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간 있었던 손녀딸의 긴 겨울방학이 어느덧 며칠 안남았고 이제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교복을 맞추어야 합니다. 딸과 아들 모두 중학교에서는 교복을 입었던 지라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엄마와 삼촌의 후배로 들어가는 학교 교복이 새로 바뀌었다고 해서 궁금했습니다.
한국은 북한처럼 교복이 전국적으로 동일한 것이 아니고 각 학교에 따라 교복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교복이 멋진 학교를 많이 부러워합니다. 우리가 간 교복점에서는 여러 학교들의 교복을 주문받느라 아이들로 북적였습니다. 순번을 지켜서 이름과 학교명을 적고 기다리는데 모두 부모님들이 함께 왔습니다.
졸업을 할때까지 3년 동안 입어야 하는 것이 교복인데 아이들은 딱 맞게 그리고 몸에 착 붙게 원하는 대로 교복을 맞추면 한창 크는 아이들이 다음해에는 교복을 입을 수가 없기에 어른들이 와서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중학교에 올라가는 아이들을 보니 우리 애가 제일 덩치 가 큰 것 같습니다. 어쨌던 여자애, 남자애 모두 북적이는 속에서 간신히 치수를 재서 옷을 주문을 했습니다. 한국은 교복을 맞추는 것이 무료가 아닙니다. 주문을 했으니 이제 옷이 제작되어 나오면 찾으러 가서 돈을 지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업에는 북한처럼 체육시간이 있는데 체육복도 돈을 내고 따로 구매를 해야 합니다.
한국은 옷을 구매할 때 치수를 사이즈라고 하는데 입어보고 자기 몸에 맞는 사이즈별로 구매를 하면 됩니다. 손녀딸의 교복을 맞추러 가서 이 옷을 입어보고 저 옷도 입어보고 하니 어릴적에 교복을 선물로 받던 생각도 났지요. 처음으로 교복을 선물로 준 것이 내가 초등학교 때였는데 그때는 무료로 선물을 준다고 감사해서 얼마나 기뻐서 뛰었던지요.
신발까지 맞추어 주던 그때의 선물은 질도 좋고 북한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일론 천으로 되어서 모두가 좋아했지요. 단체로 색깔만 바꾸어서 주었던 리본은 어른들도 욕심을 낼 만큼 귀한 리본이자 머리수건, 목수건이 되기도 했구요.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교복 옷의 질도 떨어지고, 무상으로 주던 교복을 돈을 냈어야만 되었지만 그래도 몇년에 한번씩 받는 그 교복이 아니면 새옷을 입어볼 기회도 잘 없었던 나의 어릴적에는 선물 받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때 내 나이대의 손녀가 교복을 맞추고는 왜 빨리 안오냐고 계속 재촉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초등학교는 교복을 따로 안입고 집에서 사주는 옷을 입습니다. 그러니 교복에 대한 기대가 엄청난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예쁘게 꾸며서 보내도 되고, 머리도 염색을 해도 선생님이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귀금속 등의 장신구를 한다던가 화장을 하는 경우에는 못하게 하지요.
손녀딸이 초등학생일 때에는 나 역시 아침마다 머리를 예쁘게 묶어서 알록달록 고무줄을 가지고 치장을 해서 학교에 보냈습니다. 이제는 컷다고 머리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네요. 한국은 북한과 또 다른 점이 머리를 길러도 되고, 잘라도 됩니다.
예전에는 중학생은 어깨 아래로 머리를 기르지 못한다는 등의 제약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머리를 허리까지 길러도 문제가 안되고 또 기른 머리를 풀어헤쳐도 북한처럼 규찰대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이 없습니다. 남한에서는 이것을 두발자율화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에는 아이들을 더 예쁘게 입히고, 더 신경을 쓰느라 돈이 좀 들지만 중학교는 초등학교만큼은 신경을 덜써도 될 듯싶네요. 물론 아이들이 어떤 제품의 옷을 선호하는 가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우리 집은 아이들을 비싼 옷을 사서 입히는 것만큼은 많이 자제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다행인 점은 이번 교복은 다리미질을 딱히 안해도 되겠다는 장점이 있네요. 딸과 아들이 학교를 다닐 때에는 블라우스로 되어있어서 늘 빨아서 다리미질을 했어야만 했고, 아들 때에는 일하느라 미처 다리미질을 못해서 두벌을 사서는 늘 세탁소에 맡기면 다음날에는 교복을 세탁하고 곱게 다리미질까지 맟쳐서 찾아가라고 핸드폰으로 문자연락이 오곤 했답니다. 그런데 이번 손녀딸의 교복을 보고 제일 마음에 들었던 점을 찾으면서 북한에서 교복을 다리던 생각도 났지요.
전기다리미를 가지고 교복을 다리면 번들번들하게 다리미 자리가 나서 교복치마위에 젖은 가제천을 올리고 다리미질을 하고 또 정전이 되어서 다리미질을 못하면 담요를 펼치고 그 위에 젖은 교복치마를 놓고 하나하나 주름을 잡아서 곱게 해서 담요로 한벌 더 덮고 그 위에 요를 깔고 누워 잤지요.
교복을 다린다고 깔고 자면 자는 동안 등으로 올라오는 습한 기운이 늘 싫었답니다. 그래도 다음 날 교복이 주름이 잡히지 않으면 창피할까봐 늘 다리던 교복치마, 주름은 왜 그리도 많았던지 지금도 언니들하고 이야기 하다보면 그때 교복을 다려입던 추억은 누구나 다 외우는 추억거리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힘들었지만 그 당시는 배고픈 고생은 안했기에 지금도 교복을 다려입던 그 시절을 추억을 해보면 슬픈 생각이 아닌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습니다. 여기에서 무엇이든 부러운 것 없고, 아쉬운 것 없이 살고 있는 한국의 아이들은 우리들처럼 그런 소중한 추억거리를 가지고 있을까?
중학교 입학을 앞둔 손녀딸은 며칠 후면 컴퓨터 자격증을 딴다고 합니다. 시험장까지는 또 할미가 차에 태워가서 기다렸다가 데려와야겠네요. 중학교를 올라가는 이시기 겨울방학이 학부형들에게는 결코 쉬는 시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우리 부모님들도 우리가 자랄 때 지금 나만큼의 심혈을 기울이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늦게나마 생각해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