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위총국 출신 탈북민, 북한 변화는 주민들의 불만으로 부터 시작
2019.11.29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 김정일 시대, 호위 총국에서 일했던 가명의 김성국씨는, 김정은의 장성택 처형을 보고 탈북했는데요, 이미 그 당시부터 북한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 했다고 말합니다.
김: 이미 김정일 시대부터 변화가 되었고 변화는 지금까지 진행중이라는 거죠
여성시대, 김성국씨가 겪었던 호위 총국, 즉 호위사령부는 어떤 곳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 들어봅니다.
음악:
북한에서 호위 총국출신이 몇명이나 탈북해 한국에 있는지요,
김: 한 세분 정도는 왔는데 두 분은 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평양 상부의 구성은 전혀 모르시더라고요 자기가 있었던 곳 밖에 모르더라고요 한분은 평양에서 왔는데 많이 아시더라고요.
북한이 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이미 김정일 시대부터 변하고 있었다고 하는군요
김: 북한이 변하고 있다는 그 시초는 당연히 북한이 경제난을 겪으면서 장마당인 시장이 발달되고 또 생계를 위해서 주민들이 지난 시기에는 불가능했던 이동이 가능해 졌지 않습니까? 물론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되지만 이동이 가능해 지고 외부로 부터 다양한 문물이 들어오고 이런 영향 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주민들로 부터의 변화라고 강조합니다.
김: 위로부터의 변화는 절대로 아니죠, 지도자가 바뀌었습니까, 정책이 바뀌었습니까? 체제가 바뀌었습니까 이런점은 분명히 변한 것은 없는데 주민들에 의한 아래로 부터의 변화를 분명히 있고 굉장히 주목할 가치도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정은 체제는 그대로 인데 주민들만 변하고 있기 떄문에 주민들의 불만, 반발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김: 불만이 많죠, 지난 시기에는 그런 불만을 하면 다 잡혀 갔었죠 그런데 지금은 왜 우리는 못 사냐 우리도 중국처럼 개방하면 빠른 기간에 굉장히 잘 살 수 있겠는데 이런 말을 너무 일반적으로 하는거죠, 그리고 노동당 정책이 새롭게 나왔다, 북한은 원래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이렇게 위해서 부터 아래로 하달 되잖아요 그러면 이번에는 진짜인가? 이렇게 의심하는 이런일도 저의 주위에서 보면서 참 많이 변했다….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은 주민들의 먹고 사는 어려움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김: 이 불만은 결국은 체제와 김일성 일가의 신뢰도에 하락과 바로 직결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어렸을때 부터 북한이 세상에서 제일 살기좋은 나라다, 주민들의 자주성이 충분히 보장되는 나라다, 이렇게 계속 교육을 해 왔고 저 부터도 어렸을 때는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잘 사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해 왔죠. 그런데 알고보니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결국은 불만이 팽배해 지고 또 중국 물건들이 들어오니까 북한 주민들은 한국에 대해서는 몰라도 중국이 70년대는 북한 보다 못 살았던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중국이 잘 사는 모습들이 바로 물건에 투영이되는거죠,그러면서 중국이 이러게 잘 살게 되었는데 왜 우리는 못사나?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해외 근로자를 파견한 것도 큰 몫을 차지 했다고 지적합니다
김: 최근에 외화 획득을 위해 해외에 근로자 파견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김씨 정권의 독재 자금이나 미사일 개발, 핵개발 자금같은 이런 외화 획득에도 도움이 되지만 양날의 칼이라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그 사람들이 직접나가서 외부사회를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고 보고 듣는다는 거죠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요? 말은 할 수 없지만 우리가 정말 못사는구나 최근에도 보면 아프리카에 가서도 하지 않습니까? 북한 주민들의 인식이 아프리카 하면 굉장히 낮은 등급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아프리카에도 가서 건설 노동을 하는 근로자들이 괴리감이 안오고 허탈감이 안 올까요 ? 돈을 벌어야 하니까 어쩔 수는 없죠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시 북한으로 귀국 했을때 남들에게는 말 할 수 없죠 다 손도장을 찍어야 하니까 그러나 내 가족 친척들 한테는 하거든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로 부터 러시아에 갔다온 친구들 아프리카에 갔다온 친구들의 얘기 들어보면 완전히 딴 세상의 얘기거든요 야 이것은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거에요
주민들의 변화 의식은 국경 지방쪽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고 오히려 평양이 더 빨랐다고 전합니다.
김: 왜냐하면 평양에 모든 중앙 기관과 국가 기관들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우선 공식적으로 해외 나가는 사람들이 99%는 다 평양에 사는 사람들 이라는거죠 이 사람들은 외교관으로 나가든 무역 일꾼으로 나가든 뭘로 나가든 이 사람들의 외국 문물을 가장 먼저 알고오죠 물론 지방에 있는 사람들인 경우에도 두만강 압록강 북중 접경 지역에 사는 북한 말로 국경지역이라고 하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 중국에 대해서는 알 수 있죠. 그러나 평양에 있는 사람들은 유학을 나가든 유럽이나 자본주의 국가에도 많이 나가니까 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안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잘 사니까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는 당연히 현재 북한체제 유지를 원하기는 하겠지만 속으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판단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북한에서 호휘총국하면 일반인들은 넘겨다도 보지 못하는 직책이 아닌가 싶은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들어봅니다.
김: 북한의 지금 공식명칭은 호위 사령부죠 김씨 일가와 관련된 신변보호, 먹고 살아가는 모든것 들을 관장하는 역할을 하는곳이 호위사령부죠 하나더 플러스 한다면 북한을 방문하는 수반 급 인사들 이라든가 북한의 우호적인 영향력이 있는 인사들도 북한 방문을 오면 신변경호 역할까지 합니다
북한에서는 호위 사령부 안에도 신분이 여러가지라 여기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 여건도 다양하다고 설명합니다.
김: 저희 경우는 당시 증앙당 6과에서 선발이 되었고 호위 사령부에도 신분이 여러가지 입니다. 일반 사병으로 입대하는 경우에는 바로 군에가는 시스템 처럼 가기는 하는데 일반 인민무력부에 소속된 군인들 처럼 군사 동원부를 거치지 않는다는 거죠, 따로 이 호위 사령부만의 선발 시스템이 있습니다 몇 도 마다 전문적으로 선발하는 요원이 상주하고 있으면서 다음 호위 사령부에 보낼 친구들을 서류부터 시작해서 선발하는거죠. 이런 것은 일반적인 제도고 좀 더 중요한 역할, 다시 말하면 김일성 일가의 별장이나 저택이나 근접경호 라든지 이런 것을 경호하기 위한 사람들을 선발하는 것은 지금 얘기한 시스템보다 좀더 상위에 있는 노동당지도부 6과가 따로 선발을 합니다. 저는 이렇게 선발되어 간겁니다.
신청하는데 자신이 여건 자격이 된다해도 신청은 가능하지 않다는데요,
김: 위에서 가정 환경과 부모의 충성도 이런것을 보았을때 호위사령부에 갈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명단에 들어가면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선발 되었을때 당시에는 자부심이 정말 컸다고 하는군요
김: 그때는 당연히 긍지가 있었죠 최고위 수령이고 인민의 지도자를 가까이서 호위 하는데 가겠고 그러면 평양에서 살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니까 초기에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죠
김정일 시대 때, 호위 총국에서 일하면 특혜도 많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직책이기도 했다는 거죠
김: 호위 사령부 군인들은 군복 디자인 자체가 일반 군인들과 다릅니다. 군복만 보면 호위 사령부 군인 이라는 것을 바로 누구다 판단할 수 있도록 군복자체가 다릅니다. 그리고 혜택은 호위 사령부 군인들은 제대 될때 인민군 군인들 처럼 집단 배치를 잘 안시키죠. 탄광이나 광산으로 북한 말로 무리배치 라고 하는데 그런것을 안시키고 집으로 귀가 시킵니다 이것은 일반 혜택이고, 김일성 김정일 일가와 근접해서 일하는 소위 아주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혜택이 좀더 있는데 제 경우에는 설날과 김일성, 김정일 생일에 귤 5키로짜리 선물을 받고 담배도 공급되는 레벨, 수준이 좀 더 높고 평생먹고 생활하는 보급 후방물자로 가는 기준이 높은 수준이죠
이렇게 근접경호를 하면서 호위 총국에 들어오기 전에 생각했던과 다른 면도 많았다고 지적합니다.
김: 북한 말로는 초대소라고 하죠, 북한의 경치가 좋고 유명한 지역에는 다 별장이 있는데 거기에도 얼마나 자주 가는가 얼마나 중요한 대상이냐에 따라서 그곳을 지키는 군인들의 수가 정해지는 거죠 그래서 어떤 곳은 한개 여단이 지키고 있고 어떤 곳은 대대가 지키고 이렇게 수준이 다른데 또 외부를 지키는 군인들과 내부를 관리하는 성원들이 따로 있죠, 내부를 관리하는 성원들은 군인들 보다는 내부에서 일하니까 좀 더 가까운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모든 별장마다 차량들이 있는데 후방물자 보급을 위한 차량이나 사업을 위한 차량이든지 승용차도 벤츠고 트럭도 벤츠입니다. 트럭도 벤츠를 사용하는 거죠.
이와 함께 당시에 받았던 큰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하는데요,
김: 어린아이 들이 승용차를 타고 별장을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것이 물론 그 당시에 그 어린 아이들이 누구의 자녀인지 알 수 없었지만 승용차의 운전석 바로 옆 좌석에 앉아서 앞 유리창에다 막 다리를 흔들면서 가거든요 이런것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총을 메고 있는데 도대체 저 아이들은 저렇게 벤츠만 타고 다니나… 그런데 벤츠를 운전하는 운전기사 군사칭호가 중좌, 소좌 이상되는 이런 것들을 보면서 수령일가는 우리 일반 사람들과는 벌써 다른 차원이구나 우리하고는 다른 삶을 사는구나, 이런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는거죠 그것이 아마 우리가 어렸을때 부터 수없이 들어왔고 교육 받아왔던 것과는 좀 다른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낀것이 아니었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북한 호위 총국 출신, 가명의 김성국씨의 증언 다음 주 이시간에는 가까이서 본 북한의 지도자와 여성편력 그리고 탈북동기, 한국에서의 꿈을 이루어 가는 얘기 들어봅니다.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