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북한의 우크라전 파병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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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파병 여부에 대해 한동안 러시아는 침묵을 지켰고 북한도 ‘근거 없는 소문’이라며 시치미를 뗐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25일자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그런 일이 있다면 국제법 규범에 부합되는 행동”이라며 모호한 가정법으로 사실상 파병을 인정했습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가짜 뉴스에 불과하다”고 해왔던 종래의 입장을 바꾸어서 “우리가 무엇을 하든 우리의 주권적 사항”이라고 하면서 파병을 인정했습니다. 물론, 북한군 이동 상황을 보여주는 위성사진들이 공개되고 미국과 나토가 북한군 파병을 공식으로 확인한 상황에서 더 이상 발뺌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은 북한의 입장에서 이번 파병 때문에 겪을 수 있는 딜레마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북한군이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든 못하든 북한은 후폭풍에 시달려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 당국의 기대대로 북한군이 전세를 바꾸는데 크게 기여하는 경우 나토 회원국들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빌미를 만들어준 것이 되어서 북한은 전쟁을 국제전으로 확전시킨 범죄국가로 비판을 받게 되고, 전쟁도 더 많은 살상과 파괴가 불가피한 장기전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반대로 북한군이 패전군으로 전락한다면 평양 정권의 체면은 크게 손상될 것입니다. 이번에 파병되는 부대는 북한이 최정예로 자랑하는 제11군단, 즉 3개의 저격여단, 4개의 경보병여단, 3개의 항공육전여단 등을 가진 폭풍군단인데, 이중 저격여단과 경보병 여단이 우크라이나에 파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장비를 제대로 가지고 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들이 기대 이하의 졸전을 보인다면 러시아도 실망하고 북, 러 간 군사협력도 빛을 잃을 것입니다.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와 유럽 간의 교류협력은 향후 수십 년간 단절될 것이어서 전후 러시아는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교류협력이 절실해질 것인데, 북한군 파병으로 이것도 어려워질 것이어서 북한과 러시아 모두에 힘든 상황이 될 것입니다.

둘째는 북, 중 관계의 악화입니다. 오랫동안 중국은 북한 정권의 생존을 지켜주는 ‘뒷배’였고 북한이 대외정책에서 가장 중시해온 공산주의 종주국이자 경제적 파트너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북, 러 군사적 밀착이 급진전되고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군대까지 파병하자 중국이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북, 중 관계가 예전같지 않은 정황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 부근에는 중국에 온 북한 사람들이 귀국하기 전에 선물을 사곤 했던 상점들이 즐비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으며, 현재는 중국이 북한 대사관을 향해 대사 업무 이외의 일을 하는 주재원들, 즉 장사나 무역을 하는 인원들의 퇴거를 요구한 상태입니다. 신의주와 단동을 잇는 구 압록강철교를 대체하기 위해 2014년에 건설된 신압록강대교는 준공된 지 10년이 되었지만 중국은 개통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2016년 한국의 사드(THAAD) 배치 이후 악화되었던 한중관계는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경제교류가 단절되면 인민경제 자체가 돌아가지 못하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 중 관계의 악화나 한, 중 관계의 개선은 모두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셋째, 북한군의 인명피해가 커지는 경우 인권 문제와 함께 북한 정권을 흔드는 악재가 될 수 있습니다. 현지에서는 북한군이 쿠르스크, 포크로우스크 등 격전지에 배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 휴먼라이츠워치 사무총장을 지낸 케네스 로스 프린스턴대 교수 등 서방 소식통들은 북한군이 장비 부족, 11월부터 시작되는 라스푸디차 등으로 고전할 것이며 러시아군을 대신하여 총알받이나 대포밥이 될 것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도 북한군에게 “북한을 탈출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 투항하면 좋은 대접을 해주겠다”는 메시지를 내보내는 심리전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군에 대량 인명피해가 발생한다면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 어린 목숨들을 희생시킨다는 인권 차원의 비판에 직면할 것입니다. 북한군과 러시아군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으며, 탈영자나 투항자가 속출한다면 북한 내부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사태, 각종 분쟁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러시아의 영토확장 야욕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명분 없는 전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런 전쟁에 파병하여 논란을 키우고 있습니다. 세계는 북한군의 파병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으며, 파병을 강행한 북한 정권 스스로도 초조한 마음으로 이후 사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