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미국의 핵운용 지침 개정
2024.09.11
오늘은 미국의 핵전략이 바뀌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는 시기에 미국이 핵무기 운용 지침을 바꾸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원래 오바마 대통령처럼 핵무기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지도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2020년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부터 단일 목적(sole purpose) 핵사용과 선제 핵사용 포기(NFU) 등을 주장했었습니다. ‘단일 목적 핵사용’이란 미국이 직접 핵 공격을 받을 때만 핵을 사용한다는 것이고, NFU란 ‘No First Use’의 줄임말로 핵을 상대보다 먼저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정책입니다. 미국은 대통령이 바뀌면 핵전략과 핵 운용 방침들을 대외에 선포하는 ‘핵 태세 검토서(NPR)’라는 전략서를 발간하는데, 동맹국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런 내용을 NPR에 명기하면 동맹국들이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을 불신하게 될 것으로 우려했습니다. 이런 우려를 의식했는지 2022년도 NPR에 그런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전략서 곳곳에 바이든 대통령의 핵 관련 철학이 반영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잠수함 발사 핵순항미사일(SLCM-N) 개발을 중단하기로 했고, 항공기 투하 핵무기 B83-1(1.2 mt) 미사일도 퇴역시키기로 했습니다.
그랬던 바이든 행정부가 달라졌습니다. 지난 3월 중·러·북이 협력해 미국에 핵 공격을 가하는 상황에 대비하는 핵 운용 지침을 만들라고 미군에 지시했고,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지침을 승인했습니다. 동시에 필요한 신무기 개발과 핵 운용 체제의 현대화도 지시했습니다. 6월에는 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NSC)의 비확산 담당 국장도 “중·러·북의 핵 위협 가중 시 미국도 배치 핵무기를 늘릴 것”이라고 했고, “재래전쟁에서도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내비쳤습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철학이었던 선제 핵사용 포기 정책을 뒤집는 내용입니다. 이렇듯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시기에 종래 입장을 바꾸면서 새로운 핵 운용 지침과 핵 독트린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핵 독트린이 이렇게 바뀌는 이유는 신냉전 상황에서 중·러·북 3국의 핵무력 증강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며,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는 전략적 초점이 ‘북한의 핵포기’에서 ‘핵사용 방지’로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이 만들어진 핵무기 운영 지침의 민감한 부분들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중국의 핵무력 증강에 대해 노골적인 우려를 담고 있다는 점을 알려졌습니다. 이 지침은 중국의 핵무기가 2030년까지 1,000기 그리고 2035년까지 1,500기로 늘어날 것이라는 미 국방부 추정을 근거로 삼고 있으며, 중국이 러시아 및 북한과 핵공조를 하면서 미국에 위협을 가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미국은 지난 3월 NSC와 전문가들을 통해 ‘비핵화’ 목표에서 한발 후퇴한 ‘중간단계(interim steps)’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협상을 위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할 용의도 있다”고 했습니다.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발표된 미국 민주·공화당의 정강에서도 ‘북한 비핵화’나 CVID,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의 비핵화’라는 표현이 사라졌습니다. 이를 두고 북한은 “미국이 우리의 핵보유를 인정했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그건 잘못된 해석입니다. 북핵을 accept 즉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recognize 즉 인지한다는 뜻이며, 북한이 당장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의식하여 대화를 통해 핵 위협을 낮추도록 노력하되 북한이 거부하면 강력 대응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이제 핵 문제는 갈 데까지 가고 있는 양상입니다. 중, 러, 북 3국의 군사적 밀착과 핵 공조가 강화되면서, 결국 미국의 대응을 촉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한국도 계속 지켜볼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시민단체들이 핵무장 촉구 천만 명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앞으로 이 운동이 국가 정책을 얼마나 변화시킬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일본과 대만에서도 대응 움직임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식량난이 다시 시작되고 일당독재 체제에 대한 젊은 층의 반발과 자유를 향한 엘리트층의 탈북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북한이 정녕 핵무기를 증강하고 무인기, 방사포 등 무력 강화에 열을 올려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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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