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략 이론에 따르면 핵전쟁은 비이성적 요인(irrational factors)이나 이성적 요인(rational factors)에 의해 발화될 수 있습니다. 지도자의 이성적 판단에 의한 핵전쟁은 이성적 요인에 의한 핵전쟁입니다. 반면 조기경보 체제의 오작동, 컴퓨터 에러, 오판, 실수, 정신 이상, 반란세력이나 테러세력의 핵 발사 등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비이성적 요인에 의해서도 ‘원하지 않는 핵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냉전시절 미·소 간 핵전쟁을 억제한 효자는 ‘상호확실파괴(MAD) 전략’으로 불리는 대량보복전략이었습니다. 즉 핵공격을 받으면 반드시 대량보복으로 응징하는 의지와 능력을 과시하여 승자도 패자도 없는 공멸일 뿐임을 확실히 하는 ‘공포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어느 누구도 핵전쟁을 일으킬 수 없게 하는 전략입니다. 이 전략 하에서 핵무기는 억제용일 뿐 ‘사용할 수 없는 무기’입니다. 이 전략은 지금도 핵전쟁을 억제하는 핵심이지만, 비이성적 요인들에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함정을 가집니다.
1983년 9월 소련의 조기경보 레이더가 구름에 반사된 햇빛을 오인하여 미국의 ICBM 5기가 날아온다는 경보를 발했습니다. 보복전략 매뉴얼대로라면 소련은 25분 이내에 보복미사일들을 쏘았어야 했지만, 경보실 당직사령인 페트로프(Stanislav Petrov) 중령이 레이더 문제로 판단하여 보고하지 않았고, 그의 결단으로 핵전쟁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1995년 1월 노르웨이는 미국과 합작으로 과학위성을 쏘았는데, 러시아 위성이 이를 핵공격으로 오인하는 바람에 전략로켓군이 발사대기 상태로 돌입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며, 비슷한 사고들은 미국에서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비이성적 요인’에 의해 일어날 뻔 했던 핵전쟁입니다.
이성적인 결정에 의해 핵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지도자도 공멸하는 핵전쟁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성적인 판단으로 시작하는 핵전쟁은 당연히 제한적 핵전쟁일 수밖에 없으며, 이런 전쟁을 위한 논리들을 제공한 것이 제2세대 핵전략인 ‘핵전투(nuclear warfighting) 전략’입니다. 즉 제한적인 핵공격에는 제한적인 핵사용으로 대응해야 하며, 공멸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핵무기는 승리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 무기가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소규모 핵전쟁이 대규모 핵전쟁으로 확전되는 것을 막을 보장책이 없습니다. 실제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시에는 이런 핵전쟁이 일어날 뻔 했습니다. 발단은 소련이 플로리다주에서 불과 150km 떨어진 쿠바에 R-14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태는 미국이 터키(튀르키예)에 배치한 핵미사일을 철수한다는 조건으로 소련이 미사일을 철수함으로써 일단락되었지만, 핵전쟁이 발발했다면 일단 ‘이성적 요인에 의해 시작된 제한적 핵전쟁’이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비이성적 요인들도 혼재되어 있었습니다. 미국 군함들이 쿠바 해역에 진입한 소련 잠수함에게 해상으로 부상하라는 방송을 하고 훈련용 폭뢰를 발사했는데, 러시아 잠수함이 실제 공격으로 오인하고 핵어뢰를 발사하려 했던 것입니다. 즉 쿠바 사태는 이성적 요인과 비이성적 요인들이 함께 작용한 핵전쟁으로 확전될 수 있었던 위기였습니다.
현재 유럽과 중동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이런 핵전쟁의 그림자가 떠돌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가 ‘핵사용’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는 중에 중동에서는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고집하고 있어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위태로운 핵행보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2017년 북한이 괌을 포위 사격할 수 있다고 위협했을 때 괌과 하와이에서 대피훈련이 실시되었고, 금년 11월 3일 화성17형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에는 일본이 일부 지역에 긴급대피령을 발령했습니다. 북한은 최근 ‘핵무력정책법 제정을 통해 ‘핵억제’에 더하여 ‘핵사용’ 독트린까지 대외에 천명했고, 필요시 대남 선제 핵사용도 불사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북한의 막무가내식 핵 및 미사일 증강과 공세적 핵전략이 상대국들의 오판을 불러올 수도 있고, 북한 내부에서 실수나 사고와 같은 비이성적 요인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핵전쟁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일어난다면 ‘원하는’ 핵전쟁이 될 수도 있고 ‘원하지 않는 핵전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성적 요인과 비이성적 요인이 복잡하게 뒤엉킨 핵전쟁이 될 수도 있으며, 강대국 간의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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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