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국영 언론사인 BBC는 매년 이맘때 ‘올해의 여성 100인’을 선정해 발표합니다. 한 해 동안 세계적인 이목을 끈 주요 사건에서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줬거나 괄목할 성취를 이룬 여성들을 분야별로 선정해 발표하는 건데요.
2022년 한 해를 돌아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코로나 대유행병의 점진적 극복 단계 돌입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많은 사건 속에서 여성의 활약 또한 눈부셨습니다.
‘100인의 여성’에 선정된 인물 몇 명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9월 중순부터 중동의 이란에서는 의복 자유를 주장하는 이란 여성들의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이 시위에 참여해 '자기 머리카락을 자른 여성들’이 사회활동 분야에서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됐습니다.
22세의 이란 여성, 마샤 아미니가 이란의 도덕경찰에게 부당하게 죽임을 당한 뒤 전 세계적으로 이 운동이 확산됐는데요. 이란 여성들이 머리에 쓰도록 강요당하는 ‘히잡’ 착용에 반대한다는 표시로 시위 참가자들이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며 연대를 표시했습니다. 머리카락 자르기는 인터넷에서 들불처럼 확산돼 세계 여러 나라 유명 인사들까지 동참해 이란 여성들의 의복 자유를 위한 투쟁에 동참했습니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저지르는 전쟁범죄를 기록한 시민단체의 인권 변호사 마트비추크 씨도 선정됐는데요. 마트비추크 변호사가 이끄는 ‘시민자유센터’는 러시아가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조사받을 수 있도록 러시아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의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인도네시아의 밤바리 씨는 사회활동가로 성폭력 희생자들을 위해 투쟁하는데요.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인 가치를 오염시켰다며 성범죄 연루자들에게 벌금을 매기는 관습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가해자뿐 아니라 성폭력의 피해자도 벌금을 내야 하니 희생자인 여성들이 이중삼중으로 부당한 처지에 내몰렸습니다. 이에 밤바리 씨는 지역 의회 의원들에게 부당한 관습법을 철폐하라는 설득 작업을 적극 벌였다고 합니다.
홍콩의 의상디자이너인 카드리 켕 씨는 노인과 장애인 등 소외계층 여성들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아름다운 의상을 제작해왔습니다. 의류 산업이 고도로 발전됐지만 노인들이나 각이한 신체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아름다운 의상은 없다는 점에 착안해 모든 신체 조건을 다 포용하는 의류 사업을 하고 있답니다.
그 외에도 10년 이상 인공심장을 연구 해온 심장외과 의사와 세계 최대 우주 망원경의 발사와 운영을 맡았던 천체물리학자 그리고 항의의 표시로 시도한 분신으로 화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하는 이라크의 간호사, 아프리카의 농업과 식량 체계에 긍정적 발전에 기여한 영양식품 제조 기업가 등 무수히 많은 전문 영역에서 활약한 여성들이 소개됐습니다.
지구 인구의 절반인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도 포함한 전 인류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이 당연히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겁니다. 하지만 여성들의 사회참여는 전통적 사고에 어긋난다거나 여성이 힘과 능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으로 여전히 제약됩니다. 그런 이유로BBC가 이런 여성 전문가들의 활동을 모범으로 소개를 한 건데요.
북한 여성들의 사회참여는 어떻습니까? 김정은 위원장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북한 여성들은 정치 영역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북한에서 국가적으로 힘 있는 분야에 진출해 전문성을 자랑하는 여성들은 겨우 손에 꼽힐 정도일 겁니다.
하지만 모든 주민의 일상생활을 떠받치고 있는 장마당에선 차원이 다릅니다. 북한 경제의 상당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장마당의 여성들이야말로 대단한 여성 활동가가 아닐까요.
고난의 행군을 지나면서 1-2백만 명이 굶어 죽는 비극을 겪었지만 여성들은 헌신적이고도 혁신적인 사고로 상품을 제작해 장마당에 내다 팔며 가족을 살렸습니다. 옥수수 국수며, 빵이며, 옷가지, 가방, 학용품, 여러 생활용품을 여성들은 직접 만들며 장마당을 부흥시켰습니다. 고난의 행군을 극복하게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장마당의 북한 여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지난 3년간 코로나 대유행 병으로 물건도 풍족하지 않은 데다, 이동도 제약된 엄혹한 여건이었지만 북한의 여성들은 여전히 장마당에서 북한 사회를 떠받쳐 왔습니다. 이 여성들이 세계 어느 나라의 사회 활동가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북한 사회를 살려내는데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칭찬하고 싶습니다. 북한 당국은 지도자와 우리 당을 강조하지만 사실 북한 사람들을 살아가게 하는 주체는 바로 장마당의 여성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게 2022년 BBC 올해의 여성을 추천할 권한이 있었다면, 장마당의 북한 여성들이 마땅히 올해를 빛낸 세계 100인의 여성으로 꼽고 싶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