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쓸모없는 세계소식을 전하는 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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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2월 첫 주 대한민국 주요 일간신문 국제면은 베트남(윁남) 전쟁에 대한 기사로 덮여있다는 것을 인터넷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동아일보는 그 해 2월 8일 베트남 공산당 측인 월남군이 북서쪽 국경에 접한 라오스로 진격한 사건을 국제면 전체에서 다뤘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유엔 측 입장은 물론, 중국과 소련, 영국, 프랑스 그리고 주변국의 논평과 비판들을 다 인용한 분석 기사였습니다.

당시는 1970년대로 심각한 냉전 시기에다 공산세력의 확장 억제를 위한 베트남 전쟁에 대한 기사였음에도, 자유진영을 지원해 참전까지 한 한국의 신문은 월남을 일방적으로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국제사회 관계자들의 말을 중립적으로 다 소개해서 독자가 종합적 견해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왔습니다. 이처럼 객관적인 시각으로 필요한 정보들을 전달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자 생명인데요.

세계 보편적인 언론의 관점에서 볼 때 노동신문은 언론의 역할을 전혀 못 합니다. 정치면과 사회면 기사들은 북한식 사상과 이념을 강조하고 김정은 총비서에 대한 맹렬한 충성심을 끌어내기 위한 선전물 역할만 하는데요. 이는 유엔 회원국으로서 자국민에게 당연히 보장해야 할 보편적 인권 중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독특한 북한의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라 치고요. 그런데 아무리 북한식으로 이해하려 해도 노동신문 국제면의 역할은 난해합니다. 미국과 대한민국, 일본 등 적대국을 왜곡, 비방하는 기사들이야 북한 주민들의 적개심을 고취시키고 북한식이 최고라고 호도할 목적이겠는데요. 그 외에 일반적으로 관련 없는 나라들의 천재지변이나 사건 사고, 전염병에 대한 기사들의 역할은 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인도 남쪽 바다의 섬나라 스리랑카에서 뎅기열로 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는 기사나, 아프리카 중동부에 위치한 에티오피아에 말라리아가 전파돼 사망자가 84명에 이른다는 보도, 필리핀 최남단의 섬 민다나오에서 폭우로 사망자 한 명에 6명의 부상자가 나왔다는 기사들입니다.

물론 사망자가 나온 것은 비극적이지만, 그 지역의 기후 특성상 뎅기열 같은 전염병은 한반도에서 독감이나 비슷한 수준일 겁니다. 다른 국제 소식은 거의 없고 새로울 것이 없는, 저 먼 나라의 전염병 기사는 북한주민들에게는 아무런 필요도 의미도 없는 기사로 보이는데요. 정작 지금 언급한 나라들에서는 우리 청취자분들이 알면 도움도 되고 국제적 식견도 넓힐 수 있는, 보다 의미 있는 사건들이 넘칩니다.

예를 들어, 지난 7일 스리랑카의 라닐 위크레메싱게 대통령은 인도와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스리랑카는 인도뿐 아니라 중국,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와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고요. 뿐만 아니라 물가는 상승하고 돈의 가치는 떨어지는 인플레이션이 지난해 상당히 진정되어 스리랑카 경제가 회복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 대한 보도로는 지난 5일에 스위스의 비영리 재단인 ‘세계경제포럼’이 내보낸 보도자료가 흥미롭습니다. 에티오피아 경제의 기본은 농업인데요. 여성이 농업 노동력의 75%를 차지하는 상황이며 특히 그 중에서 1천 5백만 명의 여성들은 커피 산업에 종사한답니다. 문제는 커피재배에서 얻어 들이는 수입 중에서 단 34%만이 노동자의 몫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이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농업 이익금 결제 방법을 숫자화(디지털) 지불방식으로 전환해서 여성 농업 종사자들에게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익금을 돌려줄 수 있도록 추진한다는 보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1월 말, 이 섬의 여러 도시들과 관광사업 관련 기관들이 동남아시아 국가연합인 ‘아세안’이 수여하는 ‘청정관광도시상’을 받았습니다. 이 소식을 전한 현지 언론 ‘민다나오 타임즈’는 아세안 국가들이 관광상품을 개선하고 지역 주민의 생활도 개선하며 환경도 보호할 목적으로 시상식을 진행한다고 설명합니다. 올해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서 열린 시상식 행사에서 환경 친화적이고 인적 자원 개발과 지역공동체 참여 등의 취지에 민다나오가 적합했기에 수상했답니다.

노동신문 국제면 기사와 제가 소개한 세계소식들을 비교하니, 어느 쪽이 더 쓸모 있는 정보들을 담고 있는지 판단하는 게 어렵지는 않지요? 북한의 선전선동부는 왜 노동신문의 국제면은 재미도 쓸모도 없고 크게 관련도 없는 나라들의 전염병에 대해서만 독자들에게 보도할까요? 혹시, 그게 바로 목적이 아닐까 싶은데요. 북한 독자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쓸모도 영향도 없는 국제 소식을 소개하는 것, 이것이 북한 노동신문 국제면의 역할이 아닐까요? 외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것이 북한당국의 최대 관심거리이므로 가장 영향력이 없는 나라들의 의미 없는 소식을 전하는 것이 외국 영향을 최소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편일 테니까요.

반면 제가 말씀드린 소식들은,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고, 재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는 것, 주민생활과 사회 발전을 위해 지역연합체와 협력하는 것 등에 대해서였지요. 이 활동들은 모두 북한당국이 철저히 배제하는 행위들입니다.

북한당국이 주민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주장과 알려주기 싫은 정보가 뭔지 훤히 알겠습니다. 북한당국의 이 같은 정보통제 정책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위반한 심각한 인권유린임과 동시에, 북한주민들을 우매하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나라의 발전을 후퇴시키는 결과만 초래할 뿐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