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생일선물

김태희-탈북자
2023.01.31
[여성시대] 생일선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어드벤처 가든스테이지에서 열린 '30주년 생일 파티'에서 로티, 로리와 뽀로로, 핑크퐁, 번개맨 등 인기 캐릭터들이 아이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요즘 뉴스마다 한파로 인해 제일 추운 날씨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고향인 북한은 이 추위를 어떻게 이겨낼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이렇게 추운데다가 보일러 기름 가격이 올라가서 모두 아우성인데 저희 집은 철모르는 12살 손녀가 자기 시대의 흐름은 다 따라 하려고 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버린 저희들 주머니가 탈탈 털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생일을 쇠는데 먼 주머니가 털려라고 하겠지만 한국문화는 어른 생일보다는 아이들 생일을 더 잘 쇠주지 않나 싶습니다. 예전에 북한에서 아버지 생신 날이면 동네 잔치처럼 차리곤 했고 중국에 와서 생활을 할 때에도 어른 생일을 크게 쇠는 것을 봤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르신들은 60세에 환갑잔치를 쇠지 않으려고 하네요. 한국에서의 60세는 이제 청춘이라고들 합니다. 70세를 고희라고 하는데 고희연도 자녀들이 억지로 차려드리면 마지못해 식구들하고 함께 식사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어르신들조차 잘 쇠려고 하지 않는 생일잔치를 한국의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파티를 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손녀딸을 위해 단설기라고 부르는 생일케익을 불고 간단하게 과자로 아이들 선물도 준비를 해주었답니다.

 

생일축하 노래: 생일축하 합니다. 생일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민경이 생일축하 합니다.

 

자기 나이만큼 초를 꽂아서 불을 붙이고 친구들과 함께 생일축하 노래도 부르면서 촛불을 끄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차려주었던 생일상이 떠오릅니다.

 

탈북하던 해 어쩌면 너와의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하시면서 집안에 있던 전 재산인 도토리 몇 킬로를 가지고 나가셔서 밀가루를 구해다가 직접 빵을 만드시고, 이밥을 지어주시고 청어 한마리를 지져주시던 자그마한 밥상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손녀딸은 자기 생일 날도 아닌데 미리 앞당겨서 파티를 한다고 하는군요. 자기 생일날은 평일이라 방학인데도 모두 학원을 가야 하니 친구들이 오지 못한다고 해서 주말을 찾아서 미리 생일파티를 했답니다. 그래놓고는 자기 생일날에도 미역국을 끓여달라는 주문도 잊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생일 선물, 삼촌도 선물을 준비해주니 입이 그야말로 귀에 걸렸네요. 요즘 아이들은 우리가 자랄 때와 달리 부모의 재정이 얼마만큼인지를 고려하지 않고 친구들이 학원을 다니면 같이 보내주기를 원하고 생일파티도 친구들에게 짝지지 않게 해주기를 원하더라고요.

 

그래서 좀 과하지 않나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학교생활에서 아이의 기를 죽이고 싶지 않아서 식당에 데려가서 밥도 사먹이고 롤러장에서 신나게 놀수 있게도 해주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부모님들이 다 같은 마음으로 키웠을 터이지만 어린 마음에 늘 불만을 가지고 서운함만을 가지고 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가져봅니다. 세상 어느 어머니이던지 마음은 다 같을 것이니깐요.

 

오늘 저녁을 먹는데 손녀딸이 슬쩍 물어봅니다. 할머니, 할머니는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이예요?그래서 제가 “할머니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어쩔건데?하고 되물어보니

“할머니 생신에 할머니가 좋아하는 선물을 해드리고 싶어서요.라고 하네요.

 

“너 돈 없자나” 하니 “설에 받은 용돈도 있고 또 지금부터 집안일이랑 해서 돈을 모아서 사드리려고 해요” 하는데 또 우리시절보다 많이 이기적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이런 면에서는 또 우리 시절보다 많이 성숙하고 똑똑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아들을 키우면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말을 손녀딸에게서 들어보니 한국에서 왜 “딸 하나가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말을 했을지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물론 그래서 생긴 말은 아니지요.

 

하긴 가정들마다 부모를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도 딸들이지요. 예전과 달리 가정들마다에서 여성의 지위가 올라가면서 여자들이 시가보다는 친청 쪽에 정을 더 들이는 것도 사실인듯 합니다. 장모사랑은 사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딸을 위하는 엄마들이 사위를 귀하게 여기는 뜻도 있겠지요.

 

가까이에 사는 언니도 북한에서부터 어머니를 모셔왔는데 이제는 80이 넘은 노모가 자녀들이 보고싶다고 하면 일하고 나서 한밤중이라도 어머니를 뵈러 30분이 넘는 길을 운전해서 다녀옵니다. 한번씩 또 그 노모가 버스를 타고 딸 얼굴을 보고싶다고 와서는 주무시고 일찍 새벽차를 타고 집을 가시네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 저는 부럽기가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언니는 80세를 살아오면서 생겨버린 어머니의 고집에 한숨을 쉽니다. 북한에서 살아오면서도 어느덧 생겨버린 세대갈등에 탈북민 자녀와 어머니들 사이에도 깊은 금을 그어놓는 듯 합니다. 그래도 언니는 엄마가 딸 보고 싶다면 언제까지 엄마를 뵐지 모르니 열심히 찾아다닙니다. 딸 없이 아들만 있는 저에게는 부럽기만 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손녀딸이 그런 할머니를 위로하듯이 생일 선물을 해준다고 하는군요.

 

제가 즐겨 하는 인터넷사이트에서도 한 분의 하소연이 올라왔습니다. 딸이 엄마에게는 보석 팔찌를 선물했는데 아빠인 자신에게는 식사 한끼가 전부라는 글을 보고 웃었던 기억이 있었네요. 어쩌면 아버지에 마땅하게 필요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겠지만 당사자인 아버지는 많이 서운하셨던가봐요. 그런데 어찌할까요, 여자이기에 더욱이 여자의 마음을 더 잘 알기에 엄마의 선물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도 탈북민 우리에게는 생일 선물을 준비해도 안을 수도, 만날 수도 없는 그래서 전할 수 없는 부모님이라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였습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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