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치과치료

김태희-탈북자 xallsl@rfa.org
2022.05.03
[여성시대] 치과치료 전남대학교 치과병원 의료진이 지난 2018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 마을을 찾아 구강 검진·충치 치료·스케일링 시술 등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단오 그네도 뛰고 푸른 강변에는 능수버들이 흐느적이고 봄바람에 처녀 가슴도 뛴다는 오월에 들어섰습니다. 한국은 진즉 봄바람이 찾아왔지만 내 고향 북녘은 북방의 찬바람으로 인해 이제야 봄을 만끽하겠네요. 북한의 봄은 농촌사람들뿐만이 아닌 도시 사람들에게도 바쁜 계절이 되겠지요.

 

오늘은 얼마 전 치과에 다녀온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탈북민들은 한국에 입국해서 사회적응 교육을 받는 시설인 하나원에 가면 건강 상태를 검진 받습니다. 이때 특히 구강검진을 세밀히 합니다. 슬픈 일이지만 그만큼 우리 탈북민들은 치아 관리가 엉망이란 말인데요. 저도 한국 갓 와서 앞니 때문에 병원에 다녔는데 뿌리에 염증이 생겼다고 마취를 하고 이에 구멍을 내고 뿌리 신경을 죽이는 치료를 해주더군요. 그래서 근 15년이 넘게 발치를 안 하고 영구치를 쓰고 있습니다.

 

탈북했다가 2003년 북한에 갔을 때 북한에서 칫솔 모를 만들기가 어렵다고 쓰고 난 칫솔을 모으는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북한에 살 때 치과가 있었던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탈북민들이 쓰는 인터넷 단체방에 질문을 했더니 병원 안에 구강과라고 하나씩 있긴 했다고 하네요. 북한에서 병원이라고 해봤자 외과, 내과, 신경과 등으로만 알고 치과가 있긴 있어도 딱히 무엇을 할지는 생각조차 안 해봤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는 대형병원 안에도 치과가 있지만 전문의들이 동내에도 치과를 개업해 어디서나 쉽게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보통 치과를 가는 이유는 특별히 이상이 있거나 아프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1년에 한 두 번씩 잇몸에 붙은 치석을 떼어내는 스케일링을 하러 가기도 하고요. 충치가 생긴 이를 갈아내고 같은 색깔의 도자기 같은 것으로 때는 치료 또는 우리가 잘 아는 금으로 아예 치아에다 새로운 틀을 모자처럼 만들어 씌우는 크라운도 있습니다. 그리고 잇몸이나 이 뿌리에 병이 생기면 신경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통증을 해결해주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 제일 놀라운 것은 이가 빠진 자리에 인공치아를 심는 임플란트 입니다. 쉽게 말해서 잇몸 뼈에 나사를 박아서 자기 이처럼 사용하는 겁니다. 그리고 빠진 이 양쪽에 기둥을 새워 인공치아를 거는 브릿지 등의 방법으로 없는 이를 맞추기도 하고 또 통째로 틀니를 하기도 합니다. 북한에서도 이를 한번 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치과를 다니면 돈을 쏟아 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은 북한과 달리 아이들의 성장발달을 기본으로 검진하는 것과 함께 구강검진도 하는데 한국 아이들은 쵸콜릿이나 콜라 같은 단것과 음료수를 많이 먹기에 이가 썩어나가는 경우가 많답니다. 그래서 가정마다 아이들의 양치와 칫솔질을 중요시하게 여기지요.

 

치과에 가보면 예약을 잡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사람이 많은데 그 중에 절반 이상이 아이들이랍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치과 하면 으~할 정도로 너무나도 무서운 곳이죠. 그래서 어린 아이들도 치과에 가서 검진을 받거나 기본적인 치료를 할 때 무서움이 사라지게 눈앞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나 노래가 나오게 하거나 또 앞에 간단한 게임도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아이들이 정신이 그곳으로 간 사이에 치료를 하는 방법도 사용한답니다. 결국 치료를 받는 환자로 하여금 두려움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지요.

 

어제 치과에 가서 양쪽에 충치 먹은 이를 갈아내고 본을 떠내고 임시로 다른 재료로 때고 와서 밥을 먹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집니다. 하도 궁금해서 물어봤던 단체 문자 방에서 북한에서의 열악한 치과사정을 이야기 하다 보니 북한에서 아이를 낳던 이야기, 아기를 낳다가 죽은 친구 이야기와 아기를 가진 줄도 모르고 엄동설한에 나무하러 산에 갔다가 유산되어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국 마지막 마무리는 죽은 북한주민들이 불쌍하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겪어본 사람들이기에 늘 북한을 이야기하면 우리의 아픔이 다시금 생각나고 그때의 아픔을 지금도 겪고 있을 북한주민들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얼마 전 통화를 했던 고향의 언니가 하던 말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고향에서 동생이 다시 올 수 없는 길로 갔다는 소식에 힘든 시간을 보내던 언니가 하는 말이 나이 50, 한창 살아갈 나이에 단명한 것보다도 이런 좋은 곳에 자유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다가 갔을 동생의 인생이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불쌍하다고요. 언제면 북한 주민들도 병원을 골라가면서 치료받을 수 있고 아프기 전에 병원에 가서 미리 치료받고 이를 발치하기 위해 아플까봐 마취제를 쓸 수 있는 그런 치료를 받을 수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자유아시아방송 RFA 김태희였습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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