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26일 대한민국에서는 가을을 알리는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건군 75주년 기념식과 한국군의 시가행진이 있었습니다. 우천으로 인하여 F-35A, F-15K 전투기, 아파치 헬기, 블랙이글스 특수비행팀 등의 기념비행과 에어쇼는 취소되었습니다. 매년 한번 이상 열병식을 하는 북한과는 달리 한국군은 2013년 이래 시가행진 행사를 하지 않았기에 이번은 10년 만의 시가행진이었습니다. 원래 국군의 날은 10월 1일이지만,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9월 29일이어서 26일에 기념행사를 갖게 된 것입니다. 정부는 9월 28일부터 10월 3일까지 6일을 공휴일로 선포했습니다. 수천만 명이 대이동을 시작하여 국내 도로들은 수백만 대의 차량으로 가득 찼으며 인천, 김포, 부산 등지의 국제공항들은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그럴 줄 알고 9월 26일에 국군의 날 행사를 개최한 것입니다.
행사는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오전 기념식과 광화문 앞 세종대로에서 열린 오후 시가행진으로 나누어 거행되었습니다. ‘강한 국군, 튼튼한 안보, 힘에 의한 평화’라는 주제로 열린 오전 기념식에서는 군악대 축하공연, 모터사이클 퍼레이드, 통합합창단 공연, 열병식 등이 열렸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강한 군대만이 진정한 평화를 보장한다고 강조하고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 한미동맹의 압도적 대응을 통해 북한 정권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후 시가행진에는 병력 4,600여 명과 장비 170여 대가 동원되었는데 장비행진에 이어 육사생도 행진, 각군 보병, 300여 명의 미군 장병 등이 도보행진을 벌렸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광화문 세종대왕상에서 육조마당까지 장병들과 함께 행진했습니다. 주한미군과 현직 대통령이 시가행진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날 행사에서 선보인 군사장비는 K21 보병전투장갑차, K1A1 전차, K2 흑표 전차, 장애물개척전차, K55A1 자주포, K9 자주포, 상륙돌격장갑차(KAAV), 합동정밀직격탄(JDAM)·타우러스(TAURUS) 등의 공대지 미사일, 무인기, 무인잠수정, 패트리엇 지대공 미사일,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 천궁 등이었는데, 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연도에 운집한 국민들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장비는 장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L-SAM), 현무-5 미사일 그리고 증강현실(AR)로 구현된 해군의 차세대 구축함 정조대왕함이었습니다. ‘한국판 사드’로 불리는 L-SAM은 요격고도 40~70km를 커버하는 탄도탄 요격 미사일로써 막 실전배치가 시작되어 처음으로 국민에게 공개된 것입니다. 현무-5는 북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만든 고위력 미사일로써 상당부분이 비밀에 쌓여 있으나 탄두 중량 최대 8~9톤으로 핵무기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가진 ‘괴물 미사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광화문 일대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본 관람자들이나 집에서 텔레비전을 본 국민들은 거대한 정조대왕함이 마치 대로 위로 미끄러져 가는듯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기발한 발상과 영상기술이 빚어낸 한 편의 작품이었습니다.
이번 장비행진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첫째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도발시 확고하게 대응하는 ‘한국형 3축 체계’, 즉 킬체인(Kill Chain)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그리고 대량응징보복체계(KMPR)를 구성하는 핵심 장비가 많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둘째는 K9 자주포, K2 전차, K21 장갑차, K-239 천무 다연장로켓, 휴대형 대공미사일 신궁, 휴대용 대전차미사일 현궁 등 세계 방산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장비들이 많이 소개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들 무기들은 성능과 가격 면에서 우수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폴란드, 호주(오스트랄리아), 아랍에미리트 등 세계 각국에 수출되고 있는 것들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이번 ‘국군의 날’ 행사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남과 북의 열병식이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금년에만 세 차례의 열병식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북한은 빈번하게 열병식을 거행하며 혹한과 심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북한은 열병식을 통해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용 대형 무기들을 과시하며 매번 엄청난 규모의 훈련된 군중을 동원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영하 수십 도의 혹한을 무릅쓰고 개최되는 심야 열병식에 동원되어 나와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그 어떤 불만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여기에 반해 한국군의 열병식은 주로 억제무기와 방어무기들을 소개하여 국민을 안심시키는데 주력하며, 강제로 국민을 동원하지도 않고 높다란 귀빈석을 설치하지도 않습니다. 이날 행사시에는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이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앞에서 시가행진 행사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항의 기자회견을 하는 등, 반대의 목소리를 냈지만 경찰은 이들을 지켜보기만 했을 뿐입니다. 대부분의 국민은 한국군의 늠름한 모습에 박수를 보냈지만, 교통통제 때문에 불편했다고 투덜대는 목소리도 방송을 탔습니다. 이렇듯 한국에서는 다양한 반대의 목소리들이 방송과 전파를 타고 국민에게 전달됩니다. 그래서 이날 많은 사람들은 어떤 가치 체계, 어떤 정치 체제가 남과 북의 열병식에 이토록 큰 차이를 가져왔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을 것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