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공무원이 된 탈북민

김태희-탈북자 xallsl@rfa.org
202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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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공무원이 된 탈북민 전주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 열린 '전북 노인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요즘 한국의 하늘은 티 없이 맑고 청명합니다. 고향에서는 늘 맑은 하늘을 보면서도 느끼지 못했는데 미세먼지가 자욱한 한국에 살다 보니 맑은 공기가 얼마나 우리 생활에 소중한 것인지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은 이런 맑은 하늘 아래서 탈북민 여성이 국가의 공공기관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친구를 알게 된 것은 지난 2008년 입니다. 탈북민으로 구성된 기자단에서 일할 때에도 함께 했었고 늘 자랑하고 싶은 친구였는데 몇 년 전 전라남도 전주시에서 시청 공무원이 됐답니다. 처음 이 친구를 만났을 때는 대학생이었는데 이젠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로 그리고 동시에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 여성이 돼있더라고요. 참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공무원이란 공공기관에서 나라 일을 보는 사람인데 한마디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라고 하지요. 북한과의 차이가 있다면 북한은 공공기관에서 일하려면 뇌물을 주고서 또는 출신을 보고 등의 조건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되려면 공무원 시험도 봐야 하고 경쟁이 심해서 임용되기도 어렵습니다. 보통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도 공무원 시험은 대학을 졸업했어도 따로 학원에서도 공부하고 오죽하면 길거리 광고에도 “공무원 시험에서도 합격, 공인중개사 시험도 합격”하는 학원이란 문구를 내걸었을까 싶을 정도로 어려운 시험이랍니다.

오늘 소개할 친구 이름은 안서영 입니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듣고 싶어 안부 전화를 했는데 뜻밖에 기쁜 소식을 전하더군요.

녹취: 오늘 여기 노인일자리 대상 수상 때문에 서울 왔거든요. 전국에 해서 18,000개 노인 일자리 기관들이 있는데 거기서 잘한 기관들 상을 주는 게 있어요. 대상부터 우수상까지, 전주시가 이번에 대상을 받은 거예요.

시상식에 참가하느라 전화연결을 길게는 못했지만 서영씨가 올린 글을 잠깐 읽어드리겠습니다.

“제가 좀 잘했습니다. 물론 혼자서 잘해서가 아니고 잘 따라와 주고 노력해준 기관들이 있어서입니다. 자랑해봅니다. 너무 힘들었던 2020년이어서 정말 3년간 전주 시 노인일자리 업무를 혼자 짊어지고 15개소 노인일자리 기관들과 함께 이뤄낸 성과라서 제 인생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살림살이도 하면서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로, 아내로 그리고 공무원으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서영 씨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탈북민들은 바쁜 일상으로 친구를 만나지 못할 때는 인터넷에 일기를 쓰듯 자신의 생활 이야기를 올리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위로의 말 또는 격려를 해주곤 한답니다. 잘하고 있으니 힘내라고요.

가족을 북한에 두고 온 많은 탈북민들은 동병상련의 아픔을 공유하면서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여러 형태로 나누면서 살고 있답니다. 아마 한국에 있는 탈북민들도 북한 고향에 관한 안타까운 뉴스를 보면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그리고 북한에서 지금 이 방송을 듣는 마음을 충분히 공감할 겁니다. 저의 아버님도 늘 회령시에 사시던 사촌동생 집으로 갔다가는 꼭 며칠씩 계시다가 오셨답니다. 그리고는 이불을 쓰고 가만히 남조선 방송을 들었다고 하셨거든요. 자유가 그립고 세계의 흐름이 얼마나 궁금할지는 북한에서 살아본 저희들이 감히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저도 한때 공무원이 되려고 맘 먹었던 때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때는 나이제한이 있어서 만 40살 이전에만 지원이 가능했었죠. 그때 내 나이가 39살이어서 1년을 공부하고 시험에 합격한다는 것이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는데 지금은 채용기준이 달라지면서 연령이 40세가 넘어도 시험을 볼 수 있답니다. 하지만 공무원은 20년을 근무해야 퇴직해도 공무원 연금을 받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살이라도 어릴 때 공무원이 되려고 하죠.

공무원이 된 안서영 씨가 자랑스러운 이유는 심한 경쟁을 뚫고 만든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교육열이 높은 만큼 너도나도 대학을 가지만 정작 대학을 졸업하고는 마땅히 자기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취업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폐업한다든지 또는 어떤 이유로 해고가 되면 다시 취업을 한다는 것이 어려워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려고 한답니다.

한국의 공무원은 공개채용을 하기 때문에 모집 시기에 맞춰서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예를 들어 10명을 뽑는다고 하는데 100명이 응시를 하면 경쟁률이 10대1일이 되는 거죠. 탈북민은 공무원 공개채용을 할 때 가산 점은 아니지만 일정의 채용특혜가 적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전국적으로 탈북민이 계약직이 아닌 정규직 공무원이 된 경우는 많지 않아 탈북민들의 자랑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북한에서 배운 역사와 지식으로 한국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합격된다는 것도 자랑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특히 역사를 보면 북한에서는 조선역사보다도 김일성 일가의 혁명역사를 더 많이 공부한 우리에게 한국의 역사를 다시금 공부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저는 서영 씨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자주 보내곤 한답니다.

탈북민들이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이유는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우리가 북한을 떠나올 때에는 빈손으로 왔지만 통일되어 북한으로 가서 이 좋은 제도를 그대로 북한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랍니다. 장애인복지나 의료복지 분야에서 일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돕고 싶고 또 사회에서 여러 유익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서로 행복을 나누며 살고 싶은 거죠. 솔직히 그 동안 북한주민들이 오해하고 몰랐던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를 알려주고 싶은 생각도 있답니다.

서영 씨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직장에서 인정을 받는 탈북민들이 있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좀 더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자유의 세계를 동경하던 고향에서 빈손으로 쫓기듯 떠났지만 우리가 대한민국에 와서 공공기관에 취업해 사회적 약자들을 돌볼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 내일은 아니지만 듣기만 해도 가슴 뿌듯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 이번에 대상을 수상하게 되다니 제가 상을 받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는데요. 북한에서는 탈북민들이 남조선 사회에서 가서 어렵고 힘들게 산다고 한다지만 이렇게 우리는 각자 스스로가 값진 인생, 그리고 행복을 느끼는 참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유대한민국에서 RFA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였습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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