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11호 운전자가 아닌 ‘자차’ 몰아요

김태희-탈북자
2024.07.08
[여성시대] 11호 운전자가 아닌 ‘자차’ 몰아요 한 여성이 운전연습을 하고 있다.
/REUTERS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차를 몰고 가까운 곳에나 다녀오려고 했습니다. 얼마전 다리를 다쳐 먼거리 운전은 힘들지만 가까운 거리는 목발을 짚기보다는 자동차를 운전해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말이죠. 한국은 자동차들이 예전처럼 기어를 1단, 2단 하고 올리는 수동방식의 기어가 아니고 자동변속기를 써서 초보자도 쉽게 운전을 할 수 있습니다.  

 

자동식으로 하는 운전은 한쪽 발은 거의 안써도 될 만큼 편하고 손도 기어를 수시로 움직이지 않답니다. 요즘은 이런 것 말고도 그냥 패달에서 발을 떼면 시동이 꺼졌다가 밟으면 시동이 걸리는 전기 자동차가 늘고 있습니다. 자가용차들이 이렇게 편리한 방법으로 되어 있다보니 왼발이 상하거나 왼손이 상한 경우라도 자동차 운전은 어렵지 않게 할 수가 있지요.

 

다만 애로사항이라면 내 자동차는 다른 차들보다 크다보니 작은 체격에 차에 오르고 내리는 것이 어렵지만 그래도 더운 날씨에 목발을 짚고 땀 흘리면서 다니기보다는 원전을 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아서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로 갔습니다.

 

그런데 차의 시동을 걸려고 해도 시동이 안 걸립니다. 이게 뭐지? 하고 계기판을 보니 빨간 불이 들어온 겁니다. 자동차에서 밧데리가 나갔다고 경고 표시가 뜬 겁니다. 저는 어찌해야할지 몰라 남편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국은 자동차 보험에 모두 가입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은 남편이 관리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어디에 어떻게 하라고 알려줘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녹취: 고객님의 사랑으로부터 출동 요청이 접수 되었습니다. 사고 접수는 1번 긴급출동은 2….

 

자동차보험에 들어놓으면 보험사에서 사람이 나와 밧데리 충전을 해주고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화를 해서 5분여만에 차량 정비사가 달려왔습니다. 정비사가 가져온 충전기에 내 차를 연결하니 부르릉 하고 시동이 걸립니다. 안도의 숨을 쉬면서 이렇게 빨리 와줘서 감사하다고 했더니 바로 집 앞에 있는 정비소라고 합니다.

 

동네에서 자동차 정비소를 하는 분들은 여러곳의 보험사들하고 연계가 돼서 전화를 받으면 바로 나가 차를 견인해서 수리까지 해주는 겁니다. 이렇게 밧데리가 방전돼서 시동이 안걸리거나 운행 도중 기름이 떨어지는 경우 또 접촉사고 등 차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제일 먼저 자기가 가입한 자동차 보험회사에 연락해 도움을 받습니다.

 

나는 처음 작은 소형차를 운전할 때 3년부터 5년 사이에 운전미숙으로 몇번 작고 접촉사를  냈는데 모두 내 잘못으로 인정되어 보험료가 많이 올랐습니다. 한국에서는 초보운전자가 운전을 하는 경우에는 사고가 잘 안나지만 어느 정도 운전대가 손에 익숙해졌다 할 때 자만심이 생겨서 사고가 난다고 합니다.

 

지금은 자동차 마다 카메라를 달아놔서 언제 어디를 갔는지 전부 동영상으로 기록이 되기 때문에 차사고가 나도 누가 잘못해서 사고가 났는지 쉽게 알 수 있지만 이런 기록장치가 없었을 때는 목청이 큰 사람이 이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처럼 초보 여성 운전자가 사고를 내면 남자들이 아줌마 집에서 밥이나 하지 왜 차 끌고 나왔냐고 한다는 우수개 소리도 있었지요.

 

뉴스를 보면 매일 교통사고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만큼 한국에 자동차가 많다는 것이죠.

휘발유로 가는 차도 있고 내차처럼 디젤유를 사용하는 자동차도 있고 또 가스차도 있고 이제는 전기를 충전해 가는 차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차종과 다양한 연료로 달리는 차들 속에서 차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도 많이 생겼습니다.

 

다리를 다쳐 제대로 걷지 못하지만 내차가 있어서 어디를 가는데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문제는 없습니다. 비포장 도로에서 뽀얀 흙먼지를 날리면서 사라지는 승용차들을 보면서 마냥 부럽기만 하던 내가 이제는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해도 예전의 젊었던 나보다 더 씩씩하게 어디든 다닐 수가 있네요.

 

북한에서 먼 거리는 늘 짐차라도 잡아타야 갈 수 있었던 우리었기에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회령까지 백여리 길을 강냉이 배낭, 술 배낭을 메고 다니면서 발끝으로 새어 나가는 마지막 힘을 모아서 걷고 또 걸어야만 했던 내가 지금은 동네 가까운 곳도 덥다고 차를 운전해 가고, 다리가 아프다고 운전해서 나갑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남편이 운전을 해주면서 초기정착을 도와주는 바람에 버스도 타볼 기회가 없이 이제는 내 차를 가지고 전국 방방곡곡을 좁다하게 다니면서 북한에서는 내가 어디까지 다녀봤는지 생각해보니 함경북도 태생으로 함경북도 그외 지역을 벗어나 본적이 한 번도 없네요.

 

그렇게 북한에서는 두 다리인 11호 자동차만 몰고 다닌다고 하던 내가 이제는 한국에 와서 내 차를 운전하면서 자유로이 날아다니고 있다는 것에 또 새롭게 감사가 밀려듭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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