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문화의 다양성과 평화, 발전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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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 21일은 유네스코가 주도하여 ‘대화와 발전을 위한 세계 문화 다양성의 날’을 기념합니다. 유네스코는 유엔의 전문 기구로 교육, 과학, 문화의 영어 단어 앞 글자를 따서 유네스코라고 부릅니다. 기구의 이름처럼 국제사회의 교육, 예술, 과학, 문화 부문에서 국제적 협력을 이뤄내고 세계의 평화와 안보를 증진시킨다는 목적으로 일하는 유엔 기구인데요. 유네스코는 2001년에 ‘문화 다양성 세계 선언’을 채택한 후 매년 이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지구에는 오대양 육대주에 상이한 문명적 기원에 근거해 상호 영향을 주며 발전해 온, 수없이 많은 종류의 문화가 존재하고요. 각자 취향과 살아온 환경에 맞게 문화를 즐기는 약 805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와 색채를 인정하고 상호 보장하는 것과 세계의 평화, 안보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유네스코가 기념일까지 지정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증진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유네스코의 연구 결과, 현재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분쟁이나 갈등의 이유 중 89%가 다른 두 문화를 보유한 국가들 사이에 대화가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또한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인정하고 교류하는 국제적 분위기는 세계 평화에만 기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 지구적으로 4천 8백 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의력이 필요한 문화 분야에서 생겨났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한국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세계적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이 문화, 창조, 예술 분야에서 2023년 한 해에 창출해 낼 시장 규모를 709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북한의 2020년 국내총생산 규모의 두 배가 조금 넘는 규모라고 이해하시면 될 겁니다. 부의 창출 규모에 있어서 문화, 예술 분야가 이 정도라니, 유엔이 문화 영역을 증진시키자고 노력하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문화 정책에 있어서 북한 당국의 방향은 유엔과 국제사회와는 반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세계 평화에도 기여하고 경제력도 일떠 세울 수 있는 예술과 대중문화 요소를 북한 당국은 억누르기에 바쁩니다. 며칠 전 ‘아시아프레스’라는 언론이 북한의 ‘평양문화어보호법'의 전문을 공개했는데요. 그 내용을 보니 북한은 ‘세계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고 즐기는 것을 심각한 범죄행위로 다루고 있습니다.

언어도 핵심적 문화 요소이고 문화를 발현해 내는 중요한 도구이자 수단이며, 따라서 그 자체가 문화이기도 하는데요. 북한 당국이 올해 1월에 채택한 이 법으로 북한 주민들은 1953년 이후부터 북한에 자리 잡게 된 생활양식, 말, 문화, 글과 책, 영화 밖에 즐길 수 없습니다. 그 외 문화적 요소, 특히 한국적 요소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법으로 강력하게 처벌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실제로 형사 처벌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북한 당국은 “청년들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 괴뢰 말투를 본따거나 흉내 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국가적인 문제”라고 주장하는데요. 이렇게 문화적 색채를 단일화하는 정책의 문제점은, 첫째로 이 자체가 심각한 차별로 국제인권규정을 위반한 인권 유린입니다. 북한에도 전쟁 이후 남에서 북으로, 또는 1950년대 이후 재일동포 귀국자 사업으로 일본에서 북으로 온 사람들이 9만 명이 넘습니다. 이들은 북한식이 아닌 남한식 또는 다른 문화의 말투와 생활 양식에 익숙할 텐데 이들의 존재를 불법으로 치부하는 것이고 명백한 차별입니다.

둘째로, 법 조항 내용이 혐오와 증오에 가득 차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주민들로 하여금 나와 다른 요소에 대해 혐오하도록 부추겨 우리 편의 힘을 구축하려는 논리인데요. 법의 가치는 포용과 보호, 안전에 기반하는 것인데 북한의 이 법은 증오를 기반으로 주민들에게 혐오감을 잔뜩 가지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증오의 확대가 항상 다른 편만 향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북한 사회 안으로도 혐오, 갈등, 증오를 부추기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법은 북한의 경제, 과학, 문화 등 많은 영역의 발전을 저해할 겁니다. 이 법의 한 조항은 “인터네트를 리용하는 과정에 괴뢰말 또는 괴뢰서체로 표기된 출판선전물이나 자료, 프로그람 같은 것을 복사하지 않도록 감독 통제를 강화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북한에는 극소수인 데다, 북한 전문가들이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경제, 과학 영역의 전문 자료는 한국 전문가들이 만든 한국어 자료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어 활자체로 된 선진적 서적과 자료를 활용할 수 없으니 이 또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법을 채택해서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제약을 가하는 것은, 그만큼 북한 당국이 불안감과 두려움에 쌓여 있다는 방증으로 보입니다. 또한 주민들이 북한의 지도자를 믿지 못하고 곁을 떠날까 봐 겁난다는 속내를 이런 식으로 표현한 걸로 보이기도 합니다.

북한도 외국에 대한 혐오를 내려놓고 다른 문화를 인정함으로써 문화의 다양성이 가져다주는 평화와 안보 그리고 경제적 상호 발전의 혜택을 누리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