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터와 함께 돌아가는 ‘스마트 풍선’ 작업 현장
[현장음] 기계 돌아가는 소리
12월 중순 서울 시내의 한 작업실.
작은 공간에 3D 프린터가 쉴새없이 돌아가고, 온갖 기계 조립 부품과 납땜 도구들이 빼곡히 놓여있습니다.
북한에 은밀히 전단지를 담은 풍선을 보내는 민간 단체, 조선개혁개방위원회 작업실입니다.
이 단체의 관계자는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작업 공간을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공개했습니다.
방 한쪽 테이블에는 하얀색 나무 판자로 만든 크기 약 3-40cm, 무게 7.4kg의 기구 7개가 놓여있습니다.
이 단체가 개발한 ‘스마트 풍선’입니다.
[조선개혁개방위원회 관계자] 이건 스마트 풍선이고, 타이밍을 설정하면 (전단지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예요. 전단지 살포 타임 간격을 10분 할 수도 있고. 이건 빠르게 6초로 해놨는데. 10분이나 30분도 할 수 있어요. 바람과 위치에 따라 이 타임을 세팅하게 되면 전 구간에 뿌려지는데 몇백미터에 한 장씩 떨어지는 셈이죠.

이 스마트 풍선은 북한 상공을 떠다니며 한 번에 최대 약 1500장의 전단지를 살포할 수 있습니다.
[기자] 1500장 떨어지고 나면 이 기계를 회수할 수 있나요?
[조선개혁개방위원회 관계자]아니요, 회수를 못해요. 일회용이죠.
개발에만 약 7년이 걸렸고, 제작비는 한 대당 1천 달러에 이릅니다.
작업실 한켠에는 무지개색 낙하산이 달린 또 다른 기구들도 있습니다.
단체가 2024년 개발한 오디오 전단으로, 북한 노래와 함께 북한 말투로 김정은 정권을 비판하는 오디오 확성기가 달려있습니다.

[현장음]민족을 부정하고 통일을 반대한 김정은은 민족 반역자, 반통일분자, 혁명의 배신자….
[조선개혁개방위원회 관계자] 하늘에서 이렇게 낙하산으로 떨어지면 한 닷새 동안 방송하는 거예요. 이렇게 떨어지면 소리가 360도로 퍼지는 거예요.
그는 얇은 드라이버를 들고 전기 부품을 손보며 능숙하게 오디오 전단의 회로를 점검했습니다.
이어 선반에서 또 다른 기기와 메모리 카드를 꺼내며 새로운 아이템을 소개했습니다.
휴전선 인근의 북한 군인들에게 음악이 담긴 mp3 플레이어를 제공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조선개혁개방위원회 관계자]군인들에게 1인 1mp3를 보내려고 해요. 아직 준비 중인데, 이렇게 하늘에서 떨어뜨리면 낙하산이 이런 식으로 떨어지거든요. 낮에는 낙하산 색이 튀니까 발견이 되고, 밤에는 여기서 깜빡거리는 불이 나와요. 군인들이 산에서 주우면 돼요.
벽에 붙은 전자 회로도와 납땜 도구들, 작업대에 가득 샇인 부품들은 모두 자체 제작의 흔적입니다.
[조선개혁개방위원회 관계자] 다 이런저런 전자제품이잖아요. 부품으로 떼고 붙이고 조립을 해야 하니까. 이 선을 여기다가 연결하는 건데. 이게 좀 복잡해요. 수동으로 다 하는 거라서.

“북한에 잘 도착했구나”
최근 보낸 전단지와 각종 지원 물품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된 단체도 만났습니다.
[활동가] 우리가 보낸 종합감기약과 물건들이 그대로 사진으로 나왔어요. 그래서 북한에 잘 도착했구나, 주민들에게 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11월 17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를 발표하고 이 단체가 보낸 풍선 사진을 공개한 겁니다.
당시 사진에 약과 커피믹스, 간식, 건전지 등이 커다랗게 묶인 투명 비닐에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도 붙어 있었습니다.
이 활동가가 보낸 물품에도 똑같은 스티커가 붙어있습니다.
이들은 10년째 이 일을 해오고 있지만 이름도 없고 조직도 없습니다.
생업이 있어 밤에 따로 시간을 내 물건들을 포장하고 풍선을 만듭니다.
[활동가] 우리의 일과 조직체를 알리는 게 목적이 아니고,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세계는 어떻다는 것을 알리는 게 목적이에요. 그리고 바람 풍향에 맞춰서 대기하고 있다가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의 일을) 공개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고 우리의 일을 할 겁니다.

“조용히, 하지만 끝까지”
활동가들은 최근 대북 풍선 활동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겨울철 바람의 방향과 남북한 간 확성기 방송 재개, 접경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단속이 그 이유입니다.
[활동가]우리가 깊은 밤 중에, 12시나 새벽 2-3시에 산골짜기로 들어가도 뒤에 차들이 따라옵니다. 그때 느낌이 이상하면 바로 차를 돌려요. 그럼 그 뒤에 경찰차가 또 따라붙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래서 밤중에 두세번씩 자리를 옮기다보면 날이 밝을 때가 돼서야 집에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이들.
북한의 대남 확성기로 인해 접경지역 주민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물었습니다.
[활동가] 편안치는 않겠죠. 그렇지만 북한 주민들의 고생에 비하면 지금 거의 굶어 죽고 추위에 떨고 있는데,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조금만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우리는 그럼에도 끝까지 해야겠으니까.
[조선개혁개방위원회 관계자] 현지 (접경지역) 주민들이 풍선 보내는 걸 반대하니까 조용히 활동합니다. 어렵긴 하지만 계속 보내긴 보내야죠.

이들의 전단지에는 자유와 인권에 대한 메시지, 김정은 정권의 정당성을 겨냥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김일성부터 시작된 3대 가계도를 통해 백두혈통의 허구를 폭로하며, 북한 정권의 통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겁니다.
[활동가]지금까지 김정은이 통치자로서 주민들을 군림하면서도 자기가 누구라는 걸 밝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김정은의 가계도를 많이 보냈거든요. 그래서 북한이 대북 전단지에 대해 더 발작적인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가 싶은데요.
[조선개혁개방위원회 관계자]우리가 보낸 전단지를 통해 백두혈통이라는, 김정은 우상화를 완전히 제거해 버린 겁니다. 지금은 북한이 백두혈통이라는 표현을 한마디도 안 써요. 김정은의 통치 정당성이 북한 주민들한테 낱낱이 밝혀지니까 김정은이 그걸 막으려고 오물풍선을 보냈죠.
자유를 찾아 탈북한 이들은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끝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조선개혁개방위원회 관계자]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겪을 일이에요. 독재자는 마지막 단계에 가만히 죽지 않잖아요, 발악을 하잖아요. 지금 최후 발악을 하는 마지막 단계에요. 그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관리하고 빨리 끝나게 해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하루라도 빨리 덜어주느냐 그게 가장 핵심입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