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종류도 다양한 식용유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얼마전 가까이 사는 탈북민 언니가 문자로 “희야, 뭘 하나 물어보자”라고 합니다. “왜요?” 하고 답을 하니 큰 질문도 아니고 “식용유가 어느 게 맛있냐”라고 물어보네요. 갑자기 물어보는 질문이라 나도 잠깐 생각해보다가 주방으로 가서 먹는 식용유를 찾아봤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부들이 식품을 구매할 때에는 국내산인지 외국산인지를 꼼꼼히 따지고 먹습니다. 더욱이 언니 같은 경우는 콩기름에서 비린 냄새가 난다면서 기름을 깐깐하게 골라서 먹는 습관이 있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유채꽃 씨를 짜서 낸 카놀라유라는 기름을 즐겨 먹지만 기름이 없는 북한에서 살다 온 나에게는 콩기름에 대한 한이 맺혔는지 이상하게 콩기름 외에는 다른 기름을 잘 먹게 되지 않는군요.

기름도 하도 여러가지가 많아서 솔직히 어떤 기름이 좋은 지 다는 모릅니다. 그리고 골라서 먹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요. 그래서 기름이 떨어지면 상점에서 사던가, 밖에 나가기 싫으면 집에서 인터넷으로 물품을 주문해 사먹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러개를 사면 더 싸게 주기에 한꺼번에 한상자씩 사놓고 먹기도 합니다.

언젠가 남편이 물건을 상자로 사는 것을 보더니 당신은 북한에서 없이 살아서 그런가 무엇이라도 사면 쟁여두는 습관이 있다고 하더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아서 언니들 하고 우스개로 이야기해보니 친한 언니들도 물건을 낱개가 아니고 한상자씩 산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름도 나물을 무치는데 쓰는 참기름이 있고, 북한에서 자주 보던 들깨를 짜서 낸 들기름도 있고요. 여러 씨앗들에서 낸 기름들도 많이 있답니다. 그리고 탈북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름 중에는 옥수수 기름도 있지요. 옥수수 기름은 콩기름처럼 노란색 보다는 진한 갈색에 가까운 색을 내는데 지지고 볶는 음식을 자주 하는 나는 옥수수 기름은 잘 사용하지는 않는 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튀김요리를 할 때 사용하는 튀김용 기름도 따로 있더군요.

처음에는 나도 모르고 튀김을 할 때에도 콩기름을 사용했는데 탈북민 동생이 우리가 즐겨먹는 두부밥을 할 때 두부를 튀기려면 튀김용 기름을 써야 이쁘게 나온다고 하는 소리에 이제는 두부밥도 튀기고 또 가끔은 누룽지도 튀겨서 설탕을 뿌려서 나눠 먹기도 합니다.

기름이 흔한 곳에서 이런 기름 저런 기름 골라가면서 살다가 한 번씩 북한에서 기름 배급을 받던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지요. 배급 받은 강냉이 쌀을 씻어서 눈을 받아서 가마목에 말려서 배급소에 가지고 가면 기름전표를 떼 줘서 그걸 상점에 가지고 가서 100그램, 200그램씩 받아오던 기름, 농장에 나와서 배급을 타면서 부터는 정미소 한쪽칸에 달린 기름 짜는 방에 가져다 맡기면 기름 짜는 아주머니들이 기름을 짜서 병에 담아주곤 했지요.

어렸을 때에는 어머니가 기름 짜는 곳에서 일해서 기름을 짜달라고 맡긴 사람들의 기름을 짜주고 나머지 똑 똑 몇 방울씩 떨어지는 기름도 아까워서 자그마한 종지를 대고 받아서 밑굽에 얄팍하게 깔린 들기름을 깨묵지와 함께 가지고 들어오면 우리 형제는 깨묵지에 환장을 하고 먹어 치우곤 했답니다. 그러고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배탈에도 퇴근하는 어머니의 손만 바라보곤 했답니다.

그런 자급자족을 빼고 국가에서 기름배급을 주는 날이 있는데 설날과 김일성의 생일날이었죠. 날씨가 찬 곳에서 기름배급을 주는데 커다란 드럼통에 기름을 담아서 보냈지만 얼어서 큰 다라이를 놓고 걸쭉한 고체가 된 기름이 서서히 뚝 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서 저것을 한 국자만 푹 떠봤으면 하는 생각이 얼마나 들었던지요.

그래도 우리가 들고 간 통에는 어김없이 1인 100그램, 200그램 정도 차려지는 기름이었죠. 그렇게 받아오는 기름이 아까워서 숟가락에 떠서 쓰지 못하고 젓가락을 기름 병에 꽂아서 국그릇에 떨구어 넣고 기름 냄새만 풍기던 쌉쌀한 맛이 나던 된장국 냄새가 코에서 나는 것만 같군요.

얼마전 보도에 전국적으로 물가가 올라가면서 기름 값도 덩달아 같이 올라간다고 합니다. 언니가 기름 값이 올라가기 전에 좀 많이 사두자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야기했지요.

아무리 가격이 올라간들 우리 입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기름 값이 올라가겠냐고요. 이 말을 하다 보니 2003년 중국에서 강제북송이 되어서 무산군 안전부에 감금 되었을 때 숨도 쉬기 힘든 자그마한 감방 안에서 쉬는 시간마다 했던 ‘이론식사’ 시간이 또 떠오릅니다.

내가 “계란 열 알을 탁탁 쳐서 알을 풀어서 소금 간하고 휘휘 저어서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풀어놓은 계란을 부으면 촤~ 하고 소리가 나는데...”라고 하자 중국에 가보지도 못한 채 두만강 가에서 붙들렸던 한 언니가 “계란도 못 먹는데 그걸 아까운 기름에는 왜 붓는다오?” 하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기름 한방울도 귀해서 젓가락에 묻혀가면서 먹던 우리가 지금은 한국에 와서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요즘 북한에서 보내오는 오물풍선 대신에 우리가 먹는 음식을 가득 담아서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