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탈북자들이 가장 많이 당하는 사기 (1)
2024.08.08
강윤철: ‘다단계 아니야?’ 하니까 사업이래… 뿌리칠 수도 없고 해서 그럼 한번 가서 들어보자 하고 가서 들어본 겁니다.
마순희: 정말 내 통장에 계속 돈이 꽂히는 거예요. 우리 탈북민 사회에 정말 안 하는 사람이 얼마 없을 정도로 너무 성행했댔어요.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게 딱 문이 닫히는 바람에 정말 그 많은 돈이 다 날아가 버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예진입니다. 탈북민들은 이제껏 귀순자, 북한이탈자, 새터민, 탈북자, 북한이탈주민 등 시대마다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습니다. 바뀌어 온 호칭만큼이나 국가와 사회, 사람들에게 다른 대접을 받아왔죠. 30년 전까지만 해도 간첩 취급을 받던 탈북민들, 지금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쯤 되는 국회의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사이 탈북민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탈북부터 한국정착까지, 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그들의 속얘기를 들어봅니다.
PD: 한국에 딱 와서 느낀 자본주의의 맛이 어떻던가요?
서기원: 좀 달달했죠. 아무튼 그래가지고 처음에 와서 카드 치고 놀고 막 술 먹고 뭐 ‘일 안 해’ 하면서 약간 개폼 잡고 막 그랬었죠.
김강우: 안녕하십니까? 저는 2016년 5월에 탈북하여 대한민국으로 이사 온 김강우라고 합니다. 나이는 29살이고요. 저희 정착금 받고 나오는 게 400만 원, 처음에 저희 때에는 그렇게 받고 나왔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거기서 100만 원은 어머니한테 보내드리고 300만 원으로 이제 집안에 필요한 것들을 사야 되잖아요. 뭐 이제 식기부터 시작해서 그런 것들을 좀 사고 남는 돈을 한 달 안 돼서 다 써버렸던 것 같아요. 옷도 사고 하다 보니까 그 돈이 떨어지면 이제 다시 각성하는데 이제 시간 지나니까 신용카드 만들게 되고 그 카드값을 미리 써버리면서 계속 돈 들어오면 그걸로 카드값 내고 또다시 0원이니까 카드 쓰고 그걸 계속 반복했던 것 같아요. 악순환으로…
PD: 돈 쓰는 게 재밌었어요?
김강우: 네. 돈 쓰는 게 제일 즐겁더라고요.
현재 한국 정부로부터 탈북민 한 명이 받는 정착지원금은 1000만원, 7300여 달러. 여기에 취업활동이나 자격증 취득 등의 활동을 하면 받을 수 있는 정착장려금, 노령자나 질병자 등이 받는 정착자산금 등이 더 있습니다. 공돈 생긴 기분으로 이를 마구잡이로 썼다가 낭패를 본 탈북민들도 꽤 있죠. 신용카드도 내기만 하면 모든 물건을 살 수 있어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요. 한 달 먼저 돈을 쓰고 다음달 갚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버는 것 이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썼다간 신용에 문제가 생기고, 이자가 높아 늦게 갚을수록 빚이 점점 더 늘어나며, 경제활동을 하는 데도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 지하철 기관사라는 탄탄한 직업을 갖고 있는 한용수 씨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돈 때문에 직업을 잃을 만큼 위험한 덫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한용수: 솔직히 북한에서 군대 생활만 하다가 회사에 입사해서 갑자기 월급이라는 걸 받아보잖아요. 제가 살면서 저한테는 제일 큰 돈을 한 번에 쥐어 본 거잖아요. 그러니까 돈을 어떻게 써야 될지도 모르고 하니까 좀 돈 관리를 잘 못하면서 썼던 것 같아요. 그 때 제 친구였는데 이 친구가 그 손가락이 부러져서 수술을 받았어요. 그때 한 250만 원 수술비를 내야 된다고 하는데 그때 제 월급이 한 달 월급이 200만 원이 안 됐었거든요. 한 100만 원 좀 넘었을까 막 그랬었거든요. 그래서 월급 가지고는 도저히 이 친구 병원비 못 해줄 것 같고 해서 신문을 보다가 어디서 돈 빌려준다고 해가지고 전화해서 가서 돈을 빌린 거죠. 한 일주일 되니까 이자를 내라 그러고 막 전화가 오는 거예요. 당연히 내가 돈이 없으니까 돈을 빌렸는데 일주일 지나서 이자를 내라고 하면 돈이 있겠어요? 당연히 없죠. 그래서 안 냈죠.
한국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도 가끔 나오는 사채업자. 돈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원금보다 높은 이자를 갚으라며 조직폭력배까지 동원하기도 하죠. 한국에 정착한 지 얼마 안 돼 세상물정 몰랐던 용수 씨는 친구를 위해 잘못된 길을 선택했던 겁니다.
한용수: 한 2주 정도 전화도 잘 안 받고 하니까 막 협박성 문자 막 이런 것들이 이제 오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한 달 월급이 요 정도다. 근데 너네가 원하는 이만큼 이자를 나는 지금 상태로 낼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북한에서 왔는데 한국에 부모 형제도 없고 아무도 없다.
너네가 나를 죽여도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편하게 죽여도 된다. 대신에 내가 이 돈은 못 갚겠다” 그랬죠. 그랬더니 사채 사장이 한참 있더니 “이 돈이 어떤 돈인지 알고 썼어?”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모르고 썼다고… 한참 있다가 “그럼 원금이라도 갚을래?”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우리 직원들하고 같이 막 얘기하다 보면 “야 사채꾼 의외로 인간적인 사채꾼들이 있다” 이런 얘기를 막 하거든요.
마순희: 제가 잘 믿고 정말 도와주고 그랬던 분인데 돈을 꿔줬댔는데 계속 돈을 못 갚고 그래서 외국이라도 가면 어쩔까 걱정을 해서 그 집 문 앞에까지 가보고 이런 적도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돈을 몽땅 현찰로 해서 봉투에다가 두툼하게 이렇게 해서 갖다 주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돈 없다더니 어떻게 이렇게 주냐 했더니 나는 요즘에 돈을 잘 번다고… 어떻게 돈을 버냐 하니까 통장을 보여주는데 그 통장이 매일 돈이 몇 백이 들어오는 거예요. 잔고가 쌓이는 거예요. 그래 대단하다. 이거 어떻게 하면 되냐 했더니 언니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난 이런 거 절대 할 줄 모르고 난 이런 거는 못한다. 그럼 내 이 돈을 안 받은 셈치고 너 도로 줄 테니까 이거 가지고 내 이름으로 좀 해라’ 이렇게 해서 사실은 시작했어요.
한국에 정착한 지 10년이 지났어도 탈북민들의 잘못된 선택은 이어졌습니다. 금융사기, 가상화폐 사기 등 첨단 기술을 교묘하게 이용한 사기 행각은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맹신할 만큼 탈북민 사회를 들끓게 했는데요.
마순희: 그래 했는데 정말 내 통장에 계속 돈이 꽂히는 거예요. 우리 탈북민 사회에 정말 안 하는 사람이 얼마 없을 정도로 너무 성행이 했댔어요.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게 딱 문이 닫히는 바람에 정말 그 많은 돈이 다 날아가 버렸죠. 나는 거기에 들어갔던 그 1, 2년 그 기간은 내 인생에서 돌려내고 싶은 정말 잊고 싶은 그런 기억이에요. 다시는 난 그런 건 안 한다 하는데 아직도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PD: 선생님에게 돈은 뭐예요? 돈이란?
조현정: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는 저에게 돈은 미래였어요. 10년 안에 집을 사겠다. 아파트를 사겠다는 게 그때 제가 하나원 수료하면서 저에게 했던 가장 첫 번째 약속이었어요. 한국에 와서…
PD 뭐뭐 하셨어요?
조현정: 많은 일을 했죠. 크게는 이제 보험회사 4년, 그리고 골프장에서 6년 이렇게 이제 10년을 제가 돈을 벌었는데 그 사이에 아르바이트 한 게 뭐 25개 이상은 돼요. 어느 날은 족발집에서 이제 족발집 앞치마를 두르고 일을 하고 있고, 어느 날은 옷가게에서 옷을 팔고 있고, 캐디 일을 하면서는 직접적으로 우리가 이제 돈을 현장에서 일을 열심히 하고 서비스 좋으면 팁이 바로바로 나오고 들어가서 입사하자마자 그 다음 두 달 만인가 바로 홀인원이 나와가지고 그래서 30만 원을 그 자리에서 현찰로 딱 이제 팁을 주고… 버디가 나오면 1만 원은 기본으로 팁이 나오고 그러다 보니까 제가 팁만 모아가지고 3년짜리 적금을 들기도 하고 여름에는 한 주만 일해도 한 200 넘게 들어와요. 그러면 이제 통장을 보면 그 일을 포기할 수가 없죠. 제가 7년 만에 집을 장만을 했어요. 집을 산 매매 계약서를 쓰면서 뭐라고 할까요? 이 뿌듯함이 아 내가 목표를 세운 걸 이제 성취했다는 뿌듯함이 그게 저에게는 한국 사회에 가장 잘 정착했다는 징표였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자신이 일한 만큼, 애를 쓴 만큼 돈이 모이는 재미를 알게 된 탈북자들, 그렇게 애써서 모은 돈을 조현정 씨처럼 현명하게 쓰는 사람도 있지만 더 큰돈을 벌기 위해, 더 쉽게 돈을 벌기 위해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라디오다큐, 나는 탈북자> 자본주의의 쓴 맛을 알게 된 탈북자들의 증언,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