 찾아가는데 일주일정도 시간이 있다고 언니네 집집으로 오겠다고 합니다. 동생이 사는 곳은 경기도이고 내가 사는 곳은 경상남도 부산 가까이다보니 자기 차로 오는데만도 시간이 3시간 반 가까이 됩니다.
북한에서 농촌동원을 나왔을 때 학생들을 데리고 다니다보면 늘 말없이 조용하던 아이가 한명 있어서 일이 좀 뒤쳐지면 가만히 가서 일을 도와주고 했는데 그때 조용하던 학생이 한국에서 이렇게 만나서 반가운 동생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경기도에 사는 동생이 경상남도까지 온다고 하니 대구에 사는 친구도 온다고 합니다. 대구에서 내가 사는 곳까지는 넉넉잡아 한시간 반도 채 안되는 거리이니 당연히 가장 친한 우리가 모이지 않으면 안되겠죠.
대구사는 친구는 자기가 운전을 해서 와도 되는데 남편이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운전대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먼 거리를 직접 데려다주고 자기는 돌아간다고 하네요. 늘 그 먼 거리에서 김치를 담궈서는 후딱 가져다주고 하는 사람들이라서 당연히 그러려니 했는데 친구의 말이 더 재미있습니다.
녹취 : 먼 , 세상에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어디서 보겠니 ? 차를 무서워 차를 못준단다 .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친구가 사실은 북한에서부터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북한에서 살 때 이 친구 언니하고 둘이 길에서 만나면 내 머리끄뎅이를 잡아놔서 서로 앙숙이었는데 성인이 되고 만나고보니 그 또한 웃을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대구 사는 친구는 내가 간 기증을 하는 수술을 하고 마취약에 졸려서 눈을 뜨지 못하니 북한식으로 “이 간나 눈 안뜨면 머리끄뎅이 확 그어놓는다.” 해서 비몽사몽간에도 빵 하고 터져서 웃고 보니 그때부터 정신차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동생과 친구가 먼 거리를 달려서 온다고 합니다. 그들을 기다리면서 그들과의 지난 추억들을 생각해보니 감회가 참으로 새롭습니다. 괜히 들뜬 마음으로 집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무엇을 해줄까 고민을 합니다. 오늘은 거실 넓은 곳에 자리를 깔고 여자들이 누워서 밤을 새워가면서 수다를 떨다보면 새벽을 맞이할 듯 합니다. 늘 해마다 한번씩 만나고 또 가끔가다 전화기를 붙들고 수다를 떨 수 있는데도 만날수록 기분 좋은 것은 한 고향 친구들이라는 반가운 공통점이 있어서이겠죠?
그러면서 생각이 드는 것이 내가 만약 지금 한국이 아닌 북한에서 살면 손님이 오면 짜증부터 났을 터인데 한국 생활이니 먹을 것이 풍족하고 잘 수 있는 곳이 넉넉하고보니 그런 고민은 아예 하지도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아마도 오늘 저녁은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소리 지르고 놀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도 시간이 모자라서 밤을 새워가면서 수다를 떨 수 있고 그래도 시간이 부족한 것은 고향을 그리는 우리들 마음이 간절해서이겠죠.
서로의 부모형제 이야기부터 동네 사람들 이야기까지 하느라면 늘 가슴 깊은 곳에 감추고 살아가는 그리움의 한토막들이 펼쳐집니다. 나에게 고향이라는 단어가 생각나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들이 가까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옵니다. 반가운 그들을 맞이하러 옷 입고 마중 나가야되겠네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