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남과 북 어떻게 분단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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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북한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라는 단체에서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고 미국이 1945년 9월 8일 불법적으로 남한을 강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이야말로 우리민족을 둘로 갈라놓은 장본인이며 침략과 전쟁의 화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북한은 정권을 수립하면서 미국이 남한을 강점했다는 거짓주장을 펴왔고, 북한 동포들은 정권의 거짓말에 세뇌된 채 지내왔습니다. 남한에서도 한반도 분단의 원인에 대해서 다수의 동포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은 불행하게도 일본제국주의의 패망 이후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 것이 아니라 분단의 길을 걸었습니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일본 본토 진격을 앞두고 있던 미국은 소련의 참전을 요청하게 됩니다. 당시 만주에 일본 관동군이 있었고, 일본 본토 진격에 큰 희생이 예상되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요청에 머뭇거리던 소련은 1945년 8월 6일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하면서 일본의 패망이 확실해지자 이틀 뒤인 8월 8일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합니다. 힘도 안들이고 동북아에서 이권만 챙기겠다는 스탈린의 속셈이 드러난 겁니다.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추가로 투하되었고, 이튿날인 8월 10일 미국과 소련은 임의로 38선을 경계로 설정하고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한반도에 있던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실시하게 됩니다. 이런 합의에 따라서, 소련군이 원산에 들어온 것이 1945년 8월 20일이고, 미군이 인천에 상륙한 것은 9월 8일입니다. 한반도에 외국군 자격으로 들어온 것은 미군만 아니라 소련군도 있었고, 사실 소련군이 보름이상 먼저 우리 땅에 발을 들여놓은 것입니다.

유엔은 1947년 11월 14일 남북한 단일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를 실시하고, 외국군대는 모두 철수하도록 결의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유엔의 결의를 무시하고 1948년 2월 10일 조선인민군을 먼저 창설했습니다. 남북한 동시선거가 어렵다고 판단한 남한은 일단 남쪽에서만이라도 유엔의 결의에 따라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정부를 수립하기로 하고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실시했습니다. 그해 7월 20일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8·15 광복절 날에 남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반면에 유엔결의를 무시하면서 인민군을 창설하고 토지개혁 등 북한사회를 공산주의체제로 정비하던 북한은 1948년 9월 8일 김일성을 수상으로 선출했고, 9월 9일 북한정권을 수립했습니다. 남과 북에 각각 별개의 정부가 들어선 것을 목격한 유엔은 1948년 12월 12일 총회에서 남한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승인했습니다.

남과 북에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던 시점에 이미 국제사회는 남한을 한반도에서 한민족을 대표하는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한 것입니다. 1990년 대 들어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긴 했지만 북한정권에게 태생적으로 씌워진 '정통성의 멍에'를 없애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남한정부가 앞으로 통일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