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싱가포르와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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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전 싱가포르 총리였던 리콴유가 91세의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그는 싱가포르의 첫 총리로 장기간 싱가포르를 이끌면서 싱가포르를 세계 1류 국가로 키워낸 지도자입니다. 싱가포르 국민은 물론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그의 서거에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총리이름으로 조전을 보냈습니다.

싱가포르는 인구가 530만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국가입니다. 국토면적은 730평방키로미터로 평양시의 반을 조금 넘는 크기입니다. 1959년, 서른여섯에 그가 총리로 선출되었을 때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싱가포르자치령의 1인당 국민소득은 400달러에 불과했고 실업률은 13%를 넘었습니다.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 여러 인종이 뒤섞여 툭하면 폭동과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자원이 전혀 없어 마시는 물도 말레이시아에서 사 먹었습니다. 그래서 자원이 좀 있는 말레이시아에 기대 살아보려고 1963년 말레이시아연방에 가입했지만 얼마 안 되어 인종 갈등으로 쫓겨났습니다.

한때 북한에서 외국물을 좀 먹은 사람들은 싱가포르를 주목했습니다. 정치체제가 어딘가 모르게 북한과 비슷했고 국가의 발전요인이 지도자였다는 것이 수령의 결정적 역할을 주장하는 북한의 이데올로기와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날 매우 뒤떨어져 있었다는 점, 경제지리적 조건이 북한보다 더 불리한 조건에서 발전을 이루어냈다는 점도 관심을 끌었습니다.

실제로 싱가포르의 발전을 이루어낸 것은 천재적 변호사로 인정받던 리콴유였습니다. 원치 않은 독립을 한 후 리콴유는 가난하고 뒤떨어진 나라를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과감한 개방정책을 실시했습니다. 당시 싱가포르에는 돈도 자원도 없었습니다. 그는 외국의 투자밖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규제를 풀었습니다.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여 국제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또한 국제공항을 지었고 정부주도의 투자회사도 만들었습니다. 인력자원, 해고가 자유로운 노동시장, 편리한 교통, 빗장 푼 규제 등은 싱가포르에 돈과 사람을 모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동시에 인재양성, 부패척결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결과 오늘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 5만 5천불로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나라로 되었습니다. 또한 실업률 2%로 가장 낮고,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스위스와 1~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명암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는 권위주의 정치를 실시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아시아는 서방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방식 민주주의가 적합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장기간 국가를 통치했고 그가 자리에서 물러난 다음 15년 후에는 그의 아들이 다시 총리직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세습정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싱가포르에는 리콴유의 동상도 없고 그의 혁명역사과목을 가르치는 학교도 없습니다. 그는 사망 전에 자기가 수십 년간 살던 집도 허물라고 유언했습니다. 북한은 반세기 이상 수령의 영도를 강조하고 있고 3대 세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는 나라를 세계 최고의 국가로 변모시켰으나 북한의 세습정권은 국가를 세계 최하위국으로 몰락시켰습니다.

지금 북한은 1959년 싱가포르 리콴유가 정치를 시작하던 그때처럼 낙후하고 뒤떨어진 국가입니다. 김정은은 정계에 등장하면서 주민들에게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약속했습니다. 리콴유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도를 개방에서 찾았습니다. 북한도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위해서는 개혁개방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