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또 한 명의 젊은 영웅 정현 선수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1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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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또 한 명의 젊은 영웅이 탄생했습니다. 약관 22세의 한국 테니스의 유망주 정현 선수는 호주 멜보른에서 1월 29일 폐막된 2018년도 세계 테니스대회 호주 오픈 단식경기에서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이가 되었습니다. 호주 오픈은 1905년부터 개최되기 시작하여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세계 테니스대회로서 윔블던 대회와 더불어 테니스 대화의 메이저 중의 메이저이며, 모든 세계 테니스 선수들의 ‘꿈의 무대’입니다. 이 대회에서 세계 랭킹 58위인 정현 선수가 자신보다 랭킹순위가 더 높은 선수들을 차례대로 물리치고 32강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테니스는 체격조건이 좋은 서양인들의 독무대였고, 아시아인들에게는 좀처럼 정복할 수 없는 높은 벽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현 선수가 32강에서 세계랭킹 4위인 독일의 알렉산드르 즈베레프 선수를 물리치자 한국의 젊은이들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이들의 카페와 SNS에는 “우리 정현이가 큰 일을 낼 것같다”는 말들이 돌기 시작했고, 16강에서 세계 랭킹 14위인 세르비아의 노박 조코비치에게 단 한 세트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3:0 스트레이트로 승리하자 여기 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조코비치 선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지켰던 테니스의 신동이었고 호주 오픈을 여섯 번이나 재패했던 테니스의 전설입니다. 정현 선수가 그런 조코비치 선수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서 아시아인으로서는 1932년 이래 86년 만에 처음으로 4강에 진출하자. 한국 국민은 열광했고, 젊은이들 사이에는 정현 신드롬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골프의 박세리, 수영의 박태환,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등에 이어 한국에 또 한 명의 젊은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정현 선수가 1월 25일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세계 랭킹 2위인 스위스의 로저 페더러였습니다. 페더러 역시 조코비치 선수와 함께 테니스의 황제로 불리는 출중한 선수이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은 랭킹 4위 즈베레프와 14위 조코비치를 물리친 정현의 젊음과 패기가 또 한번의 돌풍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하면서 숨을 죽였습니다. 하지만, 정현의 돌풍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섭씨 30도가 넘는 날씨 속에서 준결승까지 올라오면서 정현 선수의 발바닥은 물집투성이가 되었고 페더러와 경기를 할 무렵에는 염증이 생살까지 파고들어 더 이상 경기를 지속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정현 선수는 제2세트 경기 도중에 통증을 호소했고, 결국 경기를 포기했습니다. 이로서 정현의 '위대한 도전'은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정현에게 기권승을 거둔 페더러는 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의 마린 길리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여 약 17억 원의 상금을 거머쥐었습니다. 한국 국민들은 정현 선수가 페더러와 제대로 한판 겨루어보지 못한 것을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하지만, 정현 선수에게는 이제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의 나이 겨우 스물 두 살입니다. 정현은 신장 188cm에 서양인들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체격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단단한 수비력, 강력한 백핸드 등 테니스 실력은 물론 패기와 끈기에 안정된 멘탈까지 갖추었습니다.  말솜씨와 유머도 압권입니다. 8강에서 조코비치를 물리친 후 장내 아나운서가 코너를 찌르는 날카로운 스매싱이 어떻게 가능했느냐고 묻자 정현 선수는 유창한 영어로 “조코비치는 나의 우상이었고, 나는 그가 하는 것을 흉내냈을 뿐”이라고 넉살을 떨었습니다. 관중들은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정현 선수가 인터뷰를 마치고 부모님과 한국 관중들이 모여있는 쪽을 향해 큰 절을 올리자 또 한번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정현 선수는 이번 호주 오픈 4강 진출로 ‘국민 아들’이 되었고, SNS 상에 정현의 팔로어는 단숨에 십만 명을 돌파했으며, 백화점들에는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정현 선수가 입었던 유니폼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정현 선수는 심한 약시 때문에 통상적인 안경 대신에 수영선수들이 끼는 고글을 쓰고 경기를 했는데, 이는 섭씨 30도를 웃도는 멜보른의 날씨 때문에 땀이 눈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스포츠 용품 판매점들에는 이 고글이 찾는 젊은이들로 넘쳐 났습니다. 대회가 끝난 후 새로이 발표된 세계랭킹에서 정현의 순위는 58위에서 29위로 껑충 뛰어 올랐습니다. 8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상금도 받았습니다. 다른 대회에서 받은 상금까지 합치면 지금까지 20억 원이 넘는 상금을 받았는데, 이 또한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 동안도 한국의 젊은 영웅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국민에게 위안과 희망을 안겨주는 역할을 담당해왔습니다. 1998년 프로 골퍼 박세리 선수는 미국 위스콘신주 쾰러의 블랙울프런 골프코스에서 열린 US여자 오픈에서 연장전 끝에 극적으로 우승했으며, 대회 최연소 우승과 동양인 첫 우승 기록도 함께 세웠습니다. 박세리의 승리는 당시 전 세계적인 외환위기 속에서 고통받던 한국 국민에게 큰 위안을 주었으며, 수많은 박세리 키즈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오늘날 세계무대에서 맹위를 떨치면서 명예와 부를 얻고 있는 한국 여성골퍼들의 대부분은 박세리의 우승을 보고 골프클럽을 들었던 고사리 손들이었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그리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차지하여 한국 선수들에게 큰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김연아는 ‘국민 여동생’ 이 되어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며, 이후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세계를 누볐습니다. 한국 국민들은 2002년 월드컵 축구에서 한국이 4강이 진출했을 때 서울 시청앞 광장에 붉은 옷을 입은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외치는 ‘대한민국’이라는 함성이 전국을 뒤흔들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2010년 북한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저질렀을 때, 해군과 해병대를 지원한 젊은이들의 숫자가 급증했습니다. 그게 대한민국의 영파워이자 국력입니다. 곧 개막되는 평창 올림픽에서는 또 어떤 젊은 영웅들이 탄생할지 궁금합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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