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노태우 대통령 영면하다
2021.11.03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이 길을 가야 합니다.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 이라는 길입니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던 영웅도, 수많은 사람을 죽인 독재자도, 한 나라를 통치하던 지도자도 인생의 마지막에는 모두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지난 10월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연희동 자택과 병원을 오가며 칩거생활을 했습니다.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8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10월 26일은 42년 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흉탄에 맞아 숨을 거둔 날이기도 합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인으로 시작하여 정치인으로 생을 마친 분이었습니다. 그는 1932년 대구 출생으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한 후 육군에서 다양한 보직을 거치다가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발생했던 1979년 12월 12일에는 육군 제9사단장으로서 육사 동기생인 전두환 장군의 집권에 기여했습니다. 1981년 육군대장으로 전역한 그는 전두환 정부에서 정무장관,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대한체육회장,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 등을 거쳤으며, 1987년 대선에서 승리하여 제13대 대통령에 취임하여 1993년 2월까지 재임했습니다. 지도자는 죽어야 제대로 평가받는다는 말이 있듯, 노 대통령도 죽음 이후에 생전의 공과(功過)들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공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가장 빈번하게 거론하는 것은 6·29 선언과 서울 올림픽 그리고 북방외교입니다. 1987년 6·29 선언은 전두환 대통령 동안 실시되었던 대통령 간접선거를 폐지하고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뽑자는 국민의 여망을 받아들인 것이며, 노 대통령은 스스로 복원한 직접선거에서 당선됨으로써 집권의 정당성을 담보했습니다. 노태우 정부가 유치한 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들어서는 문턱이었으며, 그가 펼친 북방외교는 대한민국이 냉전의 고립에서 벗어나 외교지평을 넓히게 된 출발점이었습니다. 그 결과 1990년 한∙소 국교수립,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1992년 한∙중 국교수립 등이 차례대로 성사되었습니다.
소련과 수교하기 위해 노 대통령은 1990년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을 방문 중이던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만나 양국 간 수교를 협의했으며, 이어서 김종인 당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김종휘 안보보좌관이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실무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북한은 적잖게 긴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0년 9월 세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은 소련이 한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면 소련 주재 공식사절단을 철수하겠다고 불만을 표시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수교의 물길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한국과 소련은 9월 30일 수교합의의정서에 서명함으로써 공식 관계를 수립했고, 그해 12월에 노태우 대통령의 역사적인 소련 방문도 이루어졌습니다. 이어서 이듬해인 1991년 9월 17일에는 역사적인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이루어졌으며, 1992년 8월 24일에는 역사적인 한∙중 국교수립도 성사되었습니다. 수교 이후 한∙중 두 나라는 급속도로 경제교류의 규모와 폭을 넓혀갔습니다.
노 대통령의 과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자주 거론하는 것은 그가 1979년 군부의 정권장악을 위한 시발점이었던 12·12 사태의 주역 중 한 사람이었다는 점, 1980년 5·18 광주 항쟁시 발생한 희생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점, 퇴임 후인 1995년 반란수괴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아 특별사면까지 2년 동안 투옥되었다는 사실 등입니다.
이런 공과(功過)들을 기록하면서 한 시절 대한민국을 통치했던 노태우 대통령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습니다. 노 대통령에 대한 국가장이 5일 동안 엄수되었고, 영결식은 10월 30일 88올림픽의 주제곡인 ‘손에 손잡고’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서울올림픽 공원에서 치러졌습니다. 노 대통령의 시신은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후 파주에 있는 통일동산에 안장되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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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