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북한의 방벽 건설과 엘리트의 탈북

김태우-전 통일연구원장
2024.08.07
[김태우] 북한의 방벽 건설과 엘리트의 탈북 사진은 전선지역에서 대전차 방벽 추정 구조물 설치 중인 북한군.
/연합뉴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북한군이 수개월째 DMZ 250km를 사람이 다닐 수 없는 불모지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군은 4월에 이 작업을 시작하여 군사분계선(MDL) 북쪽의 비무장지대에 방벽 설치, 지뢰 매설, 남북간 철도 및 도로 파괴 등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동안 매설한 지뢰가 이미 수만 발이 넘는다고 합니다. 임시천막 같은 숙소를 설치하고 여군까지 동원하여 병력 교대 없이 하루 평균 12~13시간씩 작업을 강행하는데, 휴일과 야간을 가리지 않고 작업을 계속한다고 합니다. 한국군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미 10여 차례의 폭발사고와 온열질환으로 수십 명의 군인들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한국군이 북침할 가능성이 없음을 잘 아는 북한이 방어용으로 이런 시설을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며, 결국 탈북이나 귀순을 차단하려는체제 지키기차원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설들이 탈북 방지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동안 탈북민들의 행태를 보면, 정치적 망명, 생계형 탈북, 엘리트 탈북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983년 미그기를 몰고 넘어온 이웅평 대위, 1991년에 망명한 외교관 고영환 씨 등 1990년대 중반 이전 탈북자들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불만, 처벌에 대한 두려움 등 정치적 동기로 망명했지만, ‘고난의 행군시절부터는 생계형 탈북자들의 엑소더스가 있었습니다. 이후 단속과 처벌이 강화되자 생계형 탈북민이 크게 줄면서 2009년에 2,900명에 달했던 탈북민이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100명 이하로 줄어들었는데, 2023년에는 196명으로 다시 증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중에 최근에는 해외 엘리트층의 탈북이 늘어나고 있어, 일부 전문가들은 체제에 대한 불안감이 누적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해외 엘리트라 함은 북한에서 성분이 좋은 집안의 사람들 중에서 외교관, 무역일꾼, 외화벌이 일꾼, 유학생, 해외 주재원 등으로 선발되어 해외로 파견된 사람들을 말하는데, 2023년에만 이런 엘리트층 수십 명이 탈북을 시도했다가 그중 10여 명이 한국으로 넘어왔습니다. 이들은 현지에서 한국으로 곧바로 올 수 있는 수단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며, 대부분 자유를 갈망하여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태리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다가 1998년에 망명한 김 모씨의 사연을 회상해 보겠습니다.

 

김 씨는 북한이 기근에 허덕이던 1994년부터 이태리 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국제기구들로부터 식량을 원조받아 북한에 보내는 일을 담당했고, 동시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임으로 최고 실세가 되었던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을 보필했다고 합니다. 당시 장성택은 매년 유럽으로 나와서 프랑스, 이태리 등에 있는 김 위원장의 주치의들을 만나 건강자료들을 체크하고 필요하면 주치의와 동행하여 평양으로 가서 진료를 받게 하는 등, 김 위원장의 건강을 관리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1998년 어느 날, 대사관 동료들과 환담하면서내가 보낸 식량만도 수백만 톤인데 아직도 굶주린다니 도대체 꼭대기놈들은 뭐하고 있나라고 말했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다음 주에 보위부 요원들이 당신을 체포하러 갈 것이니 속히 피신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서방세계를 경험하면서 자유를 갈망하고 있던 중이라 그 길로 미련없이 짐을 싸고 작업복 차림으로 아내를 차에 태웠고 아들이 다니는 학교로 가서 아들을 태운 후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서십분 후에 갈 테니 문을 열어 놓고 대기해달라고 했습니다. 사전 상의를 듣지 못한 아내와 아들이수령님의 은덕을 반역으로 갚으려 하느냐며 반대하는 바람에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미리 상의했다가 계획이 새 나가면 곧바로 불려 가서 처형을 당할 수 있음을 알기에 일체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김 씨 가족은 전화를 받은 후 24 이내에 허둥지둥 한국 대사관으로 들어갔고, 한국에 와서는 모 국책연구소에서 전문가로 일하다가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이는 북한의 해외 엘리트들이 얼마나 자유를 갈망하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들은 북한에서는 체제에 반하는 언동이 발각되면 심한 고문을 받고 노동교화소로 끌려가거나 처형까지 당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나 대통령이나 정부 정책을 비난할 수 있고, 국민이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바꿀 수 있으며, 법을 지키기만 하면 데모하거나 농성을 해도 아무도 안 잡아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김 씨의 경우에도 농담조로 한 말 한마디가 최고권위에 대한 반역으로 보고되어 공포에 떨어야 했고, 결국 살아남기 위해 자유의 땅으로 망명해야 했습니다. 그의 아내와 아들은 북한에서 교육받은 대로 한국에 가면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해야 하는 줄 알고 강력히 반발했지만, 나중에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크게 안도했다고 합니다. 지금 김 씨는 1998년 그때 망명하지 않았더라면 숙청을 당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2013년 장성택이 처형당했을 때 자신도 장 부장의 측근으로 낙인찍혀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김 씨의 이야기는 새털처럼 많은 엘리트 탈북 사연 중 하나일 뿐입니다. 지뢰밭이나 장벽이 자유를 향한 이들의 열망을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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