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미, 핵 포기하는 북 지도자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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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9월 초 미국의 워싱턴을 방문했습니다. "한반도 안보에 대한 도전"이란 주제로 열린 국제세미나에 참석해서 많은 유익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북한의 핵과 인권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진 미국 전문가들이 회의에 대거 참석해서 북한체제의 현 상황과 미래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미국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김정일 정권이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며 세상물정을 모르는 북한 지도부의 무모함을 질타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이건 북한이건 직접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았는데, 북한이 한 짓은 고작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대화하자는 오바마의 손을 뿌리친 김정일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의 무모한 도발로 인해서 미국 행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없어졌기 때문에 북한이 원하는 북·미 직접대화는 힘들다고 진단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공화당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미국 국민들의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특히 금년 3월에 북한군이 남한의 천안함을 공격한 사건의 여파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상황에서 북·미 대화는 당분간 물 건너간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저는 이번 워싱턴 방문을 통해서 북한을 바라보는 미국 사람들의 냉철한 시선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김정일 정권이 세습에 성공하더라도 막무가내식의 무모한 도발과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멈추지 않는 한 북한정권이 원하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꿈같은 일이라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많은 미국 사람들이 현재의 김정일 정권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고, 내심으론 김정일 이후에 변화된 모습으로 등장할 새로운 북한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핵문제, 인권문제, 군사도발 등 모든 문제의 진원지인 김정일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북한과 마주 앉아 봤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미국 행정부가 아버지 부시 이후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네 명의 대통령을 거쳐 가며 지난 20년 동안 북한과 대화를 해서 얻는 교훈인 것 같습니다.

최근 클린턴 국무장관이 미 외교협회(CFR)에서 연설하면서 북한의 후계구도 문제와 관련해서 중요한 언급을 했습니다. "북한의 지도자가 누가 되든 비핵화가 그들의 미래에 더 좋은 일이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신시키는 게 중요하며, 그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한 것입니다. 얼핏 듣기에 따라서는 마치 미국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김정일의 권력승계 작업을 승인하는 듯이 들리기도 하지만 클린턴의 이 발언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한마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클린턴의 발언을 뒤집어 보면, "핵을 포기하는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라면 누구라도 환영하겠다,"라는 뜻으로, 다시 말해서 "북한의 다음 지도자가 김정일의 아들이 아니어도 괜찮다"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핵을 가진 북한에게 정말 미래는 없다는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