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며칠 안되어서 우리 민족의 고유의 명절인 추석연휴를 앞두고 있습니다. 늘 이맘때면 탈북민 우리에게는 가볼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애수가 가득 넘쳐나는데요, 한국은 이 명절이면 그야말로 고속도로와 기차가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말그대로 민족대이동이라고 하지요.
이런 명절에 갈 수 없는 고향을 지척에 두고 바라만 보아야 하는 탈북민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탈북민들을 바라보는 관심사 또한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녹취: 혹시 이번 추석 때 탈북민분들 같이 공동으로 차례 같은 걸 지내시나 해서요
모 언론사에서 이렇게 탈북민들이 이번 추석을 어떻게 보내는지, 따로 모여서 보내는지에 대해서 궁금해서 취재차 연락이 왔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찾아가야 할 시댁도 있고 찾아오는 시조카들도 있어서 따로 추석날 모여서 보내지는 않지만 사회 각 단체들에서 추석명절이라고 문자들이 연속 옵니다.
지역에서 탈북민 정착에 도움을 주는 하나센터에서는 탈북민들이 고향을 바라보며 제를 지낼 수 있게 며칠 전에 제상을 차려주는가 하면, 지역의 경찰서에서는 탈북민에게 추석을 맞이하여 위문품을 보내주기도 합니다.
어제는 80고령의 여전도사님께서 탈북민들이 추석날 떡을 해먹으라고 찹쌀도 가득 가져다가 나눠주시네요. 이렇게 큰 물품은 아니지만 작은 마음 하나하나 모여서 우리에게는 큰 위로의 마음으로 다가옵니다.
서울에 사는 탈북민 언니는 탈북민들이 모여서 가평에 있는 좋은 팬션에 예약잡아서 놀러간다고 합니다. 팬션은 강이나 산기슭에 지어놓고 자기들 스스로 고기도 구워먹고 밥도 해먹을 수 있는 여관 같은 곳인데 보통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답니다. 언니는 그러면서 갈데없는 우리끼리라도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지 어떡해 하는데 저는 거리가 먼 그 곳까지 갈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평시에는 5시간, 6시간이면 갈 수 있는 서울, 경기도이지만 설 명절이나 추석 명절에는 고향집을 찾는 이들로 인해 길이 막혀서 열 시간을 넘어 다녀야 하기에 가까운 곳에 친척들이 있는 저희로서는 집에 있는 것이 편하다고 합니다.
올해에도 예년과 다름없이 저희는 추석 당일에는 지리산에 계시는 80세된 엄마 같은 시누님을 찾아갑니다. 아버지를 보지도 못하고 태어난 아들보다 더 나이가 어린 막둥이 동생이 측은해서 볼 때마다 잡은 손을 놓지 못하시는 누님이 살아계시면 몇 년이나 계시겠나 싶어서 해마다 한두 번은 꼭 찾아 뵙게 됩니다. 갈 때에는 혼자 사시는 누님이 밥하기 싫어서 끼니를 거를까봐 포장이 잘 된 영양죽을 한박스씩 사서 들고 갑니다. 그러면 시골의 누님은 아픈 다리를 끌면서 산을 오르내리면서 뜯은 고사리며, 뒤뜰에 농사지어 담근 나물들과 된장이며 간장 같은 것들을 차에 한가득 실어줍니다. 어쩌면 저는 시누님 댁에 그런 시골 물건들을 얻어오는 재미에 더 다니지 않나 싶습니다. 지리산의 정기를 타고 자란 고사리는 물에 불려놓으면 새끼손가락 굵기만하지요. 반찬을 해놓으면 맛 또한 너무 좋습니다.
시골의 장독대에서 퍼낸 된장이며 간장을 가져다가 집의 창고안에 오래동안 숙성시켰다가 꺼내먹으면 된장국 또한 그 맛이 일품이랍니다. 그런 시골 음식들 만들어주시던 시누님이 이제는 연세가 들어서 보이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하시니 있을 때 잘해라고 계실 때 한번이라도 더 보고 후회를 안남기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다가도 이런 명절에는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 댁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한민족 풍습에는 추석이면 산소에 가서 벌초를 하고 음식을 나누는 문화가 있는데 올해는 비도 자주 오고 풀이 무성해서 벌초하는 분들이 그야말로 아우성입니다.
북한에서 어머니 묘에 가서 벌초를 할 때는 당일에 낫을 들고 갔지만 한국은 선산이라고 있어서 족보대로 내려오는 묘소 모두를 낫으로 벌초를 하기에는 버겁습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벌초를 해주는 사람을 돈을 주고 고용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분들은 직접 조상님 묘소 벌초를 하고 힘들어 하시죠. 그러면서 풀숲에 둥지를 튼 말벌에게 쏘여서 병원으로 가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한국은 말벌들만 따로 잡는 분들도 있고, 동네에 말벌집이 있는 경우에는 ‘112’처럼 긴급출동해서 국민의 안전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처리를 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의 추석은 묘소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형제 자매가 부모님을 뵐 수 있는 날이기도 하고, 또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이 기회에 안부 인사와 추석 명절 선물을 보내 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국가 공무원들도 평시에는 선물을 함부로 주고 받을 수가 없지만 추석과 설명절에는 한정된 금액에서 가능한 선물을 받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이런 명절에는 따로 떡값이라는 명분으로 위로금을 얼마간씩 주는 회사도 있습니다.
올해도 남편과 아들이 받아온 떡값으로 명절비용 절반은 감당을 하게 되네요.
이런 명절을 앞두게 되면 고향을 꿈에라도 봤으면 하는 것이 소원인데요, 사회관계망에 탈북민 어떤 이가 쓴 글이 있습니다. 고향의 부모님을 꿈속에서라도 만나봤으면 좋겠다고요.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신 저의 경우는 부모님 묘소에 한잔 술이라도 올리는 것이 소원이라면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경우에는 정말, 간절하게 보고 싶은 것이 자식된 마음이겠죠.
올해도 탈북민 우리들 중에는 파주에 있는 임진각,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통일전망대 등을 찾아서 저 멀리 고향을 바라보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가까이 사는 탈북민 언니는 한국에 갓 왔을 때에는 갈데도 없고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함께 사는 남편과 함께 한밤중 무작정 통일전망대에 가서 한없이 고향을 바라만 보다가 왔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으니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고 저려서 저는 그 마음을 경험을 하지 않으려고 이렇게 고향이 그리울 때에는 오히려 밝게 웃고 뛰어 놀 수 있는 곳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슬픈 마음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었지요.
한 해 또 한 해 우리는 저 멀리 부모형제가 있는 곳을 바라보면서 언제면 만날 수 있을까, 산새들도 물고기도 오고가는데 우리는 왜 갈 수가 없는 땅이 되었을 까 뇌이면서 오늘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남깁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였습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